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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의 들녘에 봄은 오는가?
2001-10-18

<마리포사>의 배경이 된 스페인 내전

이번엔 한편의 시로 시작해 보자. ‘다시 너니? 그토록 요란스레/ 올라와서 다시 푸르게 하는/ 이 도래가 내겐 전혀/ 가능해 보이지가 않았거든. 다시 너니? 대지가 죽은 생명과/ 새로운 생명으로 너의 가슴을 살찌우는 동안/ 네 가슴은 그토록 대책없이/ 터지도록 자라나는구나. 다시 너니? 이름 모를 무덤 위에/ 참호의 흙덩이 위에/ 꽃을 피우며. 피로 얼룩진 이 조국에/ 그 형형색색의 형상을 만드는 자가?/ 다시 너, 봄이니?’ 조금 더 감상적이긴 하지만,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연상시키는 이 시는 스페인의 유명한 시인 라파엘 알베르티가 쓴 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이 시는, 모 유명 학원강사의 방식으로 해석하자면, 참혹한 전쟁 속에서의 희망을 봄을 통해 노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달리 이 시가 내포하고 있는 전쟁의 참혹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스페인 내전의 당사자가 아니거니와 알고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20세기 초반에 스페인에서 일어난 전쟁, 우리에게 스페인 내전은 그렇게 먼 땅의 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개봉된 영화 <마리 포사>를 소개하는 글들이 하나같이 스페인 내전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마리 포사>를 좀더 깊이있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영화에서 다 설명하지 못한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스페인은 다른 유럽국가들이 산업혁명 이후 바른 근대화의 길을 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봉건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가톨릭 교회의 힘이 너무 컸고 대지주와 군부는 가톨릭 교회를 등에 업고 노동자와 농민을 수탈하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그러나 전 유럽의 산업화 물결로 생겨난 도시 노동자와 교육받은 중산층은 차츰 자신들을 세력화해갔고 결국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이념에 기반해 기존 수구세력에 반기를 드는 공화파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극우파(파시스트) 대 공화파의 대립은 1931년 총선에서 공화파가 승리하면서 큰 격변을 예고하게 된다.

그러나 공화파의 개혁 시도가 파시스트들의 반발로 한계를 드러내면서, 스페인은 차츰 내전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여기저기서 총파업이 발생했고, 양쪽간 전투가 벌어졌으며, 광부들의 유혈폭동이 당시 유럽 최연소 장군으로 스페인군의 실세였던 프랑코에 의해 진압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던 1936년 2월 극우파, 중도파, 그리고 좌파의 지지를 받던 인민전선 사이에 벌어진 총선에서 인민전선이 승리하면서 스페인은 본격적인 내전 상태로 빠져든다. 인민전선이 정치범 석방, 노동자 복직, 프랑코의 해외 좌천 등 파격적인 개혁을 시도하자, 불안을 느낀 파시스트들이 프랑코를 통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

그러나 내전은 급속도로 국제전의 성격을 띤다. 유럽에 파시즘을 전파하려던 독일과 이탈리아가 스페인 파스시트들을 도와주게 되고, 소련이 사상적으로 묶여 있던 인민전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 것. 게다가 전세계 젊은이들이 국제여단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으로 모여들어 파시스트에 대항해 싸우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건너온 젊은이들로 구성된 국제여단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모델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조교 로버트 메리만과 같은 지식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의 주인공 데이비드 같은 공산주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렇게 구성된 2천여명의 참전자 중 500여명이 전사하고 1200여명이 부상당하는 국제여단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1939년 3월 마드리드가 함락되면서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에 넘어간다. 그 과정에서 약 100여만명의 스페인 국민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에는 1937년 4월26일 스페인의 파시스트를 지원한다는 독일이 항공기와 신무기를 실험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함으로써 약 1700여명의 민간인을 살상한 게르니카 마을의 참사도 포함되어 있다. 여하튼 세계적인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벌어진 스페인 내전은 그렇게 파시스트의 승리로 끝났고, 동시에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남겨 놓았다.

물론 아주 복잡했던 세계사적인 사건을 무리하게 단순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상의 내용만으로도 당시 스페인 민중이 어떠한 혼란을 겪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혼란을 소년과 노인 선생님간의 관계를 통해 그려낸 <마리 포사>에 쏟아진 찬사는 정당해 보인다. 특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식의 일방적인 이념의 강요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마리 포사>는 더 많은 찬사를 받아야할 것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마리 포사> 공식 홈페이지http://www.miramax.com/pls/front_con/mp.entryPoint?action=1&midStr=1365

스페인 내전의 역사 http://www.geocities.com/CapitolHill/9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