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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남성상 창출한 삼성카드 광고
2002-03-07

`멋진 녀석`의 판타지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박빙의 승부를 겨루는 신용카드업체의 CF들을 들여다보면 다소 거창해보이는 이 광고 카피가 제법 실감난다. 앞서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광보가 BC카드 CF였으니 '또 카드 애기야?'라며 지겹다는 반응도 나올 수있겠지만 별 수 없다. 이상적인 남성상을 경쟁하듯 배출하고 있는 카드업게에서 두각을 드러낸 정우성 주연의 삼성카드 CF에 대한 얘기를 지체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0.001초의 차이로 메달 색상이 달라지는 쇼트트랙 경기처럼 아주 미세한 우위에 불과할지라도 삼성카드 CF는 소비자의 환상을 기분좋게 부추기고 있는 선두 주자다.

부러움을 살 만한 남성의 향기를 흩뿌리고 있는 에로 배용준 주연의 LG카드 광고. '코리안특급' 박찬호 주연의 국민카드 광고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카드 CF는 멋진 남성상을 주무기로 내세웠다는 측면에서 이들과 한 울타리에 묶인다. 모두가 광고계가 창출해 온 남성상이 어디만큼 진화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누가 가장 넓고 깊게 공감의 파장을 낳고 있느냐란 질문을 던지면 차등을 보인다.

정우성을 새로 모델로 기용하면서 삼성카드 CF는 정우성과 바람직한 삼성카드의 소비자상을 동격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정우성에게 이 시대가 선망하는 남성의 모습을 부여하고, 그토록 멋진 남성이 사용하는 카드가 바로 삼성카드임을 강조해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높인다는 목적이다. 지난해엔 서비스 종류와 같은 장점을 알리는 카드 광고가 많았지만 카드사의 실질적인 특징이 대동소이해진 현재는 브랜드 이미지의 차별화에 더 주력하는 상황인데 이들 광고에서 그 같은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삼성카드 광고는 '남자'편과 '여자'편 등 두 종류로 나뉜다. 전자는 동성친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정우성. 후자는 아내(고소영)의 눈으로 평가한 정우성을 그리고 있다. 먼저 '남자' 편. 친구와 더불어 즐겁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정우성을 활기차게 비춘다. 신사복에 배낭을 둘러메고 스니커즈를 신은 그야말로 '퓨전' 옷차림의 정우성은 친구와 헤어진 뒤 상점에 들러 물건을 산다. 정우성의 일상을 따라잡은 화면 위로 흐르는 친구의 목소리. "참 멋진 녀석이죠?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나요?"

다음은 '여자' 편. 정우성은 자전거 바구니에 물건을 싣고 웃음을 띤 채 귀가하고, 그런 그를 아내 고소영은 행복한 미소로 맞는다. 화면 위로 흐르는 고소영의 내레이션. "제 남편이에요. 능력있는 남자죠. 여자를 사랑할 줄도 알고요." 바게트 빵을 한 아름 사들고 온 정우성은 아내에게 특별 선물도 건넨다. 선물 상자를 열자 안에서 빨간 인형이 튀어나와 '사랑해'를 외친다. 남편의 깜찍 선물에 고소영은 파안대소한다.

아무렴 이런 남편이 있다면 어는 여성인들 입을 헤벌쭉 벌리지 않겠는가. 긍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멋진 요소만을 버무려놓았다. 가정을 생각하는 자상한 가장이고, 게다가 아득바득 성공에 집착하는 형도 아닌데 능력도 있단다. 적지 않은 나이일 텐데 청년의 자유정신과 개성도 잃지 않은 듯 보인다. 한마디로 세련된 보보스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정우성의 행복한 표정을 사진틀처럼 블루박스로 처리한 마지막 대목은 앞으로 이 CF가 시리즈물로 이어지면서 일관되게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급승용차인 재규어를 배경으로 웨딩드레스 숍을 구경하며 "아, 장가가고 싶다"고 소박하게 푸념하는 '스포츠재벌' 박찬호나 수영, 사격, 색소폰 연주 등 못 하는 게 없는 배용준의 이미지도 "어휴, 너무 멋져"란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재규어'나 '자전거'의 이미지 모두 일상의 에로 들기에는 자신없는 몽상의 산물일지 모른다. 존재한다고 박박 우기면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자전거를 탄 샐러리맨이 좀더 가슴에 와닿는다면 그것은 손에 잡히는 판타지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년석' 정우성의 이미지를 이루는 자전거, 배낭 같은 소품, 관찰자의 내레이션 등이 바로 비교우위의 신선한 공감을 돋우는 장치로 톡톡히 작용하고 있다. 카드 사용으로 주위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이타적인 면에 주목했다는 점도 차별성이다.정우성의 얼굴에 더불어 사는 삶을 존중하는 조화로운 개인주의의 빛깔을 채색했다는 것은 구구절절 긍정적인 남성상의 스펙트럼을 더욱 윤기나게 만든다.

백일몽이라고? 그래도 가끔은 그런 남성이 도처에 살고 있을 것이란 착각의 늪에 빠지고 싶다.조재원/스포츠서울 기자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