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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참사가 할리우드 변화시킬까
2001-10-16

“텔레비전으로 무역센터 빌딩의 폭발을 보았을 때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엘살바도르 출신 친구가 내뱉은 첫마디는 `저건 전쟁이다'였다.”

뉴욕 사건 직후 필자가 다니고 있는 USC 대학은 정상수업을 하기는 했지만 학생들이 받았을 충격을 고려해 결석을 용인해주었고, 수업 시작 전 이번 참사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으로 충격을 완화·흡수시키려고 했다. 영화학과의 경우, 토론의 주제는 할리우드와 폭력, 또 이번 참사가 폭력과 액션에 대한 할리우드의 태도를 변화시킬 것인가란 질문으로 압축되었다.

앞서 인용한 학생의 말처럼 대부분의 미국학생들은 무역센터의 폭발과 붕괴,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뛰어 달아나는 장면을 묘사할 수 있는 말이 “영화같다”는 표현 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고, 그런 비극적인 순간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액션영화의 장면이라는 사실에 당황해했다. 태어나서 영화 이외엔 그런 일을 가까이 겪어본 적이 없으므로 더더욱 뉴욕의 사태가 비현실적이고, 또 초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데이너 폴런 교수는 “미국사람들은 미국 땅에서 전쟁을 겪은 적이 없다는 점에선 행운아들이지만 반면 이런 일들을 깊이있는 분석이 결여된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해왔다는 점에선 불행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에겐 영화의 이미지가 참사의 체험을 대신해왔으며, 미국인들에게 유일한 참사는 영화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는 설명했다. “폭력이 영화 이미지로 부적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폭력으로 현실을 다루는 것도 현실을 이해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문제는 무엇이 그런 폭력을 불러오는가를 분석하기보다는 그것을 화려한 스펙터클로 치장하는 데 주력해왔다.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가 우리들이 왜 그런 마치즈모(machismo, 남자다움)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그것이 폭력을 불러오는가를 분석한 것과는 달리 요즘의 매스미디어는 분석적, 교육적인 기능을 하지 못해왔다. 우리는 미디어로 인해 깊이있는 이해의 기회를 빼앗겨왔다. 특히 중동지역의 정치에 대해선 더욱 그랬다.”

하지만 할리우드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변할 것인가에 대해선 그리 긍정적인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할리우드의 역사가 말해주듯, 영화산업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이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할리우드는 참사와 폭력을 이윤과 연결시켜왔으며 빌딩폭발이나 테러를 다룬 액션영화의 개봉을 연기하긴 했지만 결국엔 또 다른 방식으로 참사를 다루는 영화들을 만들어낼 것이란 전망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한동안 람보 식의 남성적인 영웅들이 인기를 끌다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하자 폭력이나 참사를 스펙터클하게 다루는 액션영화로 바뀌었듯이 폭력을 스펙터클하게 꾸며내는 방식은 자제하겠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슬로베니아 출신 학자 슬라보에 지젝도 인터넷에 참사에 대한 글을 올려 뉴욕참사의 상징적인 의미를 설명했다. “이제야 미국이 세계 도처에서 일상처럼 일어나는 삶의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 폭발의 교훈이 있다면, 미국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 깨닫는 일이다.”

로스앤젤레스/이남,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