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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를 보는 세개의 시선 [1]
황혜림 2002-02-01

어디에나 있는 남자, 어디에도 없는 배우

수원지를 안은 사막. <박하사탕>으로 여운이 긴 파문을 일으키며 세상의 수면 위로 떠오른 배우 설경구를 두고, 이창동 감독은 그렇게 말한 바 있다. 겉으로 보면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건조한데, “지층 밑에 큰 호수가 흐르는 것처럼” 숨겨진 감성이 굉장히 풍부하다는 얘기다.

이름도 없이 그저 ‘우리들’ 중 하나였던 <꽃잎>부터 누가 봐도 설경구의 영화인 <공공의 적>까지 흘러온 그의 행보를 짚어보면, 그가 품은 연기의 수원(水源)은 깊이나 폭을 한마디로 가늠키 어렵다. 때로는 <처녀들의 저녁식사>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봉수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찰랑이고, 때로는 <송어>의 민수처럼 돌연한 광기로 넘치며, 때로는 <단적비연수>의 적처럼 잡을 수 없는 간절한 욕망의 늪으로 질척거린다. 무엇보다, 한국사회가 떠안긴 화농으로 영혼이 썩어버린 <박하사탕>의 영호를 어떻게 설경구 없이 떠올릴 수 있으랴.

여기에 마침내 <공공의 적>의 악질형사. 태만과 무감한 폭력에 감염된 악한 경찰로 살다 더 악한 살인범을 쫓기 위해 좌충우돌 달리는 <공공의 적>의 강철중을 보고 있노라면, 설경구는 자신이 빚어낸 이미지의 굴레를 서슴없이 파괴하며 눈부신 연기변신을 거듭해왔다, 고 말하고 싶게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는 변신만 한 게 아니다. 다시 보면 강철중에게 영호가 있고, 영호에겐 봉수가 있으며, 봉수에게 강철중이 있다. 이건 이상한 일이다. 다시 말해보자. 설경구가 연기한 모든 극중 인물들에겐 설경구가 있다. 그런데, 그는 대개 극안에 완벽하게 녹아있다. 그렇게 보인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극중 인물과 자아 사이에서 어느쪽도 놓지지 않는 균형점을 찾는 본능이 있는 걸까? 아니면, 혹시 매번 그 양자를 장악하는 신내림을 받는 걸까. 어느쪽이든, 이 기묘한 균형, 혹은 장악이야말로 그가 정말 되고 싶다던 ‘배우’의 경지 아닐까.

우리의 쓸데없는 궁금증은 무시되도 좋지만, 건조한 냉정과 물기어린 열정 사이를 자유롭게 흐르는 그의 연기의 수원은 마르지 않길,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편안한 사람냄새가 변치 않길 바라며, 여기 설경구에 대한 세 가지 시선과 함께 그와의 만남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공공의 적>을 위해 찌웠던 살 18kg과 함께 기름기를 쫙 빼고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놈의 사랑”에 잠긴 설경구와의 또 한번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설경구가 말하길...

이창동 감독님하고 두 번째로 하는데, 감독님은 배우들과 스탭들을 많이 괴롭힌다. 그런데 난 감독님을 보면 보인다. 그건 괴롭히기 위한 게 아니라 스스로 자학하는 거라는 거. 그러니 그 사람이 아무리 괴롭혀도 그 사람 옆에 설 수밖에 없다. 영화를 찍다보면 난 배우로서 결국 감독 편이 된다. (2002년 1월, <오아시스> 촬영을 하루 쉰 어느날, 충무로 술집에서)

난 인물을 완전히 소화한다는 게 안 되는 사람이다. 그냥 난 나고, 내가 누군가를, 강철중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2001년 11월 <공공의 적> 촬영 종료 직후 인터뷰에서)

영화배우 할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시대가 도와준 것 같다. 80년대만 해도 배우 못할 얼굴 아니었을까. 요즘은 보는 사람이 동일시할수 있는 배우를 바라는 것 같다. 딴 사람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구나 하고 들어올 수 있게. 조각 같았으면 배우 못했을 것 같다. 조각 같으면 조각같이 살아야 할 텐데, 난 그렇게 살지는 못할 테니까.(2000년 12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개봉을 앞둔 연말. 스튜디오와 공덕동 소금구이 집으로 이어진 인터뷰에서)

굳이 꿈이라면, 아직도 배우가 되고 싶다. 진짜 배우. 평생 못 될지도 모른다. <단적비연수>의 ‘적’처럼 깨질 걸 알면서도 가는 거, 그게 배우 같다. 못한다는 답이 나와 있어도, 얼만큼 내 일로서 할 수 있는가 가보는 거. 그래서 ‘적’같이 칼로 쑤셔볼 수 있는 그 순간까지 정말 배우를 하고 싶다. (2000년 12월)

지난해 12월엔 <박하사탕> 개봉을 며칠 앞두고도 하나도 안 바빴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불과 1년 사이, 출세했다, 출세.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고 와서 인사하는 것도 희한하다. 부르는 데도 많아졌는데, 사교적인 자리는 참 익숙지 않고 낯설다. 체질적으로 안 맞는 모양이다. 나 자신은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이젠 주위에서 평범하게 안 본다. TV 녹화장에서 누가 사인을 해 달라고 날 보면서 떨었다. 세상에. 내가 뭐라고. 목에 힘들어가는 순간 끝이다. (2000년 12월)

어리벙벙한 사람을 좋아한다. 순박하고, 어설프고. 일사천리로 말하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그러면 거부감이 생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사람이 좋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2000년 12월)

현장도, 사람도 매력있다. 스탭들과 놀고, 친해지고, 영화 끝나고도 연락하고, 그게 참 좋다. 영화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하다. 결국 사람 얘기를 하는 거고, 배우는 사람 애기를 담아내니까.... (2000년 11월, <단적비연수> 개봉을 앞두고 스튜디오에서)

내가 인터뷰할 때마다 이창동 감독님이 나 욕하지 좀 마라, 내가 너 잡은 줄 알겠다 하셨다. 사실 잡긴 좀 잡았지. 그래도 감독님 사랑한 것 같다. 독하고 징글징글한 분이지만, 그 맛이 깊다. 다른 배우들에게도 기회가 있으면 꼭 이창동 감독님하고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2000년 1월, <박하사탕> 개봉 직후 이창동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심야 통화에서)

영호가 안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는 <박하사탕>은 연기자로서 욕심은 나지만 무서운 영화였다. 전 안 해요, 제가 이걸 어떻게 해요, 못해요, 그러고 그냥 대사 서너줄 읽어보라고 그래서 했더니 같이 하자고 했을 땐 정말 온몸이 옥죄어드는 것 같았다. 위험하지 않은 영화로 시작을 살살하고 싶었는데, 영화를 계속하고 싶은데, 앞으론 아웃이다, 완전 들켜버리겠다 싶었다. (1999년 10월,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하사탕> 상영에 맞춰 부산으로 내려가기 직전, 한겨레신문사 앞 지하 커피숍에서)

아마 거의 기억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TV드라마도 하나 했다. <큰 언니>라고. 특별히 연극만 하겠다고 고집한 적은 없는데, 불러주는 데가 별로 없었다. 왜 쌍꺼풀이 없을까 고민하며 눈 위에 풀을 붙이고 다닐 만큼 외모에 자신없어하던 시절이다. 참 싫던 얼굴인데, 이젠 내 얼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1999년 2월, <처녀들의 저녁식사> 개봉 뒤 사진 스튜디오에서 중국집으로 이어진 <씨네21>과의 첫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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