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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컴퓨터칩, CELL
2002-01-24

컴퓨터 게임

CELL은 세포, 즉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체의 기본 단위를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소니 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와 IBM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차세대 컴퓨터칩의 코드네임이기도 하다.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로 이미 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업체로 성장한 SCE, 그리고 지금은 많이 쇠락했지만 그래도 세계 체스 챔피온을 물리쳐서 유명해진 컴퓨터 ‘딥 블루’를 개발한 IBM이 만나서 함께 작업하는 프로젝트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CELL에는 단순한 화젯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진화 방향이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연산처리 기능을 가지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던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통해 더 많은 즐거움, 더 많은 환상을 누리기를 원한다. 엔터테인먼트는 이미 단순한 여가선용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역시 강화된 계산기가 아니라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능숙하게 수행하는 원 맨 밴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디바이스 브랜드 ‘소니’에서 생겨난 SCE가 이런 흐름을 모를 리 없다. ‘플레이스테이션2’ 프로세서에 ‘이모션 엔진’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한 프로세스를 수행할 수 있다고 홍보하던 것은 그냥 홍보용 미사여구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SCE는 이때부터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으로 차근차근 한 걸음씩 밟아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CELL은 컨슈머 디바이스를 위한 범용 마이크로프로세서다. SCE의 구다라키 겐 사장은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지금까지는 단독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브로드 밴드망을 통해 상호결합해 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개막된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이 지니는 의미는 SCE의 홍보 관계자의 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지금까지 비디오, TV, 게임기, 오디오 같은 AV 디지털 기기는 각각 다른 ‘상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따로따로 ‘상자’가 필요없게 된다. 모든 기기가 하나로 융합되고, 각각의 기능은 공급된 소프트웨어에 의해 실현된다.

통합 엔터테인먼트 디바이스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CELL이다. 집에 오면 습관적으로 트는 TV, 잘 때도 끄지 않는 오디오를 대신하는 작은 상자 속에 CELL이 박혀 있다. 초고속통신망이 CELL에 뜨거운 피를 공급해 살아 움직이게 한다. CELL이 조그맣게 파닥거릴 때마다 사람들은 울고 웃고 춤추고 노래한다. 이제는 게임기라고도 미디어 플레이어라고 부를 수 없는 그 이상의 존재, 말 그대로 삶의 세포 같은 기기를 만들겠다는 것이 SCE가 지금 막 시작한 먼 여정의 최종 목표다.

우리 기술 수준으로 CELL 같은 야심찬 프로젝트를 운영하기에는 힘에 버겁다. 하지만 그 전에 걸림돌이 되는 게 마음가짐이다. 테헤란로 높은 건물들이 밤새 휘황하게 빛나지만 그들의 꿈은 더 많은 투자를 받는 것, 코스닥에 어서 빨리 등록하는 것에 머문다. 첨단 기술에 정통하다는 이미지를 심는 한편 장래에 대한 투자까지 일석이조를 노리는 정치인과 밝은 미래를 향한 탄탄한 발판을 쌓으려는 최고경영자의 이해가 의기투합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여자아이들의 야윈 손가락으로 만든 가발과 와이셔츠를 팔던 시절에 비해 보면 기술은 놀랍게 발전했다. 하지만 비전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왠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