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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계도 지겹다”
2001-12-29

<샴·하드 로맨스>의 김정구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라는, 영화가 있었다. 4년전, 김정구라는 사람은 여기서 모자관계를 가지고 발칙한 장난을 했었다. 아들은 엄마 앞에서, 엄마는 아들 앞에서 벗고 섹스하고 자해하는 이 영화는, 수면 아래에 있던 한 작가에게는 신데렐라 같은 데뷔를 안겨줬고, 독립영화계는 ‘드디어 뭔가가’하는 충격과 흥분에 휩싸였었다. 처음부터 그는 이 바닥에서 스타였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샴쌍둥이 남매간의 멜로(<샴·하드 로맨스>)라니. 김정구 감독은, 여전히 놀랍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영화와 살아가는 일에 대해, 그는 마치 “침대 밑에 시체가 있다”라고 하듯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는 약간은 자폐적일 수도 있을 만큼 자기 자신 안의 소통에 익숙한 사람이다. 영화도 혼자 놀듯, “내가 만든 것을 내가 보고 싶다는 갈증”에서 시작했고, 창작을 위한 영감도 주로 그 자신의 예전 일기장에서 찾는다. 스스로 많은 것을 가진 사람, 스스로와의 대화에 능통한 사람, 그는 무엇보다 영화, 시, 미술,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 표현수단 사이를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재주를 갖고 있기에 행운아이다. “독립영화계의 이단아, 맞다. 난 독립영화계 자체에 대해서도 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딱 잘라 말한다. 무엇이 그에게 영화를 하게 만들었고, 무엇이 그를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들었나. 그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1993년; 영화로 갈 길을 ‘예언’하다

“미술도 싫다. 이제부터는 시를 쓴다. 시를 쓴 다음엔 영화를 하고 영화를 한 다음엔 사랑을 한다.” 김정구 감독은 최근 1993년도의 일기장에서 이 구절을 발견하고, 거의 ‘예언’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동국대 무역학과에 적을 두고 있던 대학 시절, 그는 전공에는 관심이 없이 ‘그리고 그림’이라는 이름의 순수미술동아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던 아마추어 예술가였다. 영화를 하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한 건 1993년이 처음이었지만, 카메라를 손에 들기 시작한 건 1995년 무렵. 나중에 파적에서 함께하게 된 후배 우관식과 워크숍을 하면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때로서는 놀라웠던 “영화를 직접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비디오카메라 하나를 빌려 학교의 비둘기들의 생태를 찍기 시작했다. 상영 같은 것은 없었다. 어차피 혼자 보기 위해 만든 거였으므로. ‘내가 만든다’, 라는 것은 그 시절 김정구 감독에게 있어 ‘나를 위해 만든다’, 라는 것과 동의어였다. 혼자 하는 놀이 같은 것이랄까. 형제없이 자란 그에게, 자족적 유희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넘쳐나던 꼬마가 “혼자 노는 방법”으로 연구해냈다는 “개미들을 한꺼번에 많이 죽이기”처럼, 그는 카메라로 비둘기들을 찍으며 새로운 놀잇거리를 발견한 것이다.

어쨌든 ‘찍는 재미’를 알게 된 뒤, 그는 어떻게든 카메라를 구해 영화 만들기를 시도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1996)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비둘기의 생태를 찍은 습작 다음에 그렇게 그가 만든 작품이었다. 방송사의 아는 사람에게서 카메라를 빌려 유메틱 필름으로 찍은 작품. 어느 나른한 일요일, 한 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계란 프라이를 해서 밥을 먹는다. 그리고 담배 한대를 피우려는데, 담배가 없자 침대 밑에서 시체를 꺼내 그의 옷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피우고 시체를 다시 침대 밑으로 밀어 넣는다. 이 작품에서는 직접 시체 역을 맡아 연기도 해봤다. 역시 상영은 하지 않았다. 이번엔 “어디서 어떻게 상영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다음해인 1997년 서울단편영화제에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를 출품하면서, 그는 비로소 관객을 만나게 된다. 1997년; 지하창작집단 파적 결성 뒤 전위예술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는 포르노를 보는 아들에게 사과를 깎아 권하는 엄마와 그 사과접시를 엎어버리는 아들에서 시작, 걸레질하는 엄마 앞에서 남자애인에게 아랫도리를 맡겨놓고 침대 위에 걸터앉은 아들, 아들 앞에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식칼로 자해하는 엄마로 이어지며 충격적인 장면들로 모성애의 습습한 구석을 재기발랄하게 까발린 작품이다. 관객뿐만 아니라 독립영화계에도 충격적인 작품이었던 이 영화는 그 파격적인 내용으로 영화제의 화제작이 되었고 또 우수상을 따냈다. 화려한 데뷔였다.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를 만들며 그 스탭들이 결성한 지하창작집단 파적은, 이후 그의 다양한 활동의 준거지가 되기도 했다.

