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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에서 배우 된 지통마 마을 사람들
2002-03-29

“빗자루 치켜들고 감독 패 줄라 캤어”

<집으로…>에 출연한 마을 분들은 연기가 뭔지 모른다. 심지어 영화 본 지 하도 오래돼 영화가 뭔지도 모른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고 수줍었을 텐데, 생전 처음 카메라를 구경한 이 사람들의 연기 때문에 <집으로…>가 웃기고 또 슬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영화 속 할머니 집 세트가 서 있는 지통마에서 시작해 읍내까지 내려온 하루 동안의 여정.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는 또 다른 <집으로…> 이야기를 모아왔다.

이름 : 김을분 할머니

역할 : 주인공

내가 겪은 <집으로…> : 처음엔 안 하려고 했어. 영화가 뭔지도 모르고, 옷이 그렇게 생겨서 우리 아들 창피하잖아. 다 떨어진 거 입으려니까…. 우리가 아무리 못 살아도 그런 옷은 안 입고 살았어요. 감독이 아들한테 자꾸 졸라서 하긴 했는데, 첫날 무슨 얼굴을 그렇게 새카마니 해 놨는지. 손발이랑도 다 새카매서 첨엔 나가지도 못하겠더라고. 그러고 있으니까 허군(허재철 프로듀서)이 내손 꼭 잡고 할머니 드라마니까 괜찮아요, 그래서 했지. 할 때도 재미있는 줄은 몰랐어. 방에서 빗자루를 쓸고 있는데, 쪼그리고 앉아서 무릎은 아프지, 전깃불 훤하니 켜 놔서 등어리에 땀 줄줄 흐르지. 근데 열두시가 넘어도 감독이 자꾸 하라고 그러는 거야. 어찌나 부아가 나던지 빗자루 이렇게 치켜들고 감독 패줄라 캤어. 감독이 저만큼 가 서서 안 찍고 있길래, “왜 안 찍어요” 그러니까, “할머니 찍어도 돼요” 이러더라고. 나중에 후회했어. 사람들은 다 잘 해줬지. 촬영장에서 나 안 업어준 사람이 하나밖에 없어. 황 사장(제작사 황재우 이사). 그이도 나 때문에 고생했어. 자꾸 족발 사다 줄까요 물어보길래 나는 귤이 더 흔한 줄 알고 귤 사다달라고 그랬어요. 근데 귤이 거기 없었대. 황 사장이 김천까지 나가서 사왔대. 시방은 이렇게 인기 많아도 옛날에는 인기 없었어. 나 좋아한 할아버지가 하나 있긴 했지. 혼자 그래 좋아하다가 내가 막내 낳고 나서야 좋아했다 그러더라고. 우리 감독도 돈 많이 벌고 시집가야 할 텐데. 이래 고생하지 말고 시집가서 재미나게 살라고 했더니만, 애인이 없어서 시집 못 간대.

이름 : 딸기코 할아버지

유래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코가 몹시 빨갛다.

역할 : 할머니와 상우가 마을버스를 기다릴 때, 배추를 이고 오는 아주머니 짐 받아주는 동네 사람.

내가 겪은 <집으로…> : 여기는 사는 사람도 없는데, 북적거리니까 좋대요. 차도 잘 태워주고. 감독은 어딜 그렇게 다니는지 잠깐만 눈 떼면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하루는 여기 있고 하루는 저기 있고, 정신이 없는 사람이야. 큰 차 몰고 다니는 웬 뚱뚱한 아저씨 하나가 생각나네. 차도 고장나고 배도 고프다고 울고 있길래 내가 밥 해줬지. 어찌 그렇게 잘 먹는지, 원. 밥값하고 갔냐고? 아니, 그냥 갔어.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휑 하니 갔어.

