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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찬가 Eloge de l’Amour
2001-11-02

거장의 손길

월드시네마|스위스·프랑스|장 뤽 고다르|2001년|98분

거의 반세기가량을 ‘숨가쁘게’ 달려온 노장의 새 영화는 제목과 달리 세상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고다르의 근심은 이미지와 사운드가 구성해내는 기억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근심이다. 텔레비전과 영화라는 강력한 매체는 스스로의 표현수단을 지니지 못한 인민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며, 진정한 전투는 바로 이 기억의 장에서 벌어진다고 말한 것은 다름 아닌 미셸 푸코이다. 고다르와 더불어 미셸 푸코의 이러한 전언에 대한 충실한 영화적 주석가라 할 크리스 마르케는 <태양 없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총체적 기억은 마취된 기억이며, 하나의 집단적 기억 뒤에는 천개의 개인적 기억들이 존재한다고(또한 성서는 영화와 텔레비전이 없던 시대의 총체적 기억이다, 라고). 크리스 마르케가 꿈꾸었던, 망각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부터 현재로 날아온 인물이 보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SF영화라는 프로젝트는 <사랑의 찬가>에서 실현되었다.

고다르는 흑백으로 촬영된 현재와 컬러로 촬영된 과거를 대비시키면서 유례없이 명료하게 영화를 전개시킨다.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관한 노트>에서부터 존 포드 영화의 대사에 이르기까지 예의 인용과 오마주 또한 어김없이 등장한다. 레지스탕스 활동 중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노부부의 이야기에 대한 판권을 사서 그럴싸한 역사멜로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할리우드 제작자들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하다. “미국인들… 그들에겐 자신들만의 기억이 없지… 그래서 다른 이들의 과거를 사는 거야. 특별히 저항했던 이들의 과거를. 혹은 그들은 말하는 이미지를 팔기도 해.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결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 그게 그들이 원하는 거라고.” 역사와 기억에 대한 근심으로 빚어낸 이 역설적인 <사랑의 찬가>는 우리로 하여금 한 진정한 예술가의 육체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원망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