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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양성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2)
2002-01-26

단순한 산업논리로는 신자유주의를 막아낼 수 없다

김: 문화주권을 지켜나가고 패권주의에 대항할 수 있으려면, NGO들이 그 나라의 정부와 어떻게 협력해나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해당 단체들이 영향력을 갖기 위해선 정부를 하나의 적대적인 대상으로 위치시켜 배제해서는 안 된다. 민간 차원의 교류는 행사들을 주도할 수는 있지만, 각국의 법적인 구속력까지 확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INCD 총회의 경우 공통적인 관심사를 갖고 있는 NGO들을 묶어내는 것을 넘어, 이들의 결정사항이 각국 문화부 장관들에게 전달되고 실질적인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는 일종의 외교문서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따를 만한 선례도 있다. 생물종다양성을위한협약이나 대인지뢰협약의 경우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양: 그런데 아직 한국의 경우, 문화부 장관이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지 않다는 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의회쪽에 이 문제를 건의해서 적극적인 검토를 유도하려고 했으나 감사 자체가 파행으로 치닫아 결국 전달하지 못한 게 아쉽다.

김: 여담이지만 이 네트워크의 출범에는 또다른 배경이 있다. 한 정부의 문화정책을 두고 외교통상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의 견해와 문화를 전담하는 부서의 견해가 부딪치는 경우는 다른 나라 역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쿼터제를 두고 타 부처와 문화부가 갈등을 빚는 것이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외교통상을 전담하는 장관들은 이런저런 국제회의로 자주 모이고 따라서 활동범위가 국제적이다보니 해당 국가의 내각 차원에서도 그들의 위상이 높다. 이에 비해 문화부 장관들은 교류가 없어 아무래도 사안별로 부딪치다 보면 이들에게 밀린다. 이 모임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에는 “우리도 한번 머리를 맞대보자”라는 데 각국 문화부 장관들의 뜻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쉬운 건 정작 그 회의에 모범사례를 발표하고 각국으로부터 격려를 받는 나라의 문화부 장관이 참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자리에 모인 각국 나라의 장관들이 매번 묻는다. 왜, 안 왔느냐고. 사실 우리 정부가 문화정책 부문에서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아니고 쿼터문제만 하더라도 영화인들의 견해와 큰 차이가 없는데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니 아쉬움은 더 크다. 경제적 이해 충돌할 때는 문화영역 희생해도 되나

유: 외통부하고의 문제도 있으니까 가서 무슨 말 하라고 하면 당연히 못 가겠지.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서 뭘 좀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하여튼 이런 걸 볼 때마다 한국 문화정책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단순한 산업논리에 의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돈이 돼야 육성을 하는 것이고, 자본화할 수 있는 문화만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니 미국으로 대표되는 거대 자본의 우산 속에 있는, 아니 있다고 믿는 일부 정부 관료들은 양국의 경제적 이해가 충돌할 때는 쉽사리 우리의 문화영역을 희생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치닫곤 한다. 한 나라의 문화가 창의적인 가치의 소산이고 동시에 전통으로 내려온 그 나라 국민들의 의미체계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소강상태라고 하지만 ‘누가 온다더라’ 하는 미동에도 영화인들은 매번 조바심에 머리끈 싸매고 거리에 나갈 준비를 하지 않았나. 쿼터제도를 단순히 한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산업적인 논리로는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막아낼 수 없다. 쿼터제는 문화종다양성 확보에 앞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다. 지난해 11월에 결의됐던 유네스코 선언문 내용에서 보듯이 “자본화 되지 못한 약자의 문화 역시 배려되어야 하며,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문화의 기본”임을 되새겨야 한다.

임: CCD회의에서 각국 영화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프랑스의 한 시나리오 작가가 문화상품(Cultural Product) 대신 문화업적(Cultural Works)이라는 용어를 쓰자고 제안하더라. 영화라는 문화적인 매개물을 단순히 교환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상품의미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국내에서도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향유’라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또한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도 이같은 점이 고려되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양: 99년 WTO 뉴라운드를 위한 시애틀 회의 이후, 문화다양성이라는 의제의 중요성은 급격히 높아졌다. CCD 회의, INCD 총회, 유네스코 선언문 등은 곧 자본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문화획일화 요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개별국가들이 세계문화기구 구성 및 세계문화협약 제정이라는 목표를 가시화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 국제법 관련 변호사들이 이에 관한 세부협약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의 사례는 문화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국가들로 하여금 특정 국가의 영상물이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협약을 만들도록 고무하게 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지난해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뉴라운드 협상이 타결됐지만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쏙 빠졌다.

씨네21: 세계문화기구의 구성이 갖는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논해 달라.

양: 비방디-유니버설사 대표인 장 마리 테시에가 지난해 말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는 죽었다”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미국에서 굴지의 케이블방송인 USA네트워크를 인수한 직후였다. 프랑스에서 한해 제작되는 영화 중 80%에 투자하고 있는 카날플러스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 회사의 대표가 “프랑스영화의 다양성은 자유무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장 마리 테시에가 유니버설을 인수하면서 지난 40년 동안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를 분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는 미영화인협회(MPAA)의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순간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뉴라운드를 앞두고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붙는 상황에서 이러한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한국의 쿼터제 역시 MPAA의 과녁이 되어왔던 점을 고려할 때 세계문화기구의 구성은 실로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11월31일 WTO 뉴라운드 협상 시한을 앞둔 상황에서 세계문화기구의 구성은 신자유주의로부터 문화종다양성을 지켜내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다. ▶ 문화다양성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 문화다양성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2)

▶ 문화다양성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