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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 경제학 (2)
2002-01-24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한탕주의

TV 경제학 3장 판매- 소비자 편

<느낌표!>(MBC 토요일 밤 9시45분)는 한국 최고 MC들만 모였다. 모든 코너들이 캠페인성이다. 교육개혁 ‘신동엽의 하자 하자’, 환경보호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 교양 강의 ‘경림이의 길거리 특강’ 그리고 김용만과 유재석이 진행하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호응이 높은 것은(혹은 호응도가 높다는 것이 프로그램 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한달에 한권씩 권장 도서를 정한다. ‘책을 읽읍시다’는 권장 도서를 실질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노력한다. 길거리로 나가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을 찾고, 이 사람에게 소설의 세부 내용을 질문한 뒤 맞히면 책꽂이에 놓인 책을 무작위로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재미를 위해서 100권 추가라는 종이쪽지를 책 속에 숨기기도 하고, 고른 책을 정해진 장소까지 들고 가도록 하기도 한다(1월13일 방영분부터 책을 그냥 트럭에 싣는 것으로 바뀌었다).

11월 중순 정해진 이달의 권장 도서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다. 이 책은 창작과비평사 주관 제4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창작부문 대상을 받았으며 한 인터넷 서점에는 초등학교 5, 6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다. 글자도 크고 그림도 있다. 어른이 읽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전 국민의 필독서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이 책에 대한 소개가 나가자 책은 12월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차지한다. 이후 순위를 내려갈 줄 몰랐다. 전 판매수익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되는데 이 책을 출간한 창작과비평사에서 내놓은 수익금은 4억원이다.

12월 중순 한달간 권장 도서로 정해진 책은 <봉순이 언니>다. 1998년에 나와서 한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 읽을 사람은 다 읽어 베스트셀러 등극은 어려우리라 보이는 이 책 역시 같은 길을 걷는다. 베스트셀러 1위를 내려갈 줄 몰랐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제친 것이 이 책이다. 1월 셋쨋주 종로서적과 교보서적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인터넷 서점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종로 교보 2위, 알라딘 3위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다.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다면 이것은 이미 제작자의 손을 떠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먼저 프로그램 내에서 따져볼 일이 있다. 즉 시청자들에게 ‘책들’이 아니라 ‘이 책’을 읽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라는. 이 코너에서는 다분히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사회자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다짜고짜 질문한다. “최근에 읽은 책이 무엇이냐”, “감동적인 구절이 무엇이냐”. 이 질문에 책 속의 구절을 인용하는 사람 앞에서 MC들이 무릎을 꿇고 탄성을 지른다. 지식이 갖는 위험한 위엄이 보이는 순간. 그러다가도 이 사람이 권장 도서를 읽지 않았다면 그 권장 도서를 건네주는 것이 보상의 다다. 하지만 권장 도서를 읽고 그 책의 세부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면 앞에서 말한 상품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재밌게 만들기 위한 장치. 어휴 아까워라거나 아이고 저런 애도 책을 다 읽네라는 ‘느낌’을 유발하는. 이 ‘느낌’이, 이 재미를 위한 장치가, 무작위의 시민들이 특정 책을 읽도록 무장시킨다.

특정 책을 노출시키는 것은 <봉순이 언니>의 작가가 책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가는 등의 이벤트로 강화된다. 프로그램 내의 결정적 자승자박은 MC들이 베스트셀러 순위가 집계된 곳 앞에 가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지표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들이 밀고 있는 책이 1위 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카메라에 걸린 ‘독자’도 이런 말을 한다. “느낌표에서 미는 책이 이번 달에는 이 책이라서….”

