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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코스타 가브라스의 <아멘>
2002-02-21

가톨릭의 심장을 향해 쏴라다소 밋밋한 작품이 주를 이룬 탓에 따분하기까지 했던 이번 영화제의 기자회견장을 처음으로 시끄럽게 만든 작품은 2월13일 첫 시사를 가진 콘스탄틴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아멘>이었다. 가톨릭의 심장부인 바티칸과 교황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으로 동조했다는 주장을 담은 이 영화에 가톨릭 신도 비중이 높은 유럽의 관심이 모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왜 특정한 사건에만 관심을 갖는 저의가 뭐냐. 또 편향적 관점으로 교황을 보는 이유는 뭔가”라며 다소 감정적인 질문을 던진 라디오 바티칸 기자의 입장이야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분위기였지만, “교황 한 사람에게 책임의 초점을 맞춘 롤프 호흐후트의 원작희곡과 달리, 미국이라든가 스웨덴에 책임을 나눠지게 한 영화의 시나리오는 결과적으로 희생자인 유대인들을 두번 죽이는 것, 결국 배반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주연으로 출연한 마티외 카소비츠와 동료 기자들까지 나서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냐”며 비난을 퍼부었다.물론 이 작은 태풍의 한가운데에는 <매드 시티> 이후 5년 만에 만든 영화를 들고 베를린을 찾은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그의 69번째 생일이자 베를리날레 카메라상을 받는 날이었다. 1969년 세 번째 영화 <Z>를 만든 이후 그에게선 `정치적인 영화(만)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82년작 <미싱>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공동 수상했고 90년엔 <뮤직박스>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했던 그는 제3세계에서 미국을 비롯한 검은 세력들이 펼치는 음모와 민중의 저항을 보여줬고, 나치 전범 문제를 제기했으며 팔레스타인 사태와 상업적 언론의 해악을 파헤쳤다. 물론 민감한 주제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는 용기만으로 그가 평가받아온 것은 아니다. 이들 묵직한 소재를 적합한 스타일에 녹여낸 것이야말로 코스타 가브라스를 최고의 정치영화감독으로 군림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스릴러영화에 정치적 주제를 접목한 <Z>나 심리적 긴장감과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하는 <뮤직박스> 등은 그의 특기가 잘 드러난 작품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작 <아멘>은 전작들보다는 조금 낮은 선반에 놓일 만한 작품이다. 독일 작가 롤프 호흐후트의 희곡 <대리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나치하의 베를린과 바티칸을 배경으로 한다. <아멘>은 `장애인=비생산적인 인간`이라는 나치의 논리 때문에 희생된 조카의 죽음으로 충격받은 독일군 SS장교 쿠르트 게르슈타인(울리히 투쿠르)과 젊고 정의감에 넘치는 예수회 수도사 리카르도(마티외 카소비츠)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나치의 만행과 당시 교황 파이우스 12세를 비롯한 바티칸의 무력함, 그리고 주변국들의 무관심을 고발한다(게르슈타인은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멘>이 선택한 길은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휴먼드라마 내러티브였다. 너무나 명징하게도 둘은 영웅으로 비치고, 나머지 인물들은 적이거나 그저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야기는 별 굴곡도 없이 두 영웅의 용기와 비극적인 삶을 찬양한다.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거장의 손길을 아예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희생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데 관심을 가졌다”는 그의 말대로 영화는 가스실에서 신음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게르슈타인이 처음으로 유대인 학살현장을 보게 되는 신은 그를 비롯한 독일 장교들이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무언가를 보면서 불편한 표정을 짓는 모습으로만 이뤄져 있다. 때문에 관객은 감정을 자극받는 대신 좀더 이성적이며 상상력을 품은 채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특유의 냉정하고 지적인 연출은 두 캐릭터 앞에선 무너져내린다.영화의 원작 <대리인>은 1963년 파리에서 초연을 가진 이래, 여러 번 무대에 올랐으며 현재 베를린에서 상영중이다. 파리에서 이 연극을 본 코스타 가브라스는 20여권의 책과 바티칸의 자료를 조사해가며 원작을 수정하며 영화를 준비했다. 그는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금도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드라마틱한 일들이 (어떤 이들의) 침묵과 함께 벌어지고 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초점이다. 현대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은 역사 속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면서 그 당시의 역사를 다시 봤고 또 계속 돌아봤다.” 그는 또 “이런 역사적인 주제를 소화하는 데는 다큐멘터리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다큐멘터리이건 픽션이건 언제나 자신의 주관에 따라 가공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를 선택하고 음악을 삽입하는 것 말이다. 나는 픽션의 커다란 미덕을 믿는다. 그것이 내가 할 줄 아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혹시 이 영화에 코스타 가브라스의 개인적인 종교관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나는 그리스 정교를 믿는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어머니는 열성적인 신도였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교회가 실제로 행하는 것이 설교하는 내용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고선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됐다.”<사진설명>1. 콘스탄틴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2. 영화 <아멘>▶ 제52회 베를린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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