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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시리즈 산책] 버피 시리즈의 스핀오프 <엔젤>
2001-12-27

뱀파이어, 멀더보다 심각한

(Angel) OCN-액션 금요일 오전 11시30분, 오후 9시30분

뱀파이어 해결사 버피에게는 뱀파이어 애인 엔젤이 있었다. 리암이란 인간에서 흡혈귀가 된 안젤루스는 자기 집 식구들에게부터 어느 하나 안 가리고 악행을 저질렀고, 집시의 보복으로 저주를 받는다. 그 저주는 ‘뱀파이어이되 인간의 영혼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악한 짓은커녕, 자신이 그동안 지은 죄를 속죄하려 하고 이름을 엔젤로 바꾼다. 거기서 엔젤의 딜레마는 시작한다. 자신의 본질은 어떤가? 과연 엔젤은 착하고 안젤루스는 사악한가? 그렇다면 안젤루스와 엔젤이 되기 전의 리암이라는 인간은? <버피와 뱀파이어> TV판에서 처음 등장한 엔젤이라는 캐릭터는 정말 갈피를 못 잡을 정도이다. 엔젤은 처음엔 버피의 수호천사로, 그 다음에는 적군으로, 그 다음에는 애인으로, 그리고 나서는…. 턱시도 가면보다 더 심한 널뛰기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즉각적으로 엔젤이라는 인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모순과 고민은 다 안고 살아가는 사람 말이다. FBI의 폭스 멀더를 불러다가 누가누가 더 고민하나 경진대회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엔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 늘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 TV시리즈에서 무척이나 빈번한 것 중에 ‘스핀오프’(spin-off)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어떤 드라마의 캐릭터 중 몇명을 분리해서 아예 다른 시리즈를 만드는 경우를 가리킨다(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다른 드라마에 등장해서 겹치는 것은 ‘크로스오버’(crossover)라고 한다). 위에서 좀 길게 설명한 엔젤은 버피의 인기를 등에 업고 딴살림을 차렸다. 바로 <엔젤>이다. TV시리즈 <엔젤>은 <버피…> 시리즈와 분위기는 아주 비슷하다. 괴물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LA의 사립탐정 엔젤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괴물들과 맞서 싸운다. 고민 많은 엔젤의 특성상 약간 어두운 분위기는 있지만 일을 해결하는 방식이나 드라마의 흐름은 경쾌하기 짝이 없다. 특히 이전부터 제작자 데이비드 그린왈트와 함께 작업을 해온 작가 하워드 고든은 시리즈의 흐름을 잘 잡아준다. 이 세상의 모든 고뇌는 다 자기가 해결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시달려 사는 주인공과,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기중심 성향을 잃지 않는 조수, 도와주기는 하는데 좀 답답한 조력자. 이렇게 셋이서 LA를 배회하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엔젤 역의 데이비드 보레아나스는 <버피…> 시리즈에서보다 <엔젤>에서 좀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버피가 <엔젤>의 시즌 초반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버피는 엔젤을 마음에 묻어두고 말지만 엔젤은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받고 ‘홀아비 주인공’들의 대열에 낀다. 고민마저 폼 잡고 하던 <버피…>의 엔젤은 ‘후까시’가 아니라 200년 묵은 흡혈귀답게 복잡다단하고 속 깊은 <엔젤>의 주인공이 된다. 물론 버피만의 연인에서 모든 여자들의 연인으로 만들자는 제작자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엔젤>은 주로 엔젤이 여자들을 구해주는데, 이걸로만 봐도 <버피…> 시리즈를 순전히 엔젤 보느라 봤던 여자들을 위한 쇼가 틀림없다. 엔젤의 모호하고 불균질적인 특징은 보레아나스가 얼굴과 눈은 똥글똥글 귀여운데 떡대가 엄청나다는, 불균형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것과 함께 배가가 된다. 제작자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달리 스핀오프까지 만들 이유가 없다. 엔젤은 LA의 약자들을 지키는 천사이지만 여성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수호천사’니까.

<엔젤> 역시 <버피…>처럼 경쾌함 그 자체를 추구하지만, 본성에 대해 고민하기에 경박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대인봉사라는 대의명분이 ‘후까시’가 되지 않도록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사실 허무하게시리 그렇게 고생하다 일격에 적을 물리치는 것은 버피나 엔젤이나 똑같다). 이 명랑함의 핵심 왕공주 코델리아의 버전업은 너무나 대단해서, <버피…> 때와 똑같은 신랄함으로 엔젤이 우울해지거나 날뛸 때 제대로 잡아줄 수 있는, 그래서 엔젤이 의지할 수 있는 인물로 성장해간다. 그리고 삼박자를 맞추는 조력자, 도일은 투덜이로서, 조언자로서 <엔젤>에 깊이와 무게를 실어준 역할을 했고, 그뒤를 이어 등장한 웨슬리는 돌봐주는 사람인지 돌봐줘야 하는 사람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방대한 지식으로 엔젤의 두 번째 날개가 되어 LA 뒷골목 괴물들의 세계로 인도해준다. 그런데 잠깐! 웨슬리의 말끔깔끔한 성격과 엔젤의 사근사근한 성격이 만나면, 완벽하게 게이 커플이다. 부디 보다가 착각하지 마시길.

이상하게 버피와 엔젤에 관련한 시리즈에서는 한국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뱀파이어 해결사 중 한국 여자가 있었다는 말도 (지나가면서) 한 적이 있는데, 아예 <엔젤>에서는 코리아타운이 등장한 적이 있다. 코리아타운의 마사지 업소는 괴물들이 와서 마사지 받고 쉬고 가는 곳이라는 설정에 보다가 방바닥을 치며 웃어댔다.

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