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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버린 불꽃, 남은 불씨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진실>
2002-02-07

FOCUS

올리버 스톤이 60년대의 문화를 ‘총괄’하겠다며 만든 영화는 <도어즈>였다. <People Are Strange>와 <The End>를 부르던 짐 모리슨의 서늘한 목소리. 술과 마약, 섹스로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아갔고 마침내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27살에 죽어간 남자. 자유와 반항으로 표상되는 6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

90년대의 ‘세대의 목소리’를 떠올린다면, 그건 분명 커트 코베인이다.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처럼 27살에 죽어간. 거친 목소리로 이미 파괴된 자신을, 패배자(loser) 세대의 분노와 절망을 중얼거리고 비명처럼 외치던 남자. 유서에 적은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기보다 한순간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이란 말을 실천했던, 90년대 청춘의 지독한 자화상.

90년대는 부정과 분노로 가득 찬 X세대의 것이었다. 너바나는 완강한 기성사회의 벽에 부딪혀 신음하던 그들의 분노와 저항을 얼터너티브 록에 담아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커트와 그의 음악은 분노였고, 욕설이었고, 혼란이었다. 강렬하고 분명치 않고 윙윙거리는 기타 리프, 알아들을 수 없고 두서없는 노래말은… 분노와 절망이 뒤죽박죽되어 있다…. 그가 나의,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했다고 나는 생각한다.”(너바나 팬의 말) 기성세대는 X세대를 ‘불평만 늘어놓는 패배자’라 불렀고, 얼터너티브 록은 ‘소음에 불과’하다며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91년에 나온 너바나의 음반 <Nevermind>는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를 차트 정상에서 끌어내리는 ‘언더그라운드의 제도권 정복’을 이룩하며 얼터너티브록을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뒤 3년간 너바나는 X세대의 비틀스였다. 하지만 커트 코베인은 인기와 명성, 부를 부담스러워했다. <네버마인드>는 일종의 타협이라고 생각했고, 스타덤에 갇힌 음반산업의 희생물이 되기를 거부하며 마약과 좌절에 빠져들었다. <Smells Like Teen Spirits>를 부르는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면, 무대 위에서 여자 옷을 입고 밴드 멤버와 프렌치 키스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절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왜?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진실>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아니 여전한, 그리고 더 치밀한 질문이다. 커트와 그의 아내인 코트니 러브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너바나가 X세대의 ‘반영웅’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캐나다 방송사에서 일하며 <토론토 글로브> <메일>에 기고하는 음악 저널리스트 이안 핼퍼린과 맥스 월레스가 공저한 이 책의 원제는 <Who Killed kurt cobain?>. 1994년 4월5일 커트 코베인이 죽고 경찰은 자살로 판정했지만, 이후 의혹이 점점 커지자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주변 인물과 관계자들을 취재하여 ‘객관적’으로 쓴 책이다. 전반부는 커트 코베인과 그의 아내 코트니 러브의 일대기, 후반부에는 죽음에 대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담겨져 있다. 분명하게 적시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코트니 러브가 죽음에 어떤 형태로든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그 진상이 무엇이건,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되돌리지 못한다. 약간 건조하게 쓰여진 이 책을 읽고 나면, 더욱더 그의 노래가 그리워진다. 언제나 마이너리티이기를 원했고, 그들의 편에 서려 했던 그의 다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