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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3)
2002-02-14

“가학적이라고? 난 처음부터 종교적이었다”

왜 키스를 하는 걸까요?

거기 덧붙여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한기가 수많은 여대생 중에서 선화한테 키스를 한단 말이죠.

수많은 여대생이겠죠.

그런데 사실은 한기가 선화를 보고 한눈에 빠진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선화만 있었으면 안 그랬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근데 선화가 남자친구한테 기대고,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그 순간, 한기는 선화한테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선생님은 안 그러실 것 같으세요? (웃음)

(웃음) 예를 들어 최수임 기자가 저를 경멸의 시선으로 본다고 해서…(최수임 기자는 이날 인터뷰 전체를 녹취하기 위해 옆에 있었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서원씨보다 미인이었다!)

어느날 나란히 바로크식 벤치에 앉았는데 여자쪽에서 나를 그렇게 봤다. 그러면 저는 그럴 것 같아요. 저는 이 사람하고 나를 동등하게 봤는데 그렇다면… 저는 이 사람을 이해시키고 싶을 것 같아요. 근데 방법이….

…근데 수많은 방법 중에서 왜 키스를 하는 것일까요. 때릴 수도 있을 것이고 안을 수도 있을 것이고. 키스는 특별한 언어의 제스처입니다.

키스는 오히려 섹스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고 봐요. 그게 그 입장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모욕일 거라고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젖을 콱 만졌다, 그러면 관객이 한기에 대해서 더 안 좋게 봤을걸요. (웃음)

저는 김기덕 감독이 키스에 부여하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요…. (웃음) 그런 건 묻지 마시고요. 키스라는 것은 새로운 것이어야만 재미가 있지, 지속된 것은 사실 재미가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키스는 전화예요. 아니, 차라리 전화기 같은 거예요. 상대는 멀리서 수화기를 들고 있지만 입술을 대고 이야기를 한다는 게 중요한 코드가 되잖아요. 보지 않고 하는 그런 상황에서, 보이지 않지만 더 용감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할까요. 키스는 남녀간의 통신에서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행위예요. 섹스보다도.

그 반대로 물어보겠습니다. 김기덕 감독 자신에게 에곤 실레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전 에곤 실레를 몰라요. 어디서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연구해본 적도 없고 그 사람에 관한 책을 끝까지 다 본 적도 없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단 하나 그 사람의 그림에서 전달되는 느낌. 빈곤하지만 뼈에 붙어 있는 살들의 부대낌들, 그리고 그 앙상함에 고민이 들어 있다는 것, 세상 삶에 대해서 짙은 경멸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뼈에 붙어 있는 살처럼 질긴, 그런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고민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고민이죠. 에곤 실레가 애들을 불러다가 추행을 하고 삽화를 그린다고 하지만, 그가 그 피사체를 통해서 고민하고 연구했던 것은 삶에 대한 질곡들이 아니었을까. 섹스라는 것을 넘어선 단계에서 피사체들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건 제가 원하는 시선이 아닐까 하는 거죠. 저는 가끔 살과 살이, 남자와 여자의 살과 살이 뒤엉켜서 서로 붙은 것 같은 환상을 보고 그런 느낌을 받는데, 그런 것을 에곤 실레의 그림은 보여주고 있어요. 멀리서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두 사람의 경계선이 잘 안 보이거든요.

선화가 찢었던 그 그림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인가요?

그냥 느낌으로 그 그림을 골랐어요. 두 사람이 나와 있는 그림이기도 하고. 두 사람이 뒤엉켜 있는, 마치 쇠사슬처럼 서로가 서로에 엉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선화와 한기처럼, 그런 이미지의 그림을 고른 거죠.

정직한 정면

저에게 <나쁜 남자> 전체에서 제일 기괴하게 느껴지는 장면은 둘이 벤치에 같이 앉아 있는 장면이었어요. 화면 구도를 잡아놓은 게 거의 고의라고 느껴질 만큼 사진관에서 사진 찍는 것처럼 해놨어요. 뭐랄까, 마치 시골사진관에 앉아 있는 그 이상한 인위성과 키치적인 느낌. 그 자세를 기괴한 평면성으로 찍었죠.

예. 저는 정각을 좋아해요.

그 장면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즉시 비현실감을 갖게 하거든요. 두 사람이 만나는 첫 장면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 구도를 본인이 고집했을 것 같아요.

사진이라는 이미지를 저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썼어요. 사진 이미지가 없었다면 이 영화에는 추상적 태도가 있다고 말할 수 없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 둘이 앉아 있는 것, 나중에 보냈을 때 둘이 앉아 있는 것, 그리고 바닷가에 둘이 앉아 있는 것. 이것이 저는 가족이라는 분위기, 아주 친숙한 느낌의 연대감을 불러낸다고 봤어요. 그것도 정확하게 발끝 머리끝이 잘리지 않게 그 주변에 아무리 불필요한 공간이 형성되더라도 두 사람의 몸 전체가 다 들어가야 된다, 는 원칙으로 그 장면들을 찍었죠. 옛날에 <파란 대문> 보면 바닷가에서 이렇게 창문으로 내다보는데 사실은 기둥이 있어서 서로 안 보이는데 심리가 서로를 보는 그런 장면이 있거든요. 근데 촬영감독은 정면에서 찍는 걸 싫어해요. 사선각을 좋아하죠. 왜냐하면 그게 깊이감이 나오기 때문에. 창문에서 5m 떨어진 거리에서 찍었는데, 카메라가 창문과 10cm 사선으로 서 있는 거예요. 그걸 자로 재서 정면으로 만들고 놓고 찍었어요. 그만큼 저는 정면을 좋아하는 게 있어요. 정직이라는 거죠. 정확보다는 심리적인 정직하고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처음에 한기가 선화 있는 벤치에 가 앉는 것, 그게 정직한 한기의 태도에요. 정직하게 수평적인 사람관계의 시작을 하는 거예요.

