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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우릴 지켜본다` 서늘한 공포
2002-01-04

`천재`란 수식이 따라다니는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30)의 <디 아더스>(2001)는 관객을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물이면서 잔혹이나 살벌함 대신 ‘매혹’을 통해 공포로 이끈다. 흉측한 살인마나 흉기는커녕 피 한 방울 화면에 비치지 않고, 어떤 특수효과나 컴퓨터그래픽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련된 연출력에 기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보는 이의 불안감을 극한까지 조여간다.

전쟁이 막 끝난 1945년 영국 채널제도 저지섬에 자리한 낡고 거대한 저택이 영화의 배경이다. 늘 음산한 안개에 덮여 있는 외딴 저택에 새 하인 세 명이 찾아온다. 이 저택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인 그레이스(니콜 키드먼)가 두 남매를 데리고 산다. 두 아이는 햇빛을 보면 물집이 생기고 호흡곤란으로 인해 생명까지 위험해지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다. 그레이스는 아이들을 빛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항상 커튼을 쳐두고 문을 닫은 뒤엔 반드시 잠그도록 하인들에게 지시한다. 그러나 하인들이 온 뒤 저택에선 이상한 일이 꼬리를 문다. 딸 앤은 아무도 없는 방에서 발자국 소리와 피아노 소릴 듣고, “빅터란 이름의 사내아이와 할머니를 보았다”는 얘기를 되풀이한다. 집주인 그레이스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여성이다. 강인하고 현명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초자연적인 현상 따윈 믿지 않는다. 낡은 사진첩의 사진들, 하인들의 미심쩍은 행동, 앤이 그린 사내아이와 할머니의 얼굴, 그리고 햇빛을 가리기 위해 늘 드리워둔 커튼 등 작은 장치들이 하나씩 얼개를 맞춰가며 긴장과 불안감을 높여간다. 방문이 모두 50개이고 열쇠가 15개인 외딴 저택에 세 모자가 하인 셋과 산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스산하다. 여기에 `누군가`가 더 있다는 느낌이 인간 내면에 암흑물질처럼 잠겨있는 공포를 흔들어 깨운다.

<디 아더스>를 보며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출세작 <식스 센스>(1999)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디 아더스>는 풍부한 은유적 장치로 인해 <식스 센스>의 설정을 빌렸다는 핸디캡을 충분히 넘어선다. 가령 텅 빈 방을 수십 개 거느린 전후의 거대한 저택 자체가 현대 유럽의 `가버린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 빛을 보면 안 되는 존재라는 설정은 자폐적 세계의 끝간 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장 중심에 놓인 은유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타자’라는 존재다. 작품은 가버린 시간, 가버린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따라서 타자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자폐적 존재란 그 스스로가 얼마나 괴기스러울 수 있는지를 더디게 드러낸다. 이 작품을 쇠락해 가는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쓸쓸한 초상화로 읽는 것도 지나친 해석은 아닐 듯하다. 11일 개봉.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