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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마약이다?
2002-02-20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설 연휴에 처가에 들렀더니 처남 둘 모두 담배를 끊고 있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 추위에 떨면서 혼자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마이너리티로 전락한 셈이다. 결국 ‘나도 이제 담배 끊을 때가 되었나보다’라는 생각을 4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폐암수술을 받는 와중에도 병원 지하실 주차장에서 남몰래 담배연기를 내뿜던 강심장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모든 사람이 담배를 끊었을 때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상태를 떠올리니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후회마저 들었다. 아름다운 강산 어디에나 어지럽게 버려진 꽁초들, 특히 ‘구멍이 있으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의해 전봇대, 가로수, 벽돌 등 구멍이라면 어디에나 쑤셔박힌 꽁초들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금연 캠페인이 ‘개판으로 운영해서 펑크난 건강보험 재정을 메우기 위해 애먼 담뱃값만 인상하려는 수작’이라는 생각도 거두기로 했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가서 말도 꺼내기 전 나의 결심을 흔드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뉴스의 헤드라인은 ‘흡연, 부부사랑 어렵게 하는 주범’이었고, 내용은 ‘흡연이 발기부전을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담배를 태우면 음경 동맥이 좁아져서 피가 잘 못 들어오니까 발기가 시작이 안 되겠죠” 하는 ‘전문가’의 발언을 시작으로, “흡연자가 발기부전이 될 가능성이 비흡연자보다 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에 이어, 여성의 경우도 조기 폐경이나 생리불순을 일으킨다는 전문의들의 ‘경고’를 거쳐, “담배연기와 함께 부부사랑은 날아가고 인생의 황혼만 일찍 초래한다”는 ‘협박’으로 뉴스는 끝났다.

이상의 선동을 지켜본 ‘아줌마들’의 표정이 점차 심란해지더니 곧 화살은 내게로 집중되었다(사실은 농담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고마 해라”하면서 넘어갔지만, 생각할수록 뉴스 내용이 불쾌해졌다. 그래서 지난 몇달 동안의 매스미디어에서의 금연 캠페인에 대해 반추해 보았다. 후두암으로 성대를 잃어버린 일반인의 권유, 폐암으로 투병중인 연예인의 충고, 그리고 ‘담배는 마약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담배를 화형식에 처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습 등등.

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정부가 금연을 위해 동원하는 것은 오로지 ‘의학적 담론’뿐이다. ‘목숨 부지하고 자지 멀쩡하려면 담배 끊어라’는 수준 이상이 아니다. 의학은 마치 종교 같다. 통계에 의하면 “암 환자의 1/3이 흡연자”이다. 그렇다면 2/3의 암환자는 담배 피우지 않고도 암에 걸린다는 이야기일 텐데 나조차 ‘담배가 암의 주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딸래미한테 뽀뽀하려고 해도 “아빠, 나 폐암 걸리면 책임질래!”라고 소리지른다면 의학적 담론은 너무 삭막한 것 아닌가. 막말로 ‘건설현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담배피우는 경우가 피우지 않는 경우에 비해 생산성이 15%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면 어쩔 건가.

외국에서는 금연이 이미…, 어쩌고 운운하는 것도 꼴사납다. 특히 ‘미국의 연구 결과’라면 시골 변두리 대학교 것이라도 무조건 맹신한다. 하지만 ‘외국(선진국?)’마다 흡연문화가 다양한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파리에서는 금연표지판 밑에 담배를 뻑뻑 피운다’라든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대합실 중간에 좋은 자리를 장만해 사람들이 유유히 담배를 피운다’라든가 ‘도쿄의 여중생들은 불붙인 담배를 마구 흔들어대면서 거리를 활보한다’라는 등등의 이야기 말이다. 정부와 매스미디어의 ‘건강 캠페인’은 앵글로들의 ‘건강중독증’을 닮은 것 같아 씁쓸하다. 그래봤자 니코틴 중독이 건강 중독으로 바뀔 뿐이다. 하다 못해 ‘시사토론’ 한번 개최하지 않은 상태에서 캠페인이 일방적으로 계속되면, 금연 캠페인을 ‘인권 침해’로 법원에 고소하고, 담배인삼공사를 마약인삼공사로 개명하라고 국회에 청원해야겠다.

한국 정부의 정책은 아직도 자율보다는 타율에 의존한다.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을 유도하도록 설득하는 건 안중에 없고, ‘가능성이 있다’는 불투명한 근거로 ‘무조건 금지’라고 엄포놓는 관행은 여전하다. 물론 조령모개라는 또 하나의 관행, 그리고 건망증에 능한 국민성으로 인해 금연 캠페인은 곧 잠잠해질 것이므로 ‘담배를 끊더라도 그때 가서 끊을 것’, ‘괘씸해서 당분간 양담배만 피울 것’이라고 다짐한다. 왜? 더러워서. 대마초 금지를 외치다가 아들을 ‘뽕쟁이’로 만든 어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벌써 잊어버렸나. 신현준/ 문화수필가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