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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극과 <촉산전> [4] - 서극 인터뷰
정리 김현정 2002-03-29

“<촉산전>은 중국문화의 일부다”

-당신은 80년대 초반 홍콩 뉴웨이브에서 핵심적인 인물이었고, 당신 소유의 제작사 필름 워크숍(電影工作室)을 세우기도 했다. 그 당시 홍콩의 분위기는 어땠는가?

=1984년 이전의 홍콩에선 영화 만드는 일은 그리 존경받지 못했다. 그 시절엔 극장 상영 프로그램을 채우기 위해 충분한 양의 영화를 생산하는 일만이 중요했다. 액션영화 몇편, 코미디영화 몇편. 이런 식이었다. 나는 전영공작실이 이전에 수백번이나 봤을 영화를 새롭게 통찰해 제작하는 회사가 되기를 바랬다. 갱영화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거나, 무협영화를 통해 정치적 희생양을 다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로맨틱한 발상이었다.

-당신이 액션을 구성하는 방식은, 특히 최근의 방식은 정말 흥미롭다.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한치도 어긋남이 없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 장면들을 찍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무작정 들어가 카메라를 돌릴 수는 없다. <순류역류>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는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경우에 속했다. 생각해보라. 장소는 아주 좁고 북적대는 아파트인데, 쓸 수 있는 시간은 사람들이 일하러 나간 아침 10시부터 퇴근해 돌아오는 오후 5시까지, 7시간뿐이다. 주민들의 불평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 게릴라전을 치르는 것처럼 찍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들 사이 빈 공간에 수없이 많은 와이어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매달아 건물 안으로 들여보냈다. 카메라에 연결된 긴 케이블이 실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비디오 모니터로 전송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뛰어오고 카메라를 흔드는 동안,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에 따라 총격전을 찍었다.

-요즘은 서양 감독들도 동양의 무술을 많이 사용한다. <리쎌 웨폰4>에 이연걸이 출연한 것이 대표적인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가.

=바보 같은 영화였다. 카메라는 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쫓지 못하며 어디에서 멈춰서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 아시아 감독이 찍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아시아 감독들은 무술을 하는 배우의 신체를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알고 있다. 아시아에 있을 때 성룡은 액션 자체만으로 위대한 배우였지만, 이제는 웃기는 대사를 내뱉어야 한다. 세상에, <로미오 머스트 다이>를 봤는가.

-할리우드에서의 경험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홍콩은 시장도 산업도 너무 작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을 감수하거나 그들이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는 다르다. 프로들과 재능있는 인재들이 커다란 풀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홍콩만의 장점도 있다. 세계 어떤 나라보다 짧은 시간 안에 영화를 만들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융통성도 커진다.

-<촉산전>은 홍콩에 돌아와 만든 영화지만, 미국적인 특수효과도 많이 들어가 있다.

=<촉산전>은 1천컷 이상을 컴퓨터로 작업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셈이지만, 이것은 기술적인 의미에서보다 중국적인 사고에 상상의 세계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영화는 중국문화의 일부다.

-당신은 자주 ‘아시아의 스필버그’라고 불리곤 한다. 이 호칭에 만족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보다 닮고 싶은 다른 감독이 있는가.

=내게 가장 충격을 준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였다. <요짐보>를 볼 때까지, 이런 영화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미지가 넘쳐났고 도전적이었으며 실험적이었다. 내가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떤 감독도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창조할 수만은 없다. 난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 트뤼포, 히치콕, 고다르의 영화들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영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기술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대학과도 같다. 나는 비행기에서 들은 음악을 기억했다가 집에 돌아와 연주하곤 하는데,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남성적인 감독이라고 부르지만, 당신은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의 역을 여성에게 주고 싶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랬다. 양자경이 그 역을 연기해서 <영웅본색>이 여자들의 영화가 되길 바랐다. 여자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오래 전부터 여자만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가.

=<샹하이 블루스>를 찍을 때, 주연인 장애가는 내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영화 속에서 여배우들이 남성을 연기하는 장면이 있다. 장애가는 내게 여자들의 감성이 남자 역할에 보다 모호하고 복합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여성이 더 풍부한 주제를 제공할 거라고 했는데, 나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영화 속 인물들의 성적 정체성을 확장해가면서, 나는 그녀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를 만들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영화 한편을 끝낼 때마다 너무 실망한 나머지 한시라도 빨리 다음 작업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 이 인터뷰는 <타임 아시아> <인디와이어> 등에 실린 인터뷰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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