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영화읽기
이런 터무니없는 사기극!
2001-02-23

<캐스트 어웨이>와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짐 호버먼 칼럼

로버트 저메키스의 <캐스트 어웨이>는 업데이트된 <로빈슨 크루소>로서, 이 영화에서 톰 행크스는 이제 막 미국의 연인인 헬렌 헌트와 약혼한 다혈질의 페데랄 익스프레스 지점장(manager)으로, 크리스마스날 회사 화물비행기가 폭풍속에 조난돼 떨어지는 바람에 남태평양 무인도에 떨어진다.

<타이타닉>의 클라이맥스를 10분으로 축약시켜 노골적으로 베껴먹은 비행기 조난 장면은 참으로 초스피드 배송서비스 회사의 특징을 잘 배운 결과라고 하겠다. 톰 행크스가 당도한 흰모래 백사장이 눈부신 해변은 그 자신만을 위한 맞춤 클럽메드(유명 휴양지)라고 해야겠다. 섬 생활을 아주 곤혹스럽고 복잡하게 만드는 건 깨지지 않는 코코넛과 마치 시한폭탄처럼 생존자의 머리를 쪼아대는 충치 정도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실용적인 중산층의 윤리와 미덕에 바치는 찬가였으며 그 성실한 영웅으로 하여금(그리고 그가 대표하는 그 국가로 하여금) 무(無)로부터 문명을 재창조해내게끔 하였으나 <캐스트 어웨이>는 문명의 핵심에서 무를 들여다보는 힘이 훨씬 약하다.

다행히도 몇 가지 깨지지 않는 페덱스 상자들이 해변으로 밀려오는데 거기엔 척 보기에 아무 쓸모없어보이는 배구공이 들어 있다. 행크스는 그걸 집어들고 거죽에 얼굴을 그려넣으며, 그 공은 덕분에 친구 겸 애완동물 겸 우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정도의 프로덕트 플레이스먼트도 모자라, 행크스는 그 공을 상표명인 윌슨으로 부른다. 비록 <캐스트 어웨이>가 톰 행크스의 극단적인 솔로연기에 아주 많이 기대고 있긴 하지만 그의 움직이지 않는 ‘프라이데이’는 올해 최고의 조연배우로 주목받아야 마땅하다. 최소한, 윌슨은 톰 행크스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잡아 비트는 장면의 프리텍스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생경한 자급자족 생활로 4년을 섬에서 보낸 톰 행스는 드디어 뗏목을 완성해 탈출하게 된다. 드넓은 대양으로 열심히 노를 저으며 저 뒤의 푸르른 감옥을 돌아보는 이 장면은 정말 완전 공상과학 그 자체다. 그는 단짝친구 윌슨과 함께 이제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다.

톰 행크스가 문명으로 돌아온 뒤의 일들은 이보다 더 기가 막혀서, 저메키스는 대체 어떻게 저런 괴상망칙한 신들을 만들어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저메키스는 마치 자기가 최고로 비타협적이고 모질고 쓸쓸한 인간존재조건을 그려냈다는 듯, 대단히 부풀려진 낙관으로 영화를 맺어버린다. 정말 경이로운 삶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올림포스의 순수한 눈으로 코언 형제를 보라. <파고>와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이 어마어마하게 똑똑한 형제는 그들이 우월감을 느끼지 못할 만한 캐릭터를 골라 다루는 위험을 택했다. 이 전략은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에서 폐기되었다. 이 영화는 세명의 백인 바보들(조지 클루니, 존 터투로, 팀 블레이크 넬슨)이 범죄조직을 떠나 30년대 후반의 미시시피로 탈출하는 이야기로서 자그맣고 멍청한 조크다.

기본적으로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는 멍청한 사관후보생, 좀비 종교인,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유색인종 소년, 시끄러운 은행털이범 등을 망라하며 딥 사우스(미국 최남단지역)의 상투적인 그저그런 유색인들 얘기를 따뜻이 그려보려고 했나보다. 미술디자인 등은 대단하지만, 나는 하시라도??? 이놈의 깜짝선물상자를 쾅 하고 닫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싸였다. 그저 이들의 연기란 이리저리 찌그러뜨려 우스꽝스런 표정의 얼굴을 만드는 데 국한돼 있으며 클루니는 중년시기 버트 레이놀즈의 느끼한 매력을 흘릴 뿐이다.

코언 형제의 이 인형극을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랠프 스탠리의 슬픔에 찬 절규를, 살상을 자행하는 KKK의 입에 얹어놓은 형국이랄까? 허무주의를 깔고 말하자면, 나는 코언 형제가 그들의 잔혹한 질서를 감쪽같은 사기극의 혼돈에 얹어두는 것을 보느니, 스파이크 리가 까다롭고 독선적이고 밉살맞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뭔가 깽판을 치는 것이 백배 더 보고 싶다.(200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