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컬처잼 > e-윈도우
<반지의 제왕> DVD에 대한 네티즌들의 청원
2002-02-07

“제발 감독판 보여주세요”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쥔 이후로, 이를 활용해 단순한 관객 혹은 마니아 이상의 역할을 하려 한 영화팬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기자 시사회나 업계 시사회에 몰래 들어가 개봉되기 전의 영화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스타가 된 ‘Ain’t it cool news’의 해리 놀스 정도가 그나마 그 소수에 속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인터넷영화와 인터넷영화제 그리고 다양한 팬사이트와 안티사이트들이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도 개인적인 관심사의 표출 이상을 넘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이런 상황은 태생적으로 관객의 수동성을 요구하는 영화의 특성이 그대로 인터넷으로 전이되고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가상공간의 특성인 익명성으로 인해 네티즌들이 어떤 ‘역할’을 부여받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말 이러한 지금까지의 흐름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작은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영화 마니아들이 영화의 제작사 및 감독에게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나선 것. 그 대상이 된 영화는 열혈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기로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밀리지 않는 <반지의 제왕>이다. 사건은 인터넷상에서 네티즌들이 집단적으로 청원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해주는 ‘Petition Online’(www.petitiononline.com)에 ‘Fellowship of the Ring Directors Cut DVD’라는 제목의 청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반지의 제왕> 팬사이트 중 하나인 ‘Imlandris’의 운영진과 조셉이라는 네티즌에 의해 시작된 이 청원운동은, 이른 시간에 전세계 네티즌, 특히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에 매료된 이들에게 퍼져나갔고 한달도 안 되는 사이에 무려 3만5천명의 온라인 서명을 받아내는 성과를 이뤄내기에 이른다. 그 청원은 아래와 같이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의 DVD 또는 비디오를 감독판 형식으로 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뉴라인 시네마와 피터 잭슨 감독님께,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의 팬들은 원작에 가깝게 영화를 제작해주신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극장에서의 상영을 위해서는 영화를 3시간여로 줄여야 했기 때문에, 원작이 담고 있던 모든 내용들이 영화 속에 담기지 못한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 속에 담겨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사실 또한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곳에 서명한 모두가 삭제가 되지 않은 상태의 영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를 보고 싶어하고 있음을 알아주십시오. 우리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은 DVD와 비디오를 통해 영화의 감독판이 출시되는 것이고, 여기에 서명을 함으로써 그러한 감독판이 충분한 시장성이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와 함께 청원서에는 팬들이 DVD에 포함되길 바라는 ‘Special Feature’들의 리스트가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DVD 타이틀에 대한 팬들의 바람이 어느 정도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 그 리스트에 포함된 주요 ‘Special Feature’들은 아나모픽 스크린, 돌비 디지털 5.1, DTS, 모아놓지 않고 본편 영화에 다시 삽입된 삭제 장면들, 아나모픽과 돌비 디지털 5.1로 된 예고편들, 감독의 오디오 코멘터리 트랙, 출연배우들의 추가적인 오디오 코멘터리 트랙, 채널에서 방영되었던 <중간계로 가는 길> 등의 관련 TV 프로그램들, 요정어로 된 자막 등이다.

사실 <반지의 제왕>은 영화 제작 초기부터 DVD의 출시 시기와 포함될 내용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인 12월 초 인터넷 영화 웹진들이 일제히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의 DVD가 2002년 8월 출시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는 루머를 퍼뜨렸던 것은 이러한 상황을 잘 드러내주는 사건. 하지만 지난해 12월23일 피터 잭슨이 기자회견을 통해 잘려나간 장면들을 모두 합하면 30∼40분 분량은 될 것이나, 별도의 감독판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밝히면서 분위기는 일순간에 착 가라앉았다.

네티즌들의 청원운동이 인터넷에서 시작된 것은 그 즈음이다. 이런 네티즌들의 움직임이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지만, 올 1월 초 <Urban Cinefile>이라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제작자 배리 오스본이 극장판보다 긴 편집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을 흘리면서 상황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월16일 <CNN>이 <쇼비즈 투데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사인 뉴라인 시네마가 DVD의 공식적인 발매일을 결정하지 못했지만, 피터 잭슨 감독이 마음을 바꿔 4시간이 조금 넘는 감독판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제 감독판 DVD의 출시는 기정 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DVD 출시에 대한 청원에 팬들의 참여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DVD만큼은 감독판을 넘어 지금까지 출시된 그 어떤 DVD 타이틀보다도 가장 완벽하게 감상하고 싶은 팬들의 열망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출시된 대부분의 DVD 타이틀들이 크고 작은 문제와 부족한 콘텐츠로 인해 구매자들이 실망을 느낀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청원운동이 어느 정도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는 여러모로 관심의 대상이 될 듯하다. 만약 뉴라인 시네마가 어떤 식으로든 이 청원의 내용을 DVD 타이틀 제작에 반영한다면, 앞으로도 유사한 사례가 늘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극장 개봉과는 달리 마니아 집단이 판매량의 대부분을 소화하는 DVD 시장에서는 인터넷을 무기로 제작사에 압력을 가하는 새로운 흐름이 일반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철민/인터넷칼럼리스트 chulmin@hipop.com

<반지의 제왕> 감독판 DVD 청원사이트 http://www.petitiononline.com/LoTRdvd/<반지의 제왕> 팬사이트 http://www.lordoftheringsmovie.com/

사진설명

1. <반지의 제왕> 팬사이트.

2. 감독판 DVD에 대한 청원이 진행중인 사이트.

3. 호주의 한 축제에 등장한 검은 기사단. <반지의 제왕>은 이미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았다.

4. 국내에도 출시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반지의 제왕> 제작과정 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