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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스위니 토드
최하나 2007-10-26

전체적으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해도, 특정한 장면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 영화들이 있다. 벤 애플렉, 리브 타일러가 주연한 <저지 걸>이 바로 그 애매한 카테고리에 속하는 영화였다. 이제는 기본적인 줄거리조차 희미해져버렸지만, 아직까지 생생한 것은 애플렉의 극중 딸의 학예회 장면이다. 아마도 뮤지컬을 발표하는 자리였을 거다. 99%의 아이들이 한결같이 <캣츠>의 <메모리>를 곱게 뽑아낼 때, 소녀가 들고 나온 것은 한마디로 색달랐다. 애플렉이 이발사로 등장해 손님의 목을 면도날로 쓱싹 그으면,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딸이 즐거이 그 시체를 받는다. “God, That’s Good!” 부녀의 용맹한 합창이 울려퍼지면, 객석을 채우고 있던 학부모들의 표정은 순수한 경악으로 얼어붙는다.

마냥 낄낄대며 보았던 그 장면의 문제적 뮤지컬이 바로 <스위니 토드>라는, 브로드웨이에서 굉장한 화제를 뿌린 작품이라는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한국에서 본 적 없고 들은 적 없던 그 뮤지컬에 대한 기억은 금세 잦아들었다. 그리고 올해, 팀 버튼과 조니 뎁이 5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작품이 바로 <스위니 토드>라는 소식에 되살아난 흥미는 마침내 공연이 한국에서 초연된다는 소식에 활활 불타올랐다. 주저없이 공연장을 찾았음은 물론. 두눈으로 직접 확인한 <스위니 토드>는 150분의 러닝타임을 일말의 피로감없이 꿀꺽 삼키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이글대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무차별의 살육을 자행하는 남자와 희생자의 고기를 재료 삼아 파이를 굽는 여자. 시체와 피가 거침없이 난무하는 <스위니 토드>는 물론, 뮤지컬의 장르적 관습이 새겨놓은 유쾌한 활력에의 기대를 배반하는 잔혹극이다. 하지만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일차적인 충격 너머에 있다. 그것은 인간고기를 집어넣은 파이를 걸신스럽게 구하는 군중의 몸부림에서 읽히는 비통한 유머이고, 가진 자들의 기름진 탐욕과 위선을 한껏 비틀고 조롱하는 신랄한 냉소이며, 정신이 모자란 남자만이 유일하게 살육을 알아차린다는 지독한 역설이다. 그리고 감미로운 멜로디 대신 귀를 찢어놓는 파열음으로 관객의 가슴을 후비는 것은 잔혹한 시대의 공기다. 19세기, 산업혁명의 드센 파고 아래 처참하게 찢어진 민중의 삶. 전체 세트를 구성하는 톱니바퀴가 가동되며 거대한 굉음을 뿜어내는 클라이맥스는 부국을 찬미하는 바퀴가 기름이 아닌 피를 동력 삼아 돌아가고 있음을 극렬하게 노래한다. 시뻘건 가짜 피가 아닌, 바로 그 공기로부터 피비린내를 느낀 것은 분명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의 아쉬움은, 정교하게 운을 맞추었다는 대사가 한국어로 번안되면서 어쩔 수 없이 원작이 갖고 있던 입말의 맛을 잃었다는 점이다(예컨대, “God, That’s Good!”은 “맛있다!”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 갈증은 머지않아 개봉할 영화 <스위니 토드>가 채워줄 것이다. 아직 코끝에 감도는 비릿한 여운이 과연 스크린에 어떻게 펼쳐질지, 트레일러만으로도 기대감을 증폭시킨 조니 뎁의 스위니 토드는 어떤 색깔의 광기를 드러낼지. 당분간은 행복한 기다림이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