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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라>의 농염한 여인, 종려시

홍콩은 나를 소화하지 못해!

종려시의 별명은 ‘타이지’다. 중국어로 포도라는 뜻이다. 커다란 눈동자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1940년대의 농염한 타이여인으로 분한 <잔다라>에서도 그녀의 눈은 주인공 잔다라를 유혹하는 분렁 부인의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

1970년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중국계와 베트남계 부모 밑에서 태어난 종려시는 1993년 몬트리올 대표로 홍콩의 미인대회에 참여했다 미스 중국으로 선발되면서 평범한 날들에 이별을 고했다.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종려시는 곧 영화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정전자2> <이연걸의 보디가드> <양조위의 유망의생> <인어전설> 등을 통해 국내 관객에게도 꽤 친숙한 얼굴이 됐다. 그저 그런 영화들을 거치던 종려시는 1998년부터 결혼, 임신, 출산, 이혼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영영 스크린과 멀어진 듯했다. 그러나 2001년 인도와 프랑스 등 4개국 합작영화 <삼사라>와 타이영화 <잔다라>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 수도승의 행적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해탈에의 고뇌를 그린 명상적인 영화 <삼사라>에서 종려시는 주인공인 수도승을 속세로 끌어내는 매혹적인 여인 페마로 분했다. 히말라야의 고산지대에서 촬영한 <삼사라>를 찍으면서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맨얼굴로 촬영에 임하고 요리도 직접 해야 하는 등 고된 촬영을 강행하던 그녀에게 “운명처럼” <잔다라> 대본이 왔다. 종려시는 흔쾌히 노출연기를 수락했고,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이 요구한 1940년대 미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20파운드(약 6kg)를 찌워 숨막힐 듯 농염한 매력을 발산하는 분렁 부인으로 분했다.

지난해 <삼사라>와 <잔다라>로 부산영화제를 찾아오기도 했던 종려시는 “앞으로는 동남아쪽에서 배우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싶다. 섹시스타의 이미지를 벗고 연기파 배우로 변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 두편의 영화를 보면 터무니없는 꿈은 아닌 듯하다.

<잔다라>

논지 감독은 완벽주의자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융통성이 있고, 스토리보드를 가져와 의향을 물어보는 등 여배우를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동성애 장면을 찍을 때 논지 감독이 요구했던 동물적이고 쇼킹한 장면 연기가 조금 힘들었다.

섹시스타라는 타이틀

사람들은 나를 섹시한 배우라고만 생각한다. 벗더라도 아름답고 예술적이라면 무슨 상관이 있나. 이젠 섹스심벌 이상의 뭔가가 꿈꿀 때가 됐고, 좋은 배우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된 뒤 주변에서 더이상 섹스심벌이 될 수 없다며 우려를 많이 했다. 그건 보는 눈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맨살을 더 드러내는 것이 섹시함인가. 섹시한 여성은 삶을 진솔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다.

홍콩은 너무 좁다

홍콩은 기회가 많은 나라지만 너무 좁다. 앞으로는 배역도 까다롭게 골라서 동남아계에서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싶다. 이젠 국제적인 수준에서 활동하고 싶다. 홍콩은 나를 소화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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