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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양성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2002-01-26

문화종다양성 사수를 위한 영화인 4인의 세계 문화기구 결성 제안

유럽은 지금 비상이다. “프랑스의 문화의 예외성은 이제 죽었다”는 비방디-유니버설사 대표 장 마리 테시에의 발언이 몰고온 결과다. 지난해 12월17일 미국의 케이블 업체 USA네트워크를 인수한 장 마리 테시에는 다음날 “프랑스 영화인들이 우리 기업의 미국화가 전체 영화산업을 장악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발상이자 순전한 억지”라며 “할리우드에서 제작을 하게 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프랑스) 국내시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테시에의 언급에 <르몽드>를 비롯한 언론들은 연일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2004년까지 프랑스영화에 연간 3억500만유로를 투자하게끔 되어 있는 유료방송사 카날플러스의 실질적 소유주의 이같은 입장이 프랑스 영화인들로선 의무협약을 저버릴 수도 있다는 무책임하고 신중하지 못한 처사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비단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돌발사태만은 아니다. 그 여파는 한국에도 몰아쳐온다. 할리우드의 무차별 침공으로부터 자국문화를 더 나아가 세계문화종다양성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으로서의 ‘문화적 예외’ 조항을 지지하고 있는 한국 역시 한-미투자협정 등을 앞두고 쿼터제 축소 및 폐지 요구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부시의 방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4인의 국내 영화인들 역시 현 국면에 대한 걱정스런 우려와 함께 문화다양성의 위기를 넘기 위해서는 세계문화기구의 조속한 결성과 세계문화다양성을 위한 협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편집자

때: 2002년 1월14일(월) 18:30

장소: 한겨레신문사

패널: 김홍준 감독(영화진흥위원회 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유지나 교수(동국대 영상학부 교수) 임종재 감독 양기환 사무처장(스크린쿼터문화연대)

씨네21: 장 마리 테시에의 발언의 여파가 크다. 국내도 부시의 방한을 앞두고 별별 말들이 돈다. 2001년엔 한국을 비롯,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자국영화가 할리우드영화에 비해 강세를 보이며 환호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임종재(이하 임): 그런 나라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렸던 CCD회의는 침울하기까지 했다. 10개국에서 방송, 영화, 출판, 음반 등 4개 분야의 전문가 그룹들이 모였는데 다들 상황이 처참했다. 대개 미국과의 경제협상을 맺은 뒤 자국의 문화계가 더욱 열악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할리우드의 공세에 맞서 자국 문화주권을 지켜낸 성공적인 사례국가로 초청받은 우리를 제외하곤 상황은 비슷했다. 특히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칠레는 정도가 심했다. 한해 200편이 상영되지만 그중 자국영화는 고작 9편이라고 하더라. 최근 열성적으로 국제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캐나다 역시 이미 40년 동안 국립영화협회의 지원이 있었음에도 북·미자유협정에 의해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은 고작 3%에 머무르는 상태였다. 멕시코도 자국영화는 17편으로 시장점유율은 10% 이하였다는 관계자의 발표가 있었다. 우리야 쿼터 싸움 하면서 국민들에게 ‘둑이 곧 무너진다’는 가정 아래 주시해 달라고 요청하는 식이었지만, 이미 다른 나라들은 보루가 뚫린 곳이 한두곳이 아니었다.

양기환(이하 양): 첫쨋날 회의에서 우리의 경험에 대해 털어놓았는데, 끝나자마자 다들 한국을 본받자고 석상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둘쨋날 오전 회의 도중 9·11 사태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회의가 어수선해졌다. 다들 식당으로 몰려가 한참 동안 속보를 마주하기도 했다. 결국엔 ‘미국의 패권주의가 테러를 당한 것’이라며 회원들이 자리를 추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세계적인 여론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유지나(이하 유): 따지고보면 신자유주의라는 게 미국의 패권주의를 유화시킨 표현 아닌가. 세기가 바뀌었지만 그 영향력의 자장은 여전히 엄청날 것이다. 그럴수록 다른 국가들은 반대로 항상 ‘위기의식’을 달고 다닐 수밖에 없다. 캐나다만 하더라도 반자본주의 색채를 가진 프레데릭 벡 같은 작가들을 빼놓으면 누가 남아 있나. 인력들 대부분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인데.

미국 패권주의 앞에서 ‘자국문화’를 지킨다는 것은

김홍준(이하 김): CCD에 이어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렸던 INCD 2차 총회의 분위기는 그래도 낙관적이었다. 참석자들 대부분이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로 전화할 수 있다는 입장들을 피력했다. 뉴욕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인디 아티스트 연대 조직의 대표는 참석하지 못한 대신 “자신은 뉴요커이니 주위에서 벌어진 일들로 인해 경황이 없어 행사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9·11 테러는 지금 우리가 모여야 하는 이유를 더욱 잘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서한을 보내 좌중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씨네21: INCD 총회는 문화예술인들이 결집할 수 있는 자리임과 동시에 ‘문화정책을 위한 국제네트워크’ 즉 문화부 장관들의 모임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국제회의로 알려져 있다.

김: 맞다. 테러 때문에 한때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음에도 이 총회가 열릴 수 있는 배경에는 문화부 장관들로 구성된 국제네트워크 즉 INCP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해에도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과 각국 문화부 장관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여기서 문화의 다양성을 위한 세계국제기구 구성과 세계문화조약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라는 회의 결과가 직접 전해지기도 했다.

씨네21: NGO와 정부 관계자의 만남에서 상징적인 의미 이상의 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러한 만남이 각국의 정책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인가. ▶ 문화다양성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 문화다양성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2)

▶ 문화다양성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