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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디오를 사랑하는 두세가지 이유
2002-02-21

비디오카페/p찍음

물론 영화는 극장을 위해 태어났다. 비디오로 재탕된 영화는 양쪽 화면 끝이 잘려나가 배우나 감독의 이름이 제대로 안 보이는 경우도 있고 색감도 달라진다. 공간감을 살려주는 극장의 살아 있는 음향도 비디오에서는 외딴 세계의 공허한 읊조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차이는 바로 크기. 사실 영화가 TV와 경쟁할 수 있었던 것도 압도적인 화면 사이즈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극장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으며, 사실 굳이 극장엘 가서 영화를 봐야겠다는 욕구도 좀처럼 일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꿈과 동경을 극장에서 키웠다는 수많은 영화광들과 달리 나는 최근까지 1년에 극장엘 2∼3번 갈까말까 하는 정도였으니까. 무엇보다도 나는 극장이라는 곳의 분위기와 시스템이 너무 낯설고 때로는 부담스럽다. 서로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날 한시 한 장소에 집합하는 기막힌 우연의 이유가 끈끈한 훈제오징어를 찢어가며 거대한 화면을 2시간 동안 응시하기 위해서라니! 연인들은 손을 감싸쥐고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고 곳곳에서는 갓난아기들이 울어젖히며, 오랜만에 만난 40대 여성들은 신이 바뀔 때마다 큰소리로 줄거리를 정리하기에 바쁘다. 2시간 동안 영화 속 인물만큼이나 나의 주의를 끌던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불이 밝혀짐과 동시에 드러나고, 그들의 한가운데에 서서 좁디 좁은 문 밖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이 나는 한없이 권태롭다.

나는 비디오 가게가 좋다. 겨우 서른 몇가지뿐인 아이스크림 중 하나를 고르는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가능성들이 작은 공간 안에 빽빽이 진열되어 있다. 그것도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선택되기를 다소곳이 기다리며. 밀물처럼 밀려들어 썰물처럼 사라지는 극장 관객과는 달리 비디오 가게에는 영화 내용 못지않은 관계의 끈과 이야기가 녹아 있다. 2년 동안 주인의 입장에서 비디오를 논했던 이주현씨와는 달리 나는 순수한 손님으로서 그곳의 풍경을 이야기할 것이다. 조심스럽게 덧붙이자면 이주현씨와 내가 한 동네에서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그녀가 자주 소리높여 비난하던 몰상식한 상습 연체자, 그게 바로 나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