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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 경제학 (1)
2002-01-24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한탕주의

TV 오락프로그램들이 실물경제에 끼어들었다. 그 이익금의 대부분은 불우이웃을 돕는다. 일반경제에 TV카메라가 끼어들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서 쓰인 경제학 용어들은 엄밀하지 않으며, 경제학의 가장 큰 오류일 전제(前提)의 비현실성과 가설(假設)이 여기서도 무작위로 사용되었다.

TV 경제학 1장 물물교환 편

옛날 어느 총각은 어머니가 남기신 소중한 유산, 좁쌀 한톨을 소중히 여겼다 한다. 이 총각은 좁쌀 한톨을 가지고 길을 떠났는데,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는 사이 이 좁쌀을 쥐가 먹는다. 좁쌀을 먹은 쥐를 받아서 다음 주막으로 갔는데 여기서는 고양이가 쥐를 먹고, 다음 집에서는 고양이가 말 발굽에 채여 죽고, 다음 집에서는 황소가 말을 죽이고, 황소는 정승댁에 이미 팔려, 이 총각은 결국 이 황소를 먹은 딸을 아내로 삼는다.

이 동화는 자본주의의 원리로 곧잘 인용되곤 한다. 자원이 조금씩 자신의 가치를 불려간다. 이렇게 될 때 ‘이윤’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최초 생산물과 최후 생산물과의 가격차가 이윤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이윤의 발생 원인을 구태여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노동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이 동화에서의 이윤 발생 원인을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다. 때맞춰 쥐가 좁쌀을 먹고, 고양이가 말의 발길에 걷어채이는 지극히 잘 맞는 운때와 고양이가 죽었으니 고양이를 죽인 말을 달라고 하는 똥배짱이 이윤을 발생시킨다.

SBS <초특급 일요일 만세>(일요일 오후 6시)의 ‘물물교환 합시다’ 코너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대구에서 진행된 1월6일 방영분. 남희석 팀과 주영훈 팀에 최초의 상품으로 사과가 주어진다. 남희석 팀은 1500원짜리 사과를 선인장 1만2천원⇒목도리 2만5천원⇒니트 4만원⇒족발 2인분과 북한산 액자와 컴퓨터 프로그램 37만원⇒공진단 10개와 한방파스 44만원⇒고서 <향약집성방> 감정 불가⇒두돈 이상의 토우황 200만원⇒한 트럭 쌀 62포 260만원으로 최종 교환한다.

주영훈 팀은 같은 종류의 사과를 곰인형 1만5천원⇒금목걸이 5만원 상당⇒오리털 점퍼 10만8천원⇒금목걸이 38만원⇒(그 사이 목도리 120장, 파카 한 박스, 니트 2∼3박스 등 80만원 상당을 기증받음)⇒TV폰 60만원⇒모피코트와 목도리 79만원⇒화장품 세트 100만원⇒캠코더 120만원⇒금열쇠 노리개 45돈 300만원⇒전기담요 50장 350만원으로 교환한다.

‘거리에서 배우는 경제학’이라는 말이 앞에 붙는 이 코너의 ‘경제학’은 제목에 나온 대로 ‘물물교환’이다. 물물교환이라 함은 상호간의 인정(認定)에 의해 등가의 상품이 교환되는 것을 말한다. 교환의 반복에 의해 최초 생산물 사과가 최종 생산물 쌀 한 트럭 또는 전기담요 50장으로 교환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최초 교환물이 최종 교환물과 교환될 수 있도록 이윤(부가가치)을 발생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주영훈 팀의 경우 그 부가가치 발생 원인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사인을 해주거나 김진의 피부를 만지게 해주거나 김종서가 히트곡 메들리를 부르거나 CF를 찍어주는 식이다. 무형의 가치를 가격이 낮은 교환물에 얹어주는 것이다. 그 무형의 가치들이 상품의 교환이 가능케 할 만큼 부가가치를 창조하느냐가 의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직접적인 동력은 ‘인정’(人情)이다. 이 동력은 교환 성립의 전제를 충족시키지 못하도록 한다.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는 ‘명목’이 우세하면 자발적인 수요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별로 받고 싶지도 않은 상품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준비한 고가의 상품을 꺼내놓게 된다. 그렇다면 이는 적어도 ‘자발적 기증자’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별로 자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TV 카메라’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면서 기증자의 앞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가보로 보존할 <향약집성방>과 한달 팔리는 양에 버금가는 상품이 대관절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 물물교환은 시장이라는 장소에 갈 뿐이지, 시장이라는 특성을 살려서 수요자에게 물물교환의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카메라를 끌고 갈 때 거절할 만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 없다. 그들이 땀 흘려 마련한 돈으로 불우이웃돕기라는 명목에 혹한 것이다. 좁쌀 청년이 가졌던 운을 TV는 매번 한번의 실패없이 가지면서 막무가내의 응석을 부린다(이런 겉보기 경제학과 달리 ‘물물교환 합시다’를 이번주 **에서 합니다, 하는 대대적인 홍보로 사전 준비를 하고 유연하게 가치를 더해 갈 수 있도록 길거리에서 비싼 것 파는 점포로, 상가에서 고급 상점으로 이동하는- 1월6일 방영분의 남희석 팀 최종 방문지는 상가번영회였다- 전략 등이 치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물물교환을 거쳐서 이제는 TV 경제학 ‘판매’ 편으로 가자.