다른 영화에서 보여준 평면적 구도에 대해서도 그렇게 똑같이 이해해도 되나요?

네. 저는 삐딱한 걸 싫어해요.

그럼 그런 장면에서는 김기덕 감독이 관객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예, 지나치게 정각을 썼을 때는 그렇게 보셔도 돼요.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사선각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에요. 모순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제가 아까는 카메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했잖아요. 근데 어떤 것에는 또 이렇게 지나치리만큼 신경을 쓰기도 해요. 그것은 김기덕 안의 의미이고요, 그걸 발견해주면 고마운 것이죠.

개인사를 끌어들여서 영화 해석하는 게 너무너무 싫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것에는 동의를 합니다. 또 그럴 만큼 순진하지 않기도 하고요. (웃음) 근데 <나쁜 남자>를 보고 제가 한 가지 궁금해진 게 있어요.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아버님은, 굉장히 훌륭한 분이셨는데 저한테는 굉장히 훌륭하지 않은 분이셨어요. 6·25때 상이용사시고, 굉장히 엄하셨고, <수취인불명>의 아버지와 비슷해요. 훈장을 <수취인불명>의 아버지처럼 30년 지나서야 받으셨죠. 6·25 때 총알을 많이 맞아서 신경통이 있고 신경이 날카로워서 자식들이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죠. 어렸을 때 저한테 잘하라고 하시면서 많이 꾸중을 주신 분이죠. 근데 그게 지나쳤고 저한테는 그게 오랫동안 지속됐어요. 그게 절 해병대에 가게 만들었고 또 유럽에 가게 만들었고 그랬죠. 20대 초반에 이 땅에 적응하지 못하는 습관을 기르게 된 거죠. 지금은 저한테 자상한 편이시고 고마운 분이죠. 근데 저는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가 뭘 못하게 한다고 하는 걸 이해 못해요.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는 내가 뭘 한다고 했을 때 못하게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가장 바라시던 건 제가 공장장이 되는 거였어요. 저는 정말 많은 공장에 다녀봤고 굉장히 잘 훈련된 숙련공이었어요. 남들의 서너배를 생산해냈고 두뇌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열다섯살, 열여섯살 그럴 때 기계를 개발할 정도였으니까. 기계원리에 대해 배운 적은 없는데 나도 모르게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공장장이 되기를 원했는데, 어느날 제가 거부를 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아버님은 대단한 분인데, 이 사회에는 대단하지만 아무것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이죠.

아버지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인물들

제가 그걸 질문한 까닭은, 김기덕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아버지가 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보거든요. 그리고 아버지가 나온다고 해도 아주 무서운 사람이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자기 조국에 대한 느낌이기도 하거든요. 두려움, ‘마주치기 싫어함’, 이런 게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수취인불명>, 그 영화 안에 그런 건 다 들어 있어요. 시대에 대한 결핍감이죠. 한국 근대사의 문제예요. 모든 아버지들이 이 사회에 전염시킨 이상한 기운인데, 올바르지 못한 게 많았어요. 그 한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요. 짧은 시간에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한 게 저는 6·25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빨갱이라는 말을 하고 북한에 쌀 주는 거 보면 경악하고. 총알이 몸을 관통했고 물고문을 받았고 그랬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거죠. 그분의 지난한 고통 속에 제가 잉태가 돼 있는 거예요. 유전적으로 세포학적으로, 나는 겪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그런 것이 있는 거지요. 그리고 그게 내 영화 속에 이미지로 나오는 거죠. 현재의 나와 아버지가 혼재되어서 표현되는 것이죠. 결국 제 숙제로 남는 거예요. 제가 왜 터무니없이 <수취인불명>이라는 만들겠어요.

아버지의 한이 한국전쟁이라면 감독 김기덕의 한은 무엇인가요?

저의 한은 그것이겠죠. 제도권과 비제도권 이후에 놓여질 자리가 이 사회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저는 다행히 열등감을 극복했는지 그 커트라인을 뛰어넘었는데, 프랑스에 갔다 오고 하면서 말이죠, 나와 비슷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사실 문화라는 것, 하이클래스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에게 부채감이 있고, 그래서 자꾸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결국 이상한 주장은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고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보이고, 그래서 자꾸 판타지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현실로 보지 않고요. 이 영화로부터 또다른 상상을 하고 있는데, 그건 극장에 오기 전에 사회적으로 획득한 어떤 타이틀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낯설다, 날것이다…. ‘날것이다’라는 말을 저는 제일 싫어하거든요. ‘날것’이라는 말이 저한테는 마치 ‘덜 익었다’는 걸로 들려서요.

생생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잖아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볼 때 ‘날것’이라는 말은 ‘바이러스가 많은’, ‘세균이 죽지 않은’, 그런 부정적인 느낌으로 와요. 대신 저는 ‘원시적인’, ‘야생적인’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사실 그 시대가 상당히 그리워요. 팔뚝에 힘만 있으면 고기도 잡을 수 있었고, 또 ‘저게’ 있었으면 섹스도 맘대로 할 수 있었고, 인간의 기초적인 뼈의 골격과 의식만 갖고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모든 것이 지나치게 시스템 안에서 훈련돼 있고 길들여져 있어요. 저는 졸업장 없는 중학교를 나왔는데 요즘은 대학 나온 것도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대학원이 있고 유학이 있고…. 지금의 대학은 옛날의 중학교 수준밖에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들에 나는 호기심이 있고 오해가 있는 거예요. 사회에서 편견들이 어떻게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나, 하는 거죠. 크게 나누면 정치인과 깡패가 같은 계급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죠. ▶ 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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