별명 : 코아장 할머니

유래 : 촬영팀이 숙식을 해결한 여관 ‘코아장’ 주인할머니

역할 : 마을버스 안에서 졸고 있는 할머니이자, 마을 주민들을 엑스트라로 섭외한 ‘캐스팅 디렉터’

내가 겪은 <집으로…> : 졸고 있는 척하라 해서 앉아 있다가 진짜 자버렸네. 감독이 조는 것처럼 하라고 할 때는 그렇게 안 되더니만. 전날 밤에 애들 먹일 김밥 싸느라고 두 시간밖에 못 자서 그랬어. 날마다 40명 밥 해먹여야지, 촬영장 안 데리고 간 동네 사람들이 나한테만 뭐라고 그러지. 내가 뭘 안다고. 감독은 화나면 밥도 안 먹어요. 그래 정신 없었어도 애들 떠나고 하나도 없으니까 눈물이 다 나왔어. 가기 전에 애들이 약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그랬어요. 여기 이 총각은 내복 사주고 갔네.

이름 : 찐 할머니

유래 : 시나리오에 ‘살찐 할머니’로 설정돼 있어서. 주인공 할머니와 아주 닮았지만, 조금 더 찌시긴 했다.

역할 : 상우 할머니한테 쵸코파이 두개 덤으로 얹어주는 구멍가게 할머니

내가 겪은 <집으로…> : 서울 가서 개업식(<집으로…> 기자시사회) 구경도 잘 하고 잘 얻어먹고 왔네. 늦어서 영화는 한 시간도 못 봤어. 나 나온 거는 봤어. 좀 늦게 나와 갖고. 내가, 사람 그렇게 많은 건 또 처음 봤네. 동네에서 관광버스로 한차 간 거는 아주 한쪽 구석에도 안 붙더라. MBC도 오고 뭐냐, SBS도 오고. 여기 왔던 총각들도 다 있더만. 영화 찍는다고 그럴 때는 뭣도 모르고 가서 그냥 앉았는데, 감독이 그냥 찍었대. 내가 대사가 많았나? 그런 거 몰라. 그거보다 개업식 때 찍은 게 더 많아. 몇번을 찍었어. 오늘은 어디서 왔나….

이름 : 쑥 할머니

유래 : 스탭들이 이 할머니네 할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 쑥을 캐고 계셔서 부부가 함께 ‘쑥’으로 통하게 됐다. 그 할아버지는 영화 찍던 도중 돌아가셨다고.

역할 : 신작로에 앉아 있는 나물장사

내가 겪은 <집으로…> : 여덟살 때 사람들 모여선 데서 영화 보고선 영화 본 게 처음이야. TV는 쪼매나게 나오는데, 크게 보니까 훨씬 재밌대요. 근데 나는 잘 안 나왔어. 이렇게 내려와서 휙 지나가니까 등어리밖에 안 나왔더라고. 그래도 내 등어리니까 눈에 쏙 들어 오대. 영화 찍을 때는 담담하게 했지. 내가 원체 수줍어서…. 여기 방송국도 많이 오고 그랬는데 아직도 카메라 대면 수줍어서….

이름 : 경희 이모

유래 : 스탭도 모르고 본인도 모른다.

역할 : 마을버스 안에서 장닭 날리는 할머니

내가 겪은 <집으로…> : 총각들이 내가 긴장해서 소주 먹고 했다는데, 원래 소주 잘 먹어요. 지금도 먹으라면 먹겠네. 난 하나도 안 떨렸어요. 감독이 “여기”, “저 밑에” 이런 거 하라고 해서 그냥 했어. 서울 가서 보니까 잘했더라고. 찍을 때는 할매만 엎고 다니고 영양주사 맞히고 그랬지. 그래도 거기 사람들이 잘못한 거 있으면 찾아다니고, 음식도 잘 시켜주고, 과자도 사다주고. 저기 벽에 있는 시계도 서울 구경 갔다가 받은 거야. 좋지?

이름 : 서장댁 할머니

유래 : 아드님이 일산인가에서 경찰 서장 하고 계신다.

