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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부인> 20주년 단편소설 (1)
2002-02-08

안소영 세대에 바친다

<애마부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찾아헤매다 김정미씨의 개인 홈페이지(http://user.chollian.net/~lipid7/paper)에서 발견한 단편소설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다소 축약된 형태로 지면에 옮겼다. 필자 김정미씨는 다큐멘터리 구성작가 겸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

회사가 부도가 났다. 사주는 이미 잠적한 지 오래고 회사엔 부도 이후에 뒷수습거리가 남은 간부 사원만 며칠 출근을 하고 있었다. 오늘로 책상을 정리했다. 버릴 물건은 버리고 쓸 만한 것들을 챙기고 보니 달랑 보따리 두개다. 보자기는 결혼식 때 폐백 한복을 쌌던 그 분홍 보자기다. 아침에 나올 때 아내가 짐을 싸오라고 챙겨준 것이다. 5년 결혼생활의 후줄근함을 말해주듯 보자기는 낡았다.

지하철엔 대낮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또래의 넥타이족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저들도 실직을 하고 지하철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서울에 살면서도 이런 데가 있었나 하는 곳에 내리고 말았다. 낯설다. 여긴 대체 어디지? 이제부터 시간을 도대체 뭐하면서 보내야 할까? 서른 전에 나는 오랫동안 하는 일 없이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가? 담배를 물고 거리를 휘 둘러보았다. 모퉁이에 동시상영인지 두개의 간판을 단 극장이 하나 보인다. 그렇다. 난 혼자 있을 때 동네 삼류극장서 동시상영 에로물을 보면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동네 삼류극장! 그와 함께 머리 속에 떠오른 얼굴….

나는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딱히 반항아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니었다. 그저 학교에서는 눈에 띄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곧장 동네 삼류극장으로 숨어들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교복이 잠시 없어졌던 시절이라 동네 극장쯤은 무사 통과였다. 대개 후줄근한 티셔츠에 양복바지면 오케이였다. 게다가 난 그 극장의 단골이었다. 하루종일 가봐야 한회 손님이 스물을 넘지 않던 극장은 미성년자니 뭐니 하면서 나를 색출할 입장도 못 되었던 거다.

극장 매점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 극장과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투명하고 흰 얼굴에 이마에는 파리한 그늘이 살짝 드리워진, 웃을 때면 한쪽 볼에 보조개가 들어가서 귀여워 보이던 여자. 무언가 열중하고 있으면 약간 사시가 되는 시선. 언제나 입고 있던 깨끗한 하얀 블라우스. 열일곱, 열여덟 시절에 나는 컴컴한 극장 안 스크린 속의 정사장면보다 그녀를 보면서 더 마음이 아슬아슬해지곤 했다. 그녀가 건네준 병콜라를 스트로로 쪽쪽 빨아먹으면서 알 수 없는 설렘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버스가 대구로 접어들었을 때는 이미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거의 10년이 넘어서 오는 대구다. 아버지의 급작스런 이직으로 중학교 때 갑자기 서울에서 내려와 반 남은 중학 시절과, 고등학교, 삼수 시절을 보냈던 도시. 나는 도시에 적응하기보다는 그저 도시에서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거리의 사투리에 휩쓸리면서 나는 어깨를 떨어뜨렸다.

극장을 찾아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오다가 본 여관들 중 하나에 스며들기로 작정을 했다. 여관은 결혼 전 아내와 몇번 갔던 것을 마지막으로 근 5, 6년 만에 처음이다. 보이는 장급 여관의 문을 열었다. 혼자 들어가는데도 어쩐지 떳떳한 기분이 아니다.

나는 3층으로 안내되었다. 방에 들어가자 종업원이 물과 숙박계를 내민다. 부도를 낸 사주의 이름을 써주고 종업원을 내보냈다. 방을 한번 휘 하고 둘러본다. 세상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을 대라면 나는 단연 여관방을 댈 것이다. 오로지 볼일만 보고 나면 그걸로 됐다는 듯이 좁은 방에 커다랗게 놓여진 침대, 냉방조절이 잘 안 되는 낡은 에어컨, 티비, 용도도 모른 채 엄청나게 크기만 한 거울… 퀴퀴한 냄새… 흐린 형광등… 고장나 있기 십상인 스탠드… 나는 그대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티비를 켰다. 아마도 재수를 하던 때였던 것 같다. 같은 학원의 재수생들과 술을 마시고 여관으로 포르노를 단체 관람하러 온 것이 처음이었던가. 그 이후로 종종 여관방은 20대 초반 남자애들의 대상없는 욕정의 분출구로 이용되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예전처럼 포르노 채널은 보이지 않는다. 한 채널에서 B급 비디오 에로물이 나온다. 심드렁하다. 좀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지역 유선방송인지 아침에 하는 토크쇼가 녹화되어 나온다. 단정해 보이는 남자 사회자와 좀 싱거운 패널, 그리고 그 사이에 웬 깡마르고 볼품없는 여자가 끼어 앉아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하면서 나는 맥주를 땄다. 티비 속의 여자는 신산스러웠던 과거를 말하고 있다. 분명 본 얼굴인데 탤런트인가? 나이도 꽤 든 거 같은데… 너무나 왜소하고 깡마른 그녀를 보면서 대체 누구더라 하는 생각에 슬며시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옆자리 싱거운 패널이 여자의 무릎을 툭 치면서

안소영씨 <애마부인> 찍을 때랑은 전혀 달라요, 분위기가….

