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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오! 컬트 <졸업>
2002-03-13

날카로운 첫경험의 추억

첫경험은 난데없다. 사랑이건, 섹스건, 책이건, 가슴 쿵쾅거리는 떨림으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평생에 그림자를 드리울 첫경험은 기습적으로 찾아온다. 시간과 복장, 그리고 자신에게 걸맞은 상대방까지 골라 ‘첫경험’을 준비했던 <클루리스>의 셰어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나에게 더스틴 호프먼의 <졸업>은 두 가지의 첫경험을 제공한 영화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개봉한 지 20년도 지난 영화가 왜 변두리 도시의 개봉관에서 재개봉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친구와 나는 자율학습 시간에 쭐래쭐래 나가서 함께 <졸업>을 봤다. 할리우드 키드도 아니었고 영화에 대한 지식도 없던 내가 왜 잠깐 개봉한 이 영화를 볼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지만 극장에 들어가는데 제지당했던 기억도 없다. 다만 혹시 볼지도 모를 미성년자를 위해서인지, 로빈슨 부인을 일레인의 이모인가 고모로 번역해 놔, 그 혼동은 꽤 오랫동안 갔다.

어쨌거나 영화가 끝나고 엄습한 지독한 어지럼증에 나는 극장을 나와서도 한동안 거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친구는 “왜 그래, 저녁 먹은 게 체했어?”하며 염려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 충격은 60년대 미국사회의 탐욕이나 젊은이들의 정신적 공황 따위와 무관한 것이었다. 그 정도를 이해할 수준도 아니었다. 영화의 첫장면에서 공항복도를 나오던 더스틴 호프먼의 멍한 눈빛에 말 그대로 감전돼버렸다. 공허하고, 무기력하며, 때론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눈빛은 “이래도 안 멋있냐”고 외치는 듯한 제임스 딘이나 맷 딜런의 눈빛에 비하면 참으로 싱겁고 초라했지만, 그래서 ‘정말’같았다. 로빈슨 부인과 호텔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동물원에서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사라져가는 일레인을 쳐다볼 때, 마지막 장면에서 일레인과 함께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날 때조차도 그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래서인지 웨딩드레스 차림의 연인과 함께 도망간다는 낭만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전혀 해피엔딩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 눈빛은 영화보기의 첫경험, 첫떨림과 함께 나에게는 또 다른 첫경험을 제공했는데, 일종의 관능을 동반한 첫번째 이성경험이었다. 그 전에도 무수히 많은 남자들을 좋아했다. 듀란듀란의 존 테일러, <아웃사이더>의 맷 딜런, <영웅본색>의 주윤발 등등. 어린 내가 보기에도 더스틴 호프먼은 작은 키나 처진 어깨, 매부리코까지 섹시함과는 거리가 먼 외모였다. 그러나 벤이 일레인과 키스할 때 솟아오르는 질투심은 비디오로 반복해 보면서 점점 더 심해졌고(심지어 나중에는 스트립쇼에서 뛰쳐나와 눈물을 흘리는 일레인이 내숭을 떠는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에까지 도달했다), 수영장의 고무튜브 침대 위로 벤이 뛰어오르는 장면과 포개지는 호텔의 정사신이 참고서 글씨 위로 자꾸 펼쳐져 혼자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나중에 더스틴 호프먼의 다른 영화들을 보면서는 당연하게도 그에게 더이상 성적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졸업>의 그가 주었던 성적흥분(?)은 지금까지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조차 갈음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고없이 찾아온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었다는 것 이외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얼마 전 교육방송에서 <졸업>을 방영했다. 벤이 일레인이 다니던 버클리대학에 찾아간 장면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나는 그의 검고 숱많은 머리카락 속에 다섯 손가락을 찔러넣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무렵 갑자기 목이 메기 시작했다. 마지막 버스 안에서 땀에 전 벤의 눈빛을 보고는 급기야 질질 짜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그 눈빛에서 교차하는 기대와 불안의 실체를 알 만한 나이가 되어서일까. 김은형/ <한겨레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