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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로스트 메모리즈> [2] - 장동건의 제작기 ②
정리 박은영 2002-02-01

내가 NG를 내다니

[일본어 대사]

누가 그런 얘길 했다. 장동건은 손에서 시나리오를 놓지 않기로 유명하다고. 칭찬인가, 아닌가. 사실 난 시나리오를 손에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인 시절에는 대본에다가 시선 방향까지 적어놨다. 그게 습관이 된 게 아닌지. <…로스트 메모리즈>는 컷 수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컷을 기억하기 위해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고 일본어 대사 때문에도 들고 있었다. 우리 영화는 1/3이 일본어 대사로 진행된다. 난 사실 드라마이건 영화이건 NG를 많이 내는 편이 아니다.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르게 표현해본다든가 한 적은 많이 있었지만. 그런데 <…로스트 메모리즈>에서는 엄청난 NG를 냈다. 일본어 대사 때문에. 외우는 것도 문제였지만, 연기할 때도 느낌이 잘 안 살았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가장 걱정이 되었던 장면들도 아버지에 대해 더럽고 비열한 변절자라고 하는 것, JBI에서 국장한테 대드는 것, 그리고 전무이사실 장면 등 소리지르면서 일본어 대사를 하는 부분들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모욕적인 말들을 듣고 전무이사실에서 화난 채로 뛰쳐나오는 사카모토를 사이고가 말리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이 대사를 할 때 톤을 많이 안 올리고 갔는데 감독님이 컷을 부르셨다. 나도 해보고나니 아닌 거 같았다. 결국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톤을 올려서 했다. 하고 나서도 너무 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편집한 걸 보니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톤을 높였어야 했는데…. 이렇게 현장에서의 느낌과 편집본을 봤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경우가 있다. 아무리 일본말로 하더라도 나도 한국사람이고 관객도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보기 때문에 더 소리를 높였어야 하는 거다. 연기력의 부족, 기술의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일본말로 소리를 높이려니까, 자꾸 캐릭터하고 안 맞는 소리가 나와버리곤 했다. 이런 장면들을 찍고 나면 며칠 동안 실의에 빠지곤 한다.

몸으로 하는 건 쉽다

[육탄전]

그동안 양수리 제1세트에는 사카모토의 오피스텔, 그러니까 내 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사카모토의 집은 시나리오를 고려해서 지어진 집이다. 자객이 들어와 창을 뚫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창문이 있고, 벌어질 액션을 고려해서 가구가 배치돼 있다. 이곳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액션이다. 치고받고 하는 몸싸움이 길게 이어지는 첫 번째 액션이기도 하다. 결국 핸드헬드로 액션의 사실성을 높이면서 길게 이어 찍기로 했다.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많이 힘든 방법이다. 동작도 맞추어야 하고 중간에 조금이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이 해 본 연기였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런 장면을 찍을 때는 집중도 잘되고 재미도 있다. 리허설을 하면서 위험성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면, 즐기면서 촬영을 하게 된다. 평상시에는 못해보는 장면들이니까. 크게 다친 사람 없이 촬영이 잘 끝났다는 것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사카모토는 누구인가

[캐릭터 이해의 어려움]

사카모토의 상황에 대한 믿음이 나 자신 안에서 흔들린다. 사카모토가 과연 한국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부터 걸리기 시작한다. 감독님은 이 영화가 가상의 역사이지만 관객이 영화에 대해 믿음을 가지면 된다고 했다. 또 시대만 옮겨놓은 독립군 영화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가 지금까지 쌓아온 선입견을 우리가 모두 씻고 촬영을 하고 연기를 했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중반 지나고 나서는 서로 합의를 하거나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묵시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카모토가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었다. 영화 속의 설정이 와닿지 않는다. 난 데뷔 때부터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아버지에 대해 떳떳해하지 못하는 그런 역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카모토는 왜 그 문제를 그렇게 민감하게 생각할까 하는 의구심이 씻기지 않는다. 그것이 사카모토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그늘인 건가. 사이고가 ‘그건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 이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사실 영화 속에서 많이 보아온 것이고 관습적으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뭐 좀 다른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다. 감독님은 괜찮다고 했다. 누가 맞고 틀렸다기보다는, 생각이 달랐다고 해야 할까. 좀더 기다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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