맙소사! 누구? 안소영이라고! 저렇게 작고 조그마한 여자가 안소영이란 말이야?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아… 그렇다. 자세히 보니 분명 안소영이다. 하지만 저 여자가 안소영이라고? 안소영은 풍만하게 넘실대는 가슴을 안고 요염한 미소를 날리면서 시청자들을 유혹해야 하는 거다. 저렇게 평생을 사무실 경리로 보내다가 팍삭 늙어버린 여자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되는 거다. 안소영은 내내 불쌍한 표정으로 눈물도 약간 찍어내고 있다. 그녀가 아니다. 그녀는 저래서는 안 된다. 안소영, 그녀가 애마부인이었다면 지금 모습으로 티비에 나와 눈물을 찍어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화가 났다. 왠지 억울하다. 속이 상해서 반 남은 맥주를 훌쩍 마셨더니 거품이 다 나가서 맛이 쓰다. 인생도 이런 것인가. 거품이 사라지고 나면 쓴맛만 남는 것인가. 나는 그만 잠을 설쳤다.

매점의 여자는 그때 연애중이었다. 남자는 극장에서 간판도 그리고 낮에는 기도도 서던 작자였다. 간판 그림도 그림이랍시고 예술가인 척하던 놈이었는데, 실은 기도 자리 감으로 딱 알맞게 생긴 사내였다. 나는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으로 벽에 머리를 찧었다. 여자는 뭐가 그리 좋았던지 하얀 손수건을 쥔 손으로 사내의 팔뚝을 톡톡 치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때만은 여자의 이마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도 사라지는 거 같았다. 나는 질투심에 극장 앞에서 사내를 만나면 괜히 시비를 걸고 싶었다. 사내가 슬쩍슬쩍 매점 여자의 엉덩이며 젖가슴을 만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내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불손해져만 갔다. 나는 그녀가 매점 안 간이의자에 풀이 죽어 앉아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콜라를 내주면서 그녀가 흘리는 조그마한 한숨이 내 마음엔 무거운 돌처럼 얹혔다. 그런 날이면 나는 콜라를 꼭 두병씩 사먹었다.

삼수를 시작하면서 나는 새로운 유흥문화에 적응을 해나가던 중이라 극장을 찾는 횟수가 뜸해져 있었다. 당구를 치고 술을 마시고 여관에 가서 포르노를 보고 틈틈이 삼수생이란 이름 때문에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나는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백수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몰려 희망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혹시라도 대학교 앞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우회를 하였다. 대학교 앞에서는 늘 최루탄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젊다는 것이 환희 그 자체인 아이들이 있었다. 멀리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집회의 함성도 내겐 배부른 놈들의 환성으로 들렸다. 나는 매사가 뒤틀린 어두운 20대를 맞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그 무렵 성에 눈을 떴다. 이론은 훤하다고 여겼던 나는 어느날, 역 뒷골목의 창부 집에서 동정을 뗐다. 실제는 이론과는 많이 달랐다. 베테랑처럼 들어섰던 나는 당황했다. 창부가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어딘가에서 위로받고 싶었다.

오랜만에 극장을 찾아들었을 때 나는 매점 여자의 몸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아기를 가진 것이다.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여자가 건네주는 콜라를 받아들고 극장 로비 다 떨어진 소파에 앉아 그녀의 거동을 살폈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매일 매점 여자의 정사장면을 생각해 왔다. 하지만 단지 생각일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가진 듯한 그녀를 앞에 두고 나의 첫 정사를 겹쳐 생각해 보니 갑자기 그녀의 벌거벗은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간판 그리는 남자가 극장 앞을 오락가락하는 것이 보였다. 왈칵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은 영화도 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아침에 여관을 나와서 까칠한 얼굴로 버스를 탔다. 어젯밤의 불면으로 버스 안에서 나는 깜박 졸았다. 눈을 떠보니 내려야 할 바로 그 정류장이다. 동네는 많이 변해 있었다. 새로운 건물과 넓어진 도로. 여기가 거긴가 싶을 정도로 북적대는 사람들. 나는 서둘러 큰길을 돌아서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큰길을 넘어서자 뜻밖에 도로 하나 사이를 두고 골목길 안의 동네는 예전 그대로다. 골목은 더 좁고 어두워져 있었다.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 나오면서 나는 담배를 한대 물었다. 착잡했다. 화려하게 변한 도로 이면에 이렇게 후락해져가는 동네. 어쩌면 극장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른다.

극장이… 그 자리에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극장은 변했다. 원래 2층이었던 극장 건물에 증축을 했는지 건물은 비정상적인 형태의 3층 건물이 되어 있다. 극장의 지하는 단란주점, 1층 자리는 보기에도 날림으로 벽을 만들어 나눈 듯한 상가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3층은 볼링장이다. 그리고 2층 일부는 허름한 카페다. 극장이 있기는 있다. 2층 한구석에 소극장 형태로. 조그마한 간판엔 역시나 벌거벗은 여자가 앉아 있다. 여기를 왜 찾아왔단 말인가. 나는 극장이 그대로 있어주길 바랐던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멋진 건물로 변해 있기를 바랐던 것일까? 화가 나고 처참하고 그리고 낯설다.▶ 다음 페이지▶ 불능의 시대 밤의 여왕 <애마부인> 20년, 그 환각과 도피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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