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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방> 세친구의 좌충우돌 소극
2001-10-30

해곤, 학락, 준형 셋은 30대 후반의, 같은 택시회사에서 일하는 운전기사다. 그만그만한 밥벌이에 별다른 희망이나 활력이 있기 힘든 셋은 퇴근 뒤 호프집에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해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떤 여자와 자 봤네, 내 삼촌이 옛날 월남에서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쳤네, 요즘 세태가 어쩌네 등등. 하나마나 한 얘기지만 그게 위로가 되면서 셋 사이에 쌓이는 정이 커갔던 모양이다. 노총각 해곤은 불법 취업한 연변 처녀를 사랑하고, 이혼한 학락은 딸 과외비에 쪼들리고, 유일한 대졸자인 준형은 망나니 형 때문에 집안이 거덜날 형편에 처하는 등 저마다 힘든 사연이 있다. 택시회사 상무가 이들이 빌려준 돈을 떼먹고 달아나자 준형과 학락은 돈많은 점쟁이 할머니 집을 털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별 실속없이 쌓인 이 우정이 문제다.

옳던 그르던 혼자서 큰 일을 저지르지 못하는 이 셋이 서로를 방해하기도 하고 돕기도 하면서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계속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 담긴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특히 이 영화가 다섯번째인 장현수 감독이 채집한 디테일들에서 작위성을 찾아내기란 힘들다. 많이 웃고 나서 돌이켜 보면 이 영화의 웃음에는 색다른 데가 있다. 요즘 한국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썰렁 개그나, 일본 코미디 영화처럼 웃음 안에 서민적 애환을 과장해 삽입하는 감상적 연출이 없다. 30대 후반이 돼서도 철 안드는 유약한 이들을 우스꽝스럽게 비추고 있음에도 그들에 대한 유대감이 느껴지는 게 얼핏 <위대한 레보스키> 같은 코언 형제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다만, 코언 형제처럼 아이러니를 제시하기보다 편안한 서민 코미디의 형식을 밟아 간다.

삶 자체가 소극임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하는 데에 다가서고 있는 이 영화의 유머는 우리 코미디 영화의 관성에서 벗어난 새로움을 담고 있다.

임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