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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신인감독 14인] <로드무비>의 김인식 감독
2002-01-18

길 위에서 인생 한 숟갈, 사랑 한 모금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하는데 그가 앞자리에 턱 앉는다. 미국의 폭주족이나 입을 법한 가죽옷을, 그것도 재킷에서 바지, 부츠까지 ‘풀세트’로 차려입은 그가 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사랑이야기 <로드무비>의 감독이라니. 뭔가 ‘튀는’ 사람일 것이라는 첫인상은 살아온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동아리, 동문회는 물론이고 어떤 모임에도 소속된 적이 없는”, 좋게 말해 자유인, 나쁘게 말하면 조직 부적응자다.

그런 그가 대학을 마친 1987년 ‘보헤미안의 고향’ 프랑스로 떠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충직 교수의 소개로 박광수 감독이 다녔던 에섹(ESEC)에서 영화를 배웠고, 자유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파리에서 4년을 더 머물렀다. 그 와중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은 불타올라 방학마다 귀국해 <남부군> <베를린 리포트> <명자 아끼꼬 쏘냐> 등에서 연출부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 약속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온 93년 이후 그는 불운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영화기획정보센터와 함께 준비하던 <유레일 패스>라는 배낭여행족의 이야기는 수포로 돌아갔고, 신씨네에서 <바이올렛> 등의 작품을 놓고 작업을 했지만, 끝내 ‘노선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4년 만에 나오고 말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나날이 반복됐다. “귀국 이후 함께 작업하는 회사는 항상 있었다. 하지만 장르적인 법칙을 지키지 않고, 뭔가 ‘다른’ 이야기를 추구하는 나의 태도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레일 패스>만 해도 흔히 생각할 수 있듯, 유럽을 찾은 젊은이들이 낭만의 나날을 보낸다는 게 아니라, 세명의 친구가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헤어져 각자 고독한 여행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반응을 들어야 했다.

준비를 시작한 지 거의 10년 만에 만들게 된 데뷔작 <로드무비>도 따지고보면, 김 감독이 직접 개발한 이야기는 아니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를 만났을 때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시나리오는 테크노 문화를 다룬 ‘하드코어 성장영화’ <청춘>이었다. 캐스팅이 문제가 돼 이 영화를 접은 뒤, 차 대표는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돼 있던 프로젝트라며 ‘게이와 이성애자인 남성이 여행을 떠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1주일간의 고민 끝에 그는 평소 만들고 싶었던 로드무비를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차 대표의 아이디어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이야기의 순도’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기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으로써 관객에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느끼고 체험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추구하는 노선이 작가주의는 아니라는 김인식 감독은 “요즘 한국영화에는 자폐아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극단적 상황에 몰렸음에도 직설적으로 행동하고 자유발랄하게 움직이는 인물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말한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어떤 영화?

제작사 싸이더스 출연 정찬, 황정민 후반작업중(개봉 미정)

한때 유명한 산악인이었던 대식(황정민)은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의 내면을 더이상 속일 수 없어 산도, 아내도, 가족도 버리고 거리로 나앉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어느날 주가 폭락으로 재산을 모두 잃고 아내로부터도 버림받아 거리에서 노숙자 신세가 석원(정찬)을 만난다. 그를 보는 순간 사랑을 느끼는 대식. 길거리에서 이것저것 석원을 챙겨주던 대식은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목적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가는 여행길에서 대식은 한 여인이 바닷물에 빠져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녀를 구한다. 그녀는 커피를 배달하며 몸을 파는 일주.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일주는 이들의 여정을 악착같이 쫓아나서고, 어느새 대식에게 마음을 빼앗긴 자신을 발견한다. 서로가 각기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가운데, 이들의 여행길도 갈수록 팍팍해진다.▶ 2002 신인감독 14인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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