역할 : 버스 안에서 장닭이 날 때, 부근에 있는 주민들 중 하나. 집이 세트 바로 근처여서 미술팀을 다섯달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셨다.

내가 겪은 <집으로…> : 내가 여섯명 아침을 다 해먹였지. 자기들이 해먹는다고 하는데, 사람 마음이 그런가. 쌀은 한 가마 팔아주더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착할 수가 없어. 몇달을 있으면서 눈 한번 안 흘기고, 여섯명이 한 사람이야. 마음이 다 통하나봐. 감독도, 여자가, 잘해요. 마음에 안 들면 열번이라도 다시 찍고 다시 찍고. 그래 나도 저 아래까지 여섯번이나 내려갔어요. 힘들었는데….

직책 : 이장님

역할 : 촬영장비를 옮겨주다가 사고까지 당하신 분. 경운기 타고 지나가는 마을 사람으로 출연했지만 편집당하셨다.

내가 겪은 <집으로…> : 우리 아줌니가, 꽝 하는 소리가 나서 집 밖에 나와보니까, 좀 전까지 있던 차랑 사람이랑 다 어디로 없어졌더래요. 경운기가 완전히 뒤집어져서 논바닥에 처박혔거든요. 그거 아직도 어디 처박혀 있을 텐데, 치웠나…. 차가 안 다니던 길에 차가 많이 다니고, 비까지 와서 길이 무너진 거야. 발목 양쪽 다 부러지고 허리도 상하고 여기 어깨도 다치고. 그래도 작년 호두농사는 촬영하러 온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지. 승호(상우) 엄마도 와서 내 호두껍질 까주고. 일은 제대로 했냐고? 그게… 처음이라… 하여튼 많이 도와줬어요. 인간으로서 보람을 느낀다는 거, 그게 중요한 거지.

이름 : 민경훈

역할 : 멋있고 잘생기고 그 나이치고는 “섹시해서” 발탁된, 상우의 연적 철이

내가 겪은 <집으로…> : 감독님은 조금만 잘못해도 소리질러서 무서웠어요. 꼭 우리 선생님 같았어요. 많이 울었는데…. 그렇게 무섭게 하니까 영화 찍기 싫다는 생각보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투리도 안 쓰는 건데 다 처음부터 배우고, 촌스럽게 하고 나오니까 창피하고. 어떨 때는 영화개봉 안 했으면 하고 빌었다니까요. 그래서 영화 보면서 제가 나올 때마다 웃겨가지고, 뒤로 누워서 안 보려고 했어요. 다음에 또 영화 출연하면 이번처럼 촌스럽게 안 나오고, 평소 제 모습처럼, 착하고 용감한 아이로 나오면 좋을 텐데. 뭐, 내가 그런 걸 했구나, 하고 뿌듯하기는 해요.

이름 : 임은경

역할 : 경훈이와 감독이 이심전심으로 찍은, 상우의 첫사랑 혜연이

내가 겪은 <집으로…> : 제가 촌아이처럼 생겨서 감독님이 저를 출연시킨 것 같아요. 경훈이 쟤는 시골아이처럼 나오는 게 너무 창피해서 여자친구한테 영화 홈페이지 주소도 안 가르쳐 줬대요. 저도 예쁘게 나오면 좋았겠지만, 어쩌겠어요. 제일 힘든 장면은… 음… 장터에서 어떤 애랑 막 떠드는 장면이요. 감독님이 계속 같은 거 하라고 시켜서 눈물이 다 찔끔 났어요. 근데 그 장면에서 승호(상우)랑 친해졌어요. 얘가 처음엔 가까이 오지도 않고 말도 잘 안 하더니, 장터에서 갑자기 팔을 탁 잡는 거예요. 그때부터 같이 잘 놀았어요. 영화 찍은 할머니도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글 김현정 parady@hani.co.kr▶ 이정향 감독, <집으로...>가기까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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