캠페인인가 광고성 이벤트인가

좋은 의도로 이루어진 일이며 독서 인구 확대에 혁혁한 공을 이뤘다는 평가가 프로그램에 따르기도 한다. 이 혁혁한 공은 국민들의 독서 패턴을 관리하는 자신의 노출 강박증에서만 그렇다는 것, 책을 읽자고 하지만 여전히 TV 앞에 책이 무력하다는 것을 확인한 한에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경제학. 만약 수익금을 모두 불우이웃 성금으로 내놓는다는 전제에서 특정 옷을 광고하고 그 옷을 입은 사람들만 찾아 다니면서 선물을 준다면? 명백한 광고성 이벤트다. 광고에 대한 규제가 심한 TV에서 광고성 ‘책’ 이벤트에 아무런 지적이 없다. 책은 문화적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책은 상품으로 유통된다. TV 속에서는 문화가 현실세계에서는 상품인가. 캠페인 ‘대상자’(일반인)가 캠페인에 자극받았다면(그리하여 프로그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르기 위해서는)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는 것만 알았어도 이런 괴리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파괴력을 실물경제에 가하고도 ‘문화적 캠페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TV 모금액, 어떻게 움직이나?

돈 모으는 텔레비전

‘이웃을 돌보는 것’은 ‘선정성과 오락성’으로 공격받던 오락프로그램의 비상구다. 그 시작은 97년 국제통화기금(IMF). 모두가 어렵다던 시절, 모두가 돕겠다고 나섰다. 1위를 하면 상품이나 상금을 우승자가 타가던 데서 상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대체하고 출연자들은 출연료만 받는 것이 대세로 굳어졌다. 요즈음 오락프로 중 경쟁프로가 유달리 많아졌는데, 경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상금을 걸게 마련이다. 이 상금 역시 대부분 사회복지 성금으로 나간다.

<해피 투게더>(KBS2)의 경우 노래를 무사히 부르면(‘쟁반 노래방’) 장학금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문제를 잘 맞히면(‘막상막하’) 그들의 돈이 장학금이 되어 전달되게 된다. ARS를 통해 기금을 모집하는 경우도 많고, 마라톤을 뛰어도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집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러 가지 경로로 이루어지는 듯 보이는 이 기금 모집은 사실은 단순한 그림을 그린다.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데 법적 허가를 받아야 하는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이 있기 때문이다. 3억원 이하의 경우에는 주소지 관할 특별시장·도지사의 허가가, 그 이외의 경우에는 행정자치부 장관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TV 프로그램의 경우 사회복지 단체에 기금을 위탁하는 방식이다.

KBS1 <사랑의 리퀘스트>의 경우 사회복지재단과 함께 기금모집을 하며 그외의 경우는 사회복지 공동기금에 대부분의 기금이 기탁된다. 사회복지 공동기금에 최근 TV 프로그램을 통해 모금된 기금이 위탁된 것은 <초특급 일요일 만세>에서 가수 조성모가 마라톤을 통해 모금한 기금 4억4천여만원, <느낌표>에서 창작과비평이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통한 수익금 2억5천만원(약정금 5억원), 김중미 작가의 기부금 1억4천여만원 등이다. 그외에 모금액이 많지 않을 경우 자체적으로 집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법 조항에 어긋난다.

연말연시를 맞아 기금을 모집할라치면 ARS 기금이 올라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빠르다. 방송3사가 다 ARS 번호판을 하루종일 켜두는데 그 올라가는 속도가 시청률과 엇비슷해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TV에서 모집하는 기금의 액수는 전체 기부금 액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것이 통상적이다. 사회복지 공동기금에서 2001년 12월1일부터 2002년 1월31일까지 벌이고 있는 ‘희망 2002 이웃돕기 캠페인’은 총 423억원이 목표액인데, 이미 목표액이 초과달성되었다고 한다. 그중 ARS를 통한(TV와 라디오 통합) 금액은 9억6천여만원이다.

기부금품법의 기본원칙 3개는 기억할 만하다. 첫 번째 기부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 복지수요가 공정하게 충족되도록 배분되어야 한다. 세 번째 배분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공개되어야 한다.

구둘래 kuskus@dreamx.net▶ 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 경제학 (1)

▶ 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 경제학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