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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
2002-03-28

마냥 무사태평이군

● <오션스 일레븐>은 적어도 감독의 입장에서 보자면, 리메이크 하기 너무 좋은 완벽한 프로젝트랄 수 있다. 자기가 뭘 어떻게 만들든지 간에 적어도 60년산 오리지널 <오션스 일레븐>보다는 나으리라는 믿음 때문에 스티븐 소더버그는 틀림없이, 적이 안심했을 것이다. 프랭크 시내트라와 그의 랫팩이 성공적으로 라스베이거스 번화가에 잠입해 다섯 군데 카지노를 3분 만에 접수해버린 뒤 모두가 <올드 랭 사인>을 부르는, 껄렁껄렁하고 우쭐우쭐하기만 할 뿐 내용이라곤 없는 장난 같은 그 영화 말이다.

이미 확실히 바닥을 쳤으니 이제 올라갈 일밖에 안 남은 그런 상황. 소더버그는 우선, 덜 현란한 대신 좀더 친근한 이들로 패거리를 새로이 구성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중 몇을 꼽아보자면, 온화한 보스 대니 오션 역할에 조지 클루니, 붙임성 있고 상냥한 디노 역을 느슨한 풍으로 소화해내는 브래드 피트, 코크니 악센트를 가진 사기꾼을 연기한 돈 치들, 똘마니 역을 맡은 맷 데이먼, 그리고 서글서글한 베테랑 칼 레이너 등이다. 앤지 디킨슨처럼 머리를 말아올린 줄리아 로버츠는 오션의 전 부인 역할을 맡았다. 사람을 꿰뚫어버릴 정도로 멋진 미소를 짓고 있는 클루니가 무슨 값을 치러서라도 되찾고 싶어하는 그 여인 말이다. 지금 그녀는, 앤디 가르시아가 연기하는, 남들을 지배못해 안달하는 악당 카지노 귀신의 수중에 있다.

기본적으로 소더버그는 이 리메이크를 록비트를 깐 <미션 임파서블>처럼 설계했다. 서커스 같은 스턴트를 곁들인, 마치 로봇 같은 움직임의 <미션 임파서블>이랄 수 있겠다. 이 새로운 <오션스 일레븐>은 가끔 오리지널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언제나 익살과 농담으로 변주한다. 이 새 버전은 오리지널의 고약하고 불쾌한 냄새의 나르시시즘을 확실히 제거하고 있다. 랫팩에게 라스베이거스란 거의 신성한 신전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현란하게 우쭐대는 땅에 세워진 빛의 도시였다. 그러나 소더버그의 베이거스는 사막에 간편히 조립된 기성무대쪽에 가깝다. 그는 패거리가 각종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는 동안 다양한 앵글의 카메라를 들이대며 베이거스의 거리를 좌악 훑듯 촬영하는 데서 많은 성과를 얻어내지만, 그것을 별로 대단하다거나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리지널 <오션스 일레븐>은 카지노를 누비며 동전을 던져 축제를 벌이고 왁자지껄 다투고 떠들 때나 아니면 프랭크가 새미 어깨에 장난스럽게 가라테 합을 날릴 때 비로소 살아나기 시작한다. 이 대목들에선 칸 반 호이센의 금속성 나는 목소리에 얹힌 노래들이 함께한다. 각 곡들의 가사는 이런 식이다. “우린 살 거야, 살 거야, 살 거야, 우리가 죽을 때까지”(We’re gonna live, live, live until we die)라든가 “말해줘, 사랑이란 머릿속에 꽂히는 발길질 같은 거 아니야?”(Tell me quick, ain’t love a kick… in the head)라든가. 이 영화에서는 생기가 빠질 대로 빠진 모습이긴 하지만, 시내트라가 오리지널 <오션스 일레븐>에 투입된 목적은 분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퇴역군인들 한 무리가 함께하는 이 무대에 스타의 힘으로 크나큰 활기를 불어넣어 수백만달러의 흥행몰이를 해줬으면 하는 거의 군사작전 수준의 임무가 부여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소더버그의 해석은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의 흥행을 통해 화려하고 봐줌직한 홈무비를 만들 돈을 대줄 스튜디오를 차리는 것. 그래서인지 소더버그의 리메이크는 ‘장난’이 바로 ‘연기’를 뜻하는, 무대의 쿠데타라고 봐도 될 것 같다. 피트의 캐릭터는 한 테이블 가득 모여든 바보 같은 영화배우들에게 포커를 가르쳐주는 것으로 처음 소개되는데, 다들 느슨하게 놀이라도 하듯 즐기는 분위기다. 그리고 그들의 도둑질 그 자체는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역할놀이와 변장놀이의 온갖 세련된 변주에 기초를 둔다. 게다가 이 일레븐 패거리의 상당수는 언제나 전체 작전과 임무수행을 TV로 모니터하면서 여유있게 감상하고 있다.

<오션스 일레븐>은 마치 재즈 같고, 아무 고민도 없이 무사태평인 영화다. 프랭크라면 이런 것을 ‘쿨한 품격’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조크가 여기저기 분명 있긴 하지만 그저 잠시 꽃피웠다가는 금세 져버린다. 실패한 베이거스 도둑질에 대한 일련의 플래시백은 소더버그가 무엇을 할 수도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블랙아웃으로 마무리되어 버리는 카지노 대혼란의 흔들림도 마찬가지다. 소더버그는 아마도 이것과는 많이 다른 색깔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매끈매끈 윤기나고 쿨하며 다양한 시각적 성취를 화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영혼은, 그다지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다.짐 호버먼/ 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빌리지 보이스> 2001.11.5.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