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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작가 인터뷰
2002-03-14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 봤니”

윤성희 작가의 미니시리즈 첫 작품은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성격이 확연히 다른 두 작품에서 공통점이라면 <아름다운 날들>(이장수 연출)의 마지막에 주인공 연수(최지우)가 남자에게 버림받고 쫓아다닌다는 것 정도일까. 운명적 사랑에 대한 불신이 은연중에 내비쳤다면 <지금은 연애중>은 본격적이다. 변신이 두드러지는 최근 행보지만 <아름다운 날들>은 윤성희 작가의 작품 목록에서 가장 튄다. MBC 일요아침 드라마 <> <사랑밖엔 난 몰라> 등 라이트 터치의 코미디를 하면서 만화적인 장치와 코미디적인 치고 받기가 일품인 대사의 기본을 닦았다. 상황이 우울해서 쓰면서 우울했던 <아름다운 날들>과 달리 <지금은 연애중>은 정말 행복했다. 그때 쓸 수 있는 게 있는데 <지금은 연애중> 같은 사랑 이야기는 바로 지금 써야 한다고 생각한 드라마. 베스트극장 작품으로는 <너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너의 눈물로 나를 씻는다> <그녀의 화분 no.1>(이상 MBC)가 있다. 75년생의 이야기 <지금의 연애중>의 작가는 71년생이다.

캐릭터가 현실적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주위에서 저거 내 이야기 아니냐라고 말하지 않나.

그런 걸 의식하면서 쓴 건 아닌데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면은 친구의 모습이다 느끼는 때는 있다. 현실적인 것은 캐릭터가 특별하기 보다는 일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자친구 관계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처음에는 각 회별로 남자가 등장하여 각각이 완결적인 구도를 짜였는데 이후에는 그런 형식이 허물어졌다. 처음에는 빨리 진행되다가 뒤로 갈수록 늘어지는 느낌도 드는데.

예상을 못했던 문제는 아니다. 남자들의 여러 가지 유형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제작여건상 각 회별로 배우들을 섭외하는 것이 힘들었다. 신인급이나 연기가 부족한 사람은 쓸 수 없다. 그래도 한 회의 주인공인데. 하지만 그런 연기자 중에서 한 회의 주인공으로 흔쾌히 승낙하는 배우들이 별로 많지는 않다. 그리고 우리나라 미니시리즈에서는 연속성을 중요시 여긴다.

그리려고 했는데 그리지 못한 남자 유형은 뭐가 있을까.

세분해서 갈 수 없어서 복합적으로 갔다. 가령 처음에는 여자에게 헌신적이다가 파쇼적으로 돌변했다가 나중에는 스토커 기질로 여자를 쫓아 다닌다. 따로 다뤘다면 기질이 더 집중해서 나타났겠지. 스토커 기질이 있는 사람은 진성이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뒤로도 계속 나타난다. 술 마시면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한 여자한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자한테도 그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디테일한 점을 봐줘야 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복잡하게 될 것이다.

규인과 호정은 계속 서로 어긋난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도 만나면 계속 싸우게 된다. 어긋나는 것이 많은 것은 이런 상황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작가의 심중에 있을 듯한데.

주석을 붙이면서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데. 이해가 안됐다면 잘못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서로 오랫동안 알았으면 그 사람이 당연히 알아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가 아니고 “아” 하면 “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기대가 서로에게 있다. 그리고 규인의 성격은 캐릭터에서 이해를 해줬으면 한다. 규인은 ‘촌놈’이라서 한 걸음이 늦다. 요즘 남자들은 강점을 빨리 보여주는 징검다리 스타일인데 규인은 된장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건우와 얽히면서 규인의 자존심 문제가 되었다. 해줄 게 없다면 옆에 있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스타일이 현실 속에서 사랑을 이루기는 어렵다. 해피엔딩이 되기 어렵다. 사랑도 깊고 사랑받아야 하는 스타일이지만 사귈 때 무지 답답하다.

이 드라마는 여자의 입장에서 그린 드라마기 때문에 그런 점을 속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호정처럼 시청들도 ‘답답하게’ 느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75년생들의 정서는 어떻게 체득했나.

들어가기 전에 75년생을 많이 만났다. 연애를 많이 했을 것 같은 사람도 만나고, 평범한 75년생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아보려고 했다. 결론적으로 드는 생각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와 노래, 패션이나 트렌드 등에서 느끼는 미묘한 차이가 있고 표현이 직접적인 것뿐이다.