TV 경제학 2장 판매- 생산자 편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KBS2 일요일 오후 6시) ‘TV 해결사 사랑의 쌀’. 하루에 몇백 포대 판매에 그치던 ‘사랑의 쌀’은 마지막회 1월13일 방영분에서 3천포를 넘게 파는 개가를 올린다. 초기 쌀 한 포대를 배달하고 배달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방식이었는데, 이 방영분에서는 마지막을 극적으로 장식하기 위한 노력이었는지 서울 동작구와 양천구 양쪽에서 쌀을 판다. 그리고 많이 팔 수 있는 곳을 돌아다닌다. 구청을 찾아가 구청장이 200포대를 사겠다고 하니 옆 구에서는 그 이상을 팔았다고 말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얻는 데 관심이 집중되었을 구청장들은 이 말에 눈이 번쩍 뜨이고 몇포를 더 얹는다. 쌀 홍보대사라는 가수 박진영은 금방 무대를 내려와서는 카메라에 잡히고, 200포 사라는 강요를 받는다. 즉석에서 100포를 사기로 결정한다.

‘사랑의 쌀’은 쌀 생산량과 재고량이 급격히 늘면서 2001년 추곡 수매가는 인하된 데 대한 농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것이 처음 취지다. 하지만 농민고(苦)는 쌀을 많이 판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농민들은 추곡 수매를 통해 이미 정부에 쌀을 판 상태다. 추곡 수매 가격은 시장 가격보다 높으므로 농민들이 프로그램에 위탁 판매를 부탁했을 리도 없다. 그러니 판매량의 증가가 농민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 것. 그리고 쌀 소비량이 상승할 리도 없다. 캠페인을 통해 팔린 약 6천포(X4만원=2억4천만원)는 단지 일시적인 판매량 급증으로 연결될 것이다. 쌀 샀다고 한 그릇 먹던 밥을 두 그릇 먹지 않는다. 쌀은 보관이 쉽다. 이어서 벌어질지도 모를 쌀 소비량 감소는 이미 코너가 끝났으므로 화면에 비칠 리가 없다. 적어도 아파트 단지 상점의 쌀 판매는 캠페인 중에도 심각한 감소를 경험했을 것이다. 제로섬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사랑의 쌀’ 캠페인은 구청이(혹은 구청장이) 쌀을 샀으므로, 개인이 아니라 공식 기관으로 수요처가 이관됐다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청이 ‘불우이웃’들에게 쌀을 나눠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청은 원래부터 비슷한 종류의 지원 사업을 벌인다. 판매자가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고나서도 이런 의문이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지원 사업 이상으로 쌀을 많이 샀을 터인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올 것인가.

실물경제를 무시하면서 이루어진 캠페인, 사실은 TV에 비치는 공간에서만 부흥한 ‘가상경제’였던 셈이다. 결국 ‘보이는 손’이 등장하여 경제를 쥐락펴락하지는 않았으므로 위험하지는 않다. 이제 TV에서의 ‘판매량 진작’이 실물경제까지 뒤흔드는 엄청난 파워를 가진 프로그램을 소비자 편에서 살펴볼 차례다. ▶ 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 경제학 (1)

▶ 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 경제학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