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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Warm Water under a Red Bridge
2001-11-02

거장의 손길

아시아영화의 창|일본|이마무라 쇼헤이|2001년|119분

실직한 중년의 가장 요스케(야쿠쇼 고지)는 여기저기 일자리를 구하러 돌아다니지만 여의치 않다. 그런 가운데 거리의 철학자 타로에게서 노토 반도의 어촌 마을에 있는, 붉은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한 이층집에 황금불상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를 찾으러 떠난다. 이곳에서 요스케는 사에코(시미즈 미사)라는 여자를 만나 갑작스럽게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그녀는 절정에 달하는 순간 몸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뿜어내는 기이한 병(?)을 앓고 있다.

얼마 전 국내 개봉한 <간장선생>에서 영화라는 기이한 현미경으로 일본사회의 환부를 들여다보았던 이마무라 쇼헤이가 이번엔 따뜻한 욕망의 판타지라는 치료제를 들고 우리를 찾아온다. 간염박멸을 외치며- 혹은 간염을 전염시키기 위해서(?)- 부지런히 달리고 또 달리던 아카기 선생의 모습은 사에코의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하에 마라토너보다도 빠르게 뛰어다니는 현대의 일본 가장 요스케의 모습 위에 고스란히 겹쳐진다. 고래가 내뿜는 힘찬 물줄기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버섯구름을 통해 인간들의 헛된 망상- 아카기 선생의 말대로라면 ‘엄청 비대해진 간’- 을 풍자했던 이마무라는 이번엔 사에코의 몸에서 나온 거대한 물기둥 위로 무지개를 걸쳐놓음으로써 유쾌한 사랑의, 아니 욕망의 찬가를 들려준다.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를 거쳐 <간장 선생>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차례로 소개된 영화들에서 익히 봐왔던 이마무라 특유의 시선은 여전하지만 다소 미심쩍은 데가 있다. 본디 그 시선은 인류학자보다는 동물행동학자의 시선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생존 기계’들의 욕망을 좀더 넉넉한 품으로 끌어안자는 노장의 충고를 그저 흘려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잠시나마 기꺼이 그가 흘려보내는 따뜻한 물에 몰려드는 고기떼가 될 용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