몇 년이 흐른 뒤 재회한 남녀가 “주말에 뭐해?”라고 묻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엔딩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다. 한 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를 발견하고는 기분이 좋아서 달려가는데 그쪽에 규인과 호정이 보인다, 그 둘 앞에서 여자 아이가 “나 저 아이랑 결혼할거야”라고 하면 규인이, 자기 같은 아이가 나왔으면 했는데 호정이 같은 애가 나와서, 호정이가 괴롭혔던 것처럼 얘도 나 어지간히 괴롭히겠다는, 그런 미묘한 표정을 짓는 것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코미디 같아서 혼자 웃고 말았다. 드라마를 하면서 행복했다. 대사가 많아서 <아름다운 날들>은 130-140 매 정도 되었는데 이건 끝까지 180-190 매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더니 결국은 끝났다.

날씨 좋은 날 끝나서 기분이 더 우울하겠다.

내가 예전에 쓴 가사에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 봤니…”라는 가사가 있는데.

윤성희 작가의 새로운 이력. 위의 가사가 나오는 <이별공식>과 <조조할인>이 그의 작품. A면 네번째 곡 같은 걸 쓰던 작사가에게 <이별공식>이 뜨면서 의뢰가 빗발쳤다. <>을 쓰는 중이었다. “연애처럼 일도 한꺼번에 몰리는지” 3년 하던 작사가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노래는 오래 남는다. 그런데 드라마는 금새 잊어 버린다. <피아노> 시작할 때 <피아노> 팬들이 게시판에 들러서 <지금은 연애중>이 들어가야 돼서 <피아노>의 계획보다 빨리 종영했다느니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주 늦춰지면 제작진에서는 더 좋은 건데 사람들은 그걸 믿는지 리가 계속 올라왔었다. 지금 <지금은 연애중2> 만들라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만 금새 잊어버릴 것이다.”

눈이 부신 날에 그는 호정, 규인, 수지, 호재, 차희를 한꺼번에 떠나 보냈다. 어록

현민(김정현): “연애는 순간의 진실일 뿐, 그 순간이 지나면 변색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야. 니가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진성(최준용):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보다 더 자기를 좋아해주는 남자와 사귀어야 잘 된다고 하던데.” “서로 바라는 게 없는 사이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수지(이의정): “모임 안에서 커플 생기면 모임 확 깨지는데.”

수지: “여자는 관계지향형이고 남자는 문제해결형이래.”

호재(권상우): “이쁜 여자들 다 좋은 집안에 시집간단 말이야”

호재와 수지: “누나 계속 좋아해주면 안되냐. 싫어한다고 생각하니까 밥맛도 없고…” “너는 지금 열 받아서 이러는 거야. 나 같은 여자는 당연히 좋아해야 하는데 하고”

호정(채림)과 차희(최윤영): “규인이 왜 좋아?” “담벼락 같아서 좋아.”

수지, 차희: “키스할 때 니가 먼저 눈 감았어? 그럼 그 사람은 자기 약점을 숨기는 스타일이다. 반대로 여자보다 먼저 눈을 감는 남자는 겁이 많은 스타일이고 키스하다가 중간에 눈을 뜨고 요렇게 여자를 들여다보는 남자는 의심이 많은 스타일이래. 손은 어딨었어? 손이 어깨로 가면…” “키스 한번 하고 나면 손 안 가는 데 없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래.”

규인(소지섭): “두 종류의 여자가 있어. ‘여자 냄새가 나는 여자’와 ‘여자 냄새가 나지 않는 여자’”

규인: “남자가 연락을 하지 않을 때는 세가지가 있어. 죽었다. 사고났다. 연락하기 싫다.”

건우(이재황): “넌 아직도 생각하고 있구나. 생각 같은 거 감정의 빈자리에 들어가는 건데.”

정훈(박철): “남자의 마음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지만 여자의 마음에는 한 개의 방밖에 없다고 해요.”

호정 나레이션: “왜 하나님은 키스할 때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드셨을까? 그건 아마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호정 나레이션: “여자는 100개의 사랑을 하면 100개의 얼굴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호정 나레이션: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다. … 아무리 연애를 많이 해도, 아무리 많은 얘기를 들어도, 끝내 정답을 알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사랑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집착하는 아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