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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화산고> 무술감독
2001-12-19

“와이어 위에서 액션을 깨쳤죠”

자장면 한 그릇이 300원 하던 시절, 2만5천원이라는 거금을 들고 까까머리 이응준(35)은 친구 녀석과 함께 강릉발 청량리행 새벽열차에 몸을 실었다. 손에는 때가 꼬질하게 묻은 쿵후 교본 한권을 든 채, 교본에 적힌 대로 도장이 있다는 인천의 소래포구로 가는 중이었다. 그로부터 8시간 뒤 우여곡절 끝에 소래포구가 있다는 논현동까지 온 그들은 도장이 아닌 낚시방 앞에서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아직 도장 입구도 구경 못한 처지에 낚시나 하며 조금 시간을 보내도 무방하리라’는 중학교 1학년다운 발상에서였다. 하지만 낚시 도중에 친구 녀석이 바늘에 손을 꿰어 병원에 실려가고, 어이없게 돈을 탕진한 그들의 대의에 가득 찬 가출도 그렇게 끝이 났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그의 무술에 얽힌 기행은 여전했다. 부모님 허락하에 태권도부에 드는 걸로 모자라 잭 나이프를 가슴에 품고 늘 혼자 고독을 씹고 다녔다. 간혹 그를 눈꼴 사납게 여긴 동네 깡패들과 한 차례 맞장을 뜨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부려놓기란 힘들었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식에게만은 험한 일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부모는 그가 음악가가 되길 바랐다. 남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바이올린을 사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는 주위에서 ‘곧잘 켠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실력을 쌓았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음대 입시에서 떨어지고 그는 미련없이 무술도장을 찾아 85년 정식으로 상경한다.

2년 전인 83년만 하더라도 <돌아온 용팔이> 시리즈를 비롯해 홍콩영화를 흉내낸 무협영화들이 줄을 이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쿵후와 검도를 익히기 시작한 85년은 우리나라의 액션영화 붐이 어느 정도 끝물에 이른 때였다. 그래서인지 전문 무술인으로서 영화에 진출하려는 그의 생각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재 ‘영구아트’(대표 심형래) 무술팀에서 10년 가까이 아동물과 TV 역사극 등에 출연하던 그는 본격적인 ‘영상무술’을 배우기 위해 정두홍 무술감독을 찾기도 했다. 정 감독이 이끌던 ‘서울액션스쿨’에서 3년 정도 활동하던 그는 <화산고>를 계기로 다시 예전의 영구아트팀과 손을 잡았고, 지금은 프리를 선언한 상태다.

‘순수 국산 와이어액션’을 실현하기 위한 지난 1년간의 작업은 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아찔하다. 준비기간으로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달이었고, 안전하면서도 폼나는 액션장면을 위해 그의 팀은 와이어 위에서 살다시피 했다. 공중에 뜬 채로 어떤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생각과는 아주 달랐다. 차라리 땅을 박차고 공중에 떴다면 근육이 알아서 긴장하고 이완하면서 자연스레 폼이 나오지만, 와이어 위에서는 근육이 전혀 힘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러한 고충에도 배우들이 놀랄 만큼 잘 참아주었다. 자잘한 부상은 많았지만, 큰 사고가 없었다는 점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화산고>를 통해 비싼 홍콩 스탭 대신 이젠 국산 스탭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보여준 그는 현재 <재밌는 영화>에서 코믹액션에 골몰중이다.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프로필

1967년 태백 출생

SBS 드라마 <모래시계> <홍길동> 등 무술지도, 대역 출연

영화 <화산고>(2001) 무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