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내 인생의 영화
적은 내 안에 있다, <플래툰>
2002-01-09

언제, 누구에게서 처음 들은 말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다”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다. 연일 신문의 상당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제외하더라도 세계는 결코 우리가 매일 만나며 살아가는 서울의 일상처럼 평화롭지 못하다. 크건 작건 마치 우리가 수시로 동료들과 어울려 부딪치는 맥주잔들만큼이나 흔한 전쟁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음을 모르는 현대인은 없다. 다만 느끼지 못할 따름이다. 따라서 원하든 원치 않든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 누구도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올해로 만 36살이 된 나는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이른바 ‘386세대’이다. 유신정권의 반공교육은 단순히 ‘교육’의 정도를 넘어선 ‘경전’의 수준이었으며, 그 결과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전쟁, 특히 ‘북괴군’과의 전쟁은 곧 감당할 수 없는 공포의 다른 이름이었고, 대한민국의 ‘국민학교’에서 1970년대를 보낸 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꾸었을 ‘북괴군에 쫓기는 악몽’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비록 최전선에서 저 멀리 떨어진 부산에서 자랐지만….

그토록 철저히 반공교육을 강제한 무리들의 의도대로, 어린 내 머릿속에서 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결실을 맺었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우리 또래들을 무한히 열광하게 했던 6·25전쟁을 배경으로 국군의 활약상을 그린 <전우>나 볼펜모양의 독침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간첩 체포작전을 다룬 같은 TV드라마도 한몫했던 걸로 기억한다.

철이 들면서 전쟁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역사적인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전쟁이 단순한 영토분쟁이 아닌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끔찍한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내가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을 본 것은 혼란과 새로운 희망이 난마처럼 얽혀 있던 1987년이었다. <플래툰>은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 본 영화였는데 결코 길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틀에 밖힌 군생활은 내게 적지 않은 구속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런 나에게 ‘소집해제’는 민간인으로서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뜻깊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렇게 들떠 있던 나에게 <플래툰>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베트남전을 소재로 다룬 영화 <플래툰>은 실제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올리버 스톤의 양심선언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이 영화에서 인간이 만든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는 전쟁이 인간 스스로를 얼마나 참혹하게 파멸시키는지를 예리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비인간적 만행들을 저질러댔는지도 숨김없이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플래툰>은 개봉 당시 수많은 상을 휩쓸며 각종 언론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는데, 심지어 그토록 보수적인 아카데미마저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선사하여 <플래툰>이 명실상부 베트남전을 다룬 최고의 영화로 우뚝 서게 하였다.

미국이라는 사회, 작게는 헐리우드라는 사회가 가진 특유의 폐쇄적 보수성을 감안할 때 가히 ‘용기’라는 한 마디 단어로밖에는 압축하기 어려울 올리버 스톤의 황홀한 양심선언에 아직 완벽한 ‘사제티’를 갖추지 못한 내가 받은 감동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으며 이는 그 당시 우리 사회 전역에 퍼졌던 민주화 물결과 함께 알 수 없는 후련함과 뭉클함으로 다가왔다(미국의 치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화 <플래툰>이 우리나라에 개봉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노도와도 같았던 민주화의 물결 덕이었음은 이미 각종 매체에서 주지시킨 바 있다).

그 후련한 감동의 때로부터 벌써 15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전쟁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공교롭게도 현재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전쟁의 장본인이 영화 <플래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라는 사실은 역사만이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한다. 물론 <플래툰>의 양심선언이 절대 미국의 것이 아닌 올리버 스톤이라는 한 개인의 것이긴 하지만, 때로는 개인으로부터 출발한 영화가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기도 하며, 어떠한 탁월한 논문보다 더 분명한 역사성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는 경험적 사실에 견주어볼 때 <플래툰>이 가진 자유롭고 솔직한 고발정신은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We didn’t fight with the enemy… We fought with ourselves….”

대학 재학중에 자원입대하여 베트남으로 간 테일러가 고백하듯이.

관련영화

양중경/ (주)진인사필름 대표이사

(필자 양중경씨는 <친구>에서 놀라운 부산식 영어를 거리낌 없이 발음하던 영어선생으로 출연했고, 최근 진인사필름을 창립해 곽경택 감독의 차기작 <챔피언>을 제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