김정구 감독은, 영화감독만으로는 다 아우를 수 없는 인물이다. 미술과 음악과 시와 영화, 퍼포먼스를 시나위 연주하듯 제각각 추구하는 ‘파적’의 성격 그대로, 그는 장르에 국한돼 있지 않은, 장르를 넘나들고 싶어하는, 아주 광범위한 의미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전위예술가’라는 말을 써도 괜찮을까, 하고 묻자 김정구 감독은 “바로 그게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파적이 해온 전시와 퍼포먼스, 그자신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시작업 등이 그 안에서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창작으로 자리잡혀 있다. 언론에 비교적 많이 노출되었던 1998년 봄의 거리 퍼포먼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길에서 담배피우는 것에 대하여>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

1999년 3월 인사동의 작은 갤러리 ‘보다’에서 열었던 파적의 ‘말세의 희탄’ 전도 그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김정구 감독은 이 전시에서 자신의 알몸과 다른 여러 이미지들을 섞어 만든 180분짜리 비디오물 <인더스트리아 육성고백>을 상영하는 한편, 촛농으로 자신의 우는 모습을 만들어낸 조소작품 <검은비, 눈물많은 남자>, 스티로폼 위에 탄트라의 인체해부도를 그린 작품,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에 열을 가해 일그러뜨린 작품, 자신의 얼굴과 성기와 팔 등을 그린 유화자화상 등을 전시, 여러 매체를 통한 표현을 시도했다. 그런 사이사이, 시위 중 돌에 맞아 깨진 머리 틈새에 민들레 홀씨가 날아들어와 꽃을 머리에 얹고 다니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 <민들레>(1998) 등 파적의 영화작업도 계속됐다. 이런 작업들이 보여주듯, 김정구 감독에게 영화는, 유일한 표현수단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다른 표현수단과 비교되는, 여러 가지 가능성 중 하나이다. 단편작업의 시작을 언제나 시로 한다는 그에게, 영화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것과 비슷한 행위인 것이다.

2001년+; 염증, 새로움에 이르는 병

<샴·하드 로맨스>로 부산영화제에서 선재펀드상을 수상하고 <사자성어> 프로젝트의 한 작품인 <하지> 촬영도 마친 요즘, 그는 <하지>의 후반작업과 장편준비작 <어깨들의 합창> 완고 쓰는 일, 그리고 계간지 <독립영화>의 편집에 매달려 있다. 여름의 절기 ‘하지’에서 제목을 딴 그의 신작 <하지>는 ‘성의 일상성’을 얘기하는 영화. 찻집 맞선자리에서 만난 남녀가 장소를 옮겨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서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듯 식당에서 섹스를 한다는 이야기다. 원래 섹스는 그런 거라고, 말하는 작품.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샴·하드 로맨스>, 그리고 <하지>까지 모두 성적 모티브가 중요하게 들어 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실제 생활에서 섹스가 가장 자극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극장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자성어> 프로젝트 외에, 그는 2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하나는 붕괴된 건물에 갇힌 두 남자가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이야기인 <역진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교도소 합창단에 들게 되는 조직폭력배들의 이야기를 <풀몬티> 같은 느낌으로 그리는 상업영화 <어깨들의 합창>이다. 두 작품 다 언제 확실히 제작이 시작된다는 계획은 없는 상태. 그러나 조급할 것은 하나 없다. 김정구 감독에게 장편 데뷔는, 단편에서 장편으로의 이행, 혹은 독립영화계에서 충무로로의 진입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는 왠지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 돈도 별로 안 들고, 개인을 위한, 만드는 사람을 위한 작품에 가까우니까”라는 말대로, 그는 장편 데뷔를 하더라도 ‘놀이’로서의 독립단편 작업과 ‘일’로서의 충무로를 병행할 생각이다.

영화 이외의 작업에도 앞으로 그는 계획이 많다. 일단 이제까지 건드려보지 않은 분야인 ‘음악’에 손을 댈 생각. 키보드를 배워 음악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작업을 해볼 계획을 갖고 있다. 또 탭댄스도 배울 예정이고, 본격적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여러 가지 그의 계획들 속에는 ‘사라지는 것’도 들어 있다. “당장 하고 있는 일들이 끝나면 조만간 인도건 티베트건 터키건 어디 먼 곳으로 떠날 거다. 그러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라는 말로 미루어보아. 그에게, 요즘 가장 창작의 자극을 많이 주는 것은 그 자신의 1993년 일기다.

워낙 자체순환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사적으로나 일에 있어서나 살아오는 동안 가장 힘든 시기’라는 요즘, 그는 외적인 것들이 유난히 더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엔 소설은 박상륭, 시는 이상, 영화는 데릭 저먼, 미술은 마그리트나 달리,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는데 요즘은 모르겠다. 난독증이라고 하나. 글은 읽는데 들어오진 않는다”라고 한다. “독립영화계는 그저 순수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기도 딴 데랑 똑같은 것 같다”는 토로에서, 그가 지쳐 있는 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의욕과 피로가 뒤섞여 있는 상태랄까. 미술을, 시를, 영화를, 옮겨다니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온 그는 지금 새로운 표현수단에 대한 욕구와 더불어 또 한번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것에 대한 ‘염증’은, 그에게는 새로워지는 것에 대한 하나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글 최수임 sooeem@hani.co.kr.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샴·하드 로맨스>는 어떤 영화

죽은 뒤, 살이 썩고서야 마주한 사랑

등이 붙어 있는 샴쌍둥이 남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에게는 떨어져 있기에 안을 수 있는, 다른 남자가 있다. 여자가 그의 것을 입 속에 넣을 때, 여자와 몸이 붙어 있는 남자는, 뒤돌아 앉은 채로 사랑함에도 사랑하는 이를 안을 수 없는 슬픔에 떤다. 죽어서야, 죽고 나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 살과 피가 모두 마르고 뼈만이 남아서야, 그들은 마침내 마주하고 눕게 된다. 김정구 감독이 고향 대구와 그 근교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전작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와는 달리, 비일상적이고 신비로운 영상을 보이며, 원초적인 시간감각에서 우러나는 판타지를 담고 있다. “샴쌍둥이에 멜로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봤다. 멀지만 가까운 사이인 사랑하는 이들간의 관계를, 샴쌍둥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고. 그는 이 작품으로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선재펀드상을 받았다.▶ 한국 독립영화계의 두 이단아 김정구, 이송희일 감독

▶ <샴·하드 로맨스>의 김정구

▶ <슈가 힐> <굿 로맨스>의 이송희일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