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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이 이야기하는 누벨 바그의 여신 잔 모로
2001-11-15

나른한 매혹, 그 아름다운 저항

심영섭/ 영화평론가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샹젤리제 밤>에 맞추어 한 여자가 파리의 거리를 서서히 걷고 있다. 남편을 죽인 후 30분 후에 만나기로 한 연인은 오지 않고, 애인이 변심했다고 믿은 여자는 음악의 리듬만큼이나 느릿느릿한 얼굴로 샹젤리제의 밤 공기를 가른다. 엘리베이터에 남자가 갇혀 있는 것을 아는 관객들은 그녀의 발걸음에 묻어 있는 한숨과 절망에 입이 마르고, 화면에 가득 찬 입술로 고백했던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의 무게에 영혼이 짓눌린다. 이후 프랑스 영화에 잔 모로가 빠진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생각할 수는 없었다.

1958년, 이 프랑스의 한 중견 여배우는 사형대 대신 일약 전 세계의 여신으로 스크린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땐 미소 지어라. 자신이 약한 존재임을 시인할 때 여성은 아름다워 지고 남자들은 저절로 여자들을 돕는다.” 여전사 니키타의 입술을 끌어 올리며 ‘미소는 피부의 향기’라는 말을 가르쳐주었던 여자. 한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프랑수아 트뤼포가 ‘모든 씬을 마지막처럼 연기하는, 최고의 여배우’ 라는 최고의 헌사를 바친 잔 모로가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프랑스의 누벨 바그 영화들을 이야기할 때 잔 모로는 빠질 수 없는 캐릭터이자 하나의 아이콘이다. 잔 모로의 이미지는 기존의 영화 관습과 문법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누벨 바그의 지향성과 일치하는 어떤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입술이 단단해지고 누군가를 의심할 때도 눈동자에서 매혹의 기운을 꺼트리지 않는다. 전성기때 그녀가 맡은 단골 배역들, 예컨대 루이 말의 <연인들>이나 로제 바딤의 <위험한 관계> 혹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쥘과 짐>등의 여주인공은 흔히 남편을 두고도 거리낌 없이 새로운 연인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1960년대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과감해 보이는 그녀의 일탈은 그러나 구구한 변명을 늘어 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자유로움은 그녀를 보는 모든 이에게 그 자체로 설득되어지는 어떤 신비이자 당당함이었던 것. <쥘과 짐>의 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카트린(잔 모로가 분한 역할)를 극복할 수 있다면 세상 누구도 극복할 수 있어.” 클로즈 업 상태에서 슬로우모션- 프리즈 프레임- 다시 슬로우 모션으로 잡아내는 잔느 모로의 얼굴은 이미 지상에서 없는 여신의 이미지로, 화면 가득 모든 위선을 거부하는 진정성을 쏟아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누벨 바그는 그녀에게 영광을 준 동시에 치명적인 상처도 함께 안겨주는 모순의 창이기도 했다. 비전문 배우를 선호하고 압도적인 스타 이미지에 벗어나고 싶어 했던 누벨 바그 감독들은 트뤼포를 제외하고는 그녀를 거의 캐스팅하지 않았다. 게다가 1970년대 이후의 프랑스 감독들은 새로운 스타 카트린느 드뇌브의 차가운 매혹에 마음을 빼앗긴다.

1960년대 이후 잔 모로는 프랑스를 벗어나 전 세계의 감독들과 손을 잡는다. 프랑스에서의 활동을 접고 유럽과 헐리우드로 발을 넓힌 그녀의 필모그래피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오슨 웰즈, 루이스 브뉘엘, 조셉 로지, 토니 리처드슨같은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등재되어 있다. 조셉 로지 감독의 <에바>(1962)에서 남자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고급창녀 역할을 할 때나 토니 리차드슨의

<마드모아젤>에서 스스로의 리비도에 의해 파멸해 가는 여교사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그녀는 프랑스라는 국가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신낭만주의 여성의 딱지를 과감히 벗어 던질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그녀는 또 다른 거인을 만난다. <심판>에서 안소니 퍼킨스를 유혹하는 이웃집 창녀로 분했던 그녀는 이후 오슨 웰즈와의 연대를 통해 카메라를 잡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얻어갔다고 한다. (오슨 웰즈는 그녀의 감독 데뷔에 유일하게 호의적인 감독이었다) 이후 잔 모로는 배우로뿐 아니라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첫 감독 연출작인 <뤼미에르>는 마흔을 넘긴 잔 모로의 자전적 이야기였고, 이후 그녀는 <유년기>를 거쳐 무성 영화의 전설적 스타를 그린 <릴리 기쉬의 초상>을 감독했다. 평생 연기와 배우들에게 매혹되어 있었던 그녀가 어쩌면 여배우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 역사를 조명하려는 시도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비바 마리아>에서 브리짓 바르도와 함께 서부를 누비면서 ‘뇌가 있는 브리짓’으로 뭇 남자를 불러 모았던 그녀도 이제는 일흔이 훌쩍 넘었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살아 있는 전설” 운운하는 기자들에게 자신이 ‘화석’이 아니라는 일침을 놓은 잔 모로. 그녀는 이번에는 그녀와 절친한 친구였던 마그리트 뒤라스의 역할로 우리 곁에 돌아온다. 미 테러 참사와 연관해서 다른 배우들이 공식일정을 취소하자 그녀는 “영화는 세상의 거울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집착과 같은 흥미를 가지게 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우리가 테러의 두려움에서 산다면 우린 다신 예술을 할 순 없을 것”이라며 국제 영화제 방문일정을 강행하고 있다.

일찍이 <쥘과 짐>에서 여자의 정숙함과 법에 대해서 말하자 그럼 “저항을 해야죠”라고 말한 뒤, 강가에 풍덩 빠져들었던 그녀는 줄과 짐, 아니 모든 남자들이 그 반쪽이라도 기꺼이 가지기를 애원했던 영혼의 매혹, 혹은 모든 여성들의 삶의 전범으로써의 잔 다르 (Jeanne d’art)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