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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꽃·양> 감독 임인애, 서은주 인터뷰
2002-03-26

“싸움은 폼나라고 하는 게 아니다”한때 마당극을 무대에 올렸던 임인애(44) 감독은 89년부터 노동현장에서 붙박이로 지내왔다. 일터, 노동자문예창작단 등을 거치면서 파업지원 공연을 주로 해왔으며,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주로 노동조합 교육용 비디오, 방송용 시사물 제작 등을 맡아왔다. 임 감독과 함께 공동연출한 서은주(30) 감독은 <밥·꽃·양>과 소재가 동일한 <평행선>을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작가. <밥·꽃·양>은 98년 울산 현장에서 따로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두 사람과 홍은영 조감독,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만든 라넷(LARNET: Labor Reporter’s Network)의 첫결과물이다.-<밥·꽃·양> 사태를 겪으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임인애)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게 뭔지 경험하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물론 밥 짓다 정리해고에 내몰린 여자의 고통보다 카메라 들다 검열 요구를 받은 여자의 심정의 절박함이 덜하겠지만.(서은주) <평행선> 때도 상영 저지 압력을 비롯해서 속상한 일이 많았다. <밥·꽃·양>을 만들어가면서 그걸 치유하나 싶었는데, 이번에 또 벼락 같은 일을 당하고 나니 내게 남은 게 뭐 있나 싶다.-검열을 둘러싼 상황을 볼 때 다소 성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없지 않은데.=(서은주) 주위 사람들 중에 ‘당하고 싸우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렇다면 우리 작품이 난도질당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건가. 그 말 듣고 많이 서운했다.(임인애) 그건 싸움을 하려거든 명분을 가지라는 건데, 맞고나서 ‘니, 왜 때렸나’ 하면 뭐 하나. 그래서 사이버상에서 계속 싸움을 벌였던 거다. 다들 ‘몸’으로 싸워왔던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인터넷이 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카메라를 들게 된 계기는.=(임인애) IMF 맞고 정리해고를 해야 한다는 논리가 판을 쳤다. 그런데 진보적인 학자들도 그렇고 아무도 실질적인 반대를 안 했다. 그러던 중에 현대자동차 파업사태가 터졌고, 노조위원장이 회사와 정부의 중재안에 대번에 도장을 찍어주는 일이 벌어졌다. 목을 치겠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었다. 현장에서는 그때 난리가 났었다.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정리해고라는 해명을 들으면서, 싸움은 정치적 레토릭이나 폼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소제목이기도 한 ‘파업의 심리학’이 의미하는 게 뭔가.=(임인애) 97년 말부터 이미 회사는 정리해고를 위해 여유인원 1만명을 산출하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제발로 나가도록 일거리가 없다며 일부 생산라인 가동을 중지했고, 그런 일이 반복됐다. 노동자들로선 그런 상황에서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그러다보면 ‘누군가는 나가줘야 하는 갑다’ 하는 마인드 세팅이 되고 아주 무기력하게 된다. 8천명의 명예퇴직 이후에 정리해고 대상이 된 1538명이 98년에 벌인 싸움 역시 그런 심리적인 강박관념이나 두려움은 계속됐고, 그걸 찍고 싶었다. -남성에 대한 여성, 조직에 대한 개인을 위한 시선이 또렷한데. =(임인애) 싸움을 앞에 놓고, 한 사람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또 그걸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보고 싶었다.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고통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 역시도 그럴지 모르고. 또 고통이라는 게 당하다보면 감각이 무뎌지는 거니까. 고통의 원인이나 치유의 방법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 일단 집요하게 보자는 원칙을 세웠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이 땅에서, 가난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