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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려움` 3국 3색
2002-03-26

비가 오는듯 마는듯 날씨가 구물구물하다. 영국령 시절 한때 영화를 자랑하던 홍콩 시내의 경찰 기숙사 건물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통틀어 1~2 가구 밖에 살지 않는 건물 밖 커다란 카메라 크레인이 3층에서 밑으로 쭉 내려오자 커다란 방부제 쓰레기꾸러미를 든 한 남자가 나타난다. 중국 본토에선 의사였지만 홍콩에 건너와 극빈층으로 전락한 파이 역을 맡은 리밍(여명)이다. 지난 23일 홍콩의 할리우드 거리에선 홍콩 감독 첸커신의 단편영화 <과년회가(過年回家)>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었다. 이 영화는 <반칙왕>의 김지운 감독과 <잔다라>의 타이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 <첨밀밀>의 첸 감독 등이 인간의 `두려움'을 공동 주제로 만드는 미스테리 옴니버스 영화 <쓰리(Three)> 가운데 한 편이다.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공동영화로 기록될 이 작품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3개국에서 100여명의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이미 촬영을 마치고 주연배우들과 함께 홍콩 현장을 찾은 김 감독과 논지 감독, 그리고 첸 감독도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쓰리>는 인간의 `두려움'이란 보편적 주제를 다루지만, 3개국의 상이한 역사적 경험과 기억, 그리고 코믹에서 멜로까지 세 감독의 확연히 다른 스타일 만큼이나 다양하고 독특했다. 신도시에서 기억상실증으로 길을 잃은 한 주부(김혜수)와 그를 찾는 남편(정보석)을 그린 한국편 <메모리스>는 현대 한국사회의 정체성에 시선이 가 있다. 김 감독은 “신도시는 상류층으로 향하려는 욕망의 결정체”라며 “욕망 자체가 두려움으로 변하는 과정, 그 결과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반면 논지 감독의 타이편 <수레바퀴(The Wheel)>는 “욕망과 탐욕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인간을 `저주'라는 숙명을 통해” 그렸다. 80여년 전 타이 시골마을의 전통인형극을 대대로 이어가는 집안을 소재로 했다. 홍콩편은 아내의 주검과 살아가는 한 남자의 편집증적 사랑과 아들을 잃은 경찰관의 이야기가 얽히며 진행된다. 이 기획을 주도했던 첸 감독은 “한국·홍콩·타이는 오늘날 아시아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이라며 “흔히 아시아 협력을 이야기하지만, 우린 영화에서 그동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지 몰랐다. 이번 영화가 그 첫 시도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영화의 폭발적 성장에 대해 “10여년 전 홍콩이 오늘날 한국의 모습이었지만 쇠락하고 말았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 비용이 급상승하는데 관객 숫자 자체가 적은 아시아 각국의 시장은 한계에 이내 부닥친다. 한국에게도 이 기획은 미래의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를 갖는다”라고 말한다. 한국의 봄 영화사, 타이의 시네마시아, 홍콩의 어플로즈 픽처스가 모두 250만 달러를 들여 공동제작하는 <쓰리>는 오는 8~9월 3개국 동시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콩/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