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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새로운 물결·한국영화회고전·딥 포커스 부문
2002-03-29

`착한 여자`는 없다

여성은 귀엽고 온순하고 참해야 하는가. 낡은 여성성에 대한 도발 그리고 전복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돼야 한다.

제비꽃 향기: 아무도 믿지 않는다 Violet Perfume:Nobody Hears You 감독 매리스 시스타치 . 멕시코 . 2001년 . 90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개막작)

어른도 아이도 아닌 청소년. 주체로서 인정도 보호도 받기 어려운 위치다. 특히 성폭력과 매춘은 이들이 접하게 되는 새로운 문제. 그러나 아무도 이들의 취약한 위치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게다가 가난한 아이들이라면 성폭력을 당해도 더욱 무시당하기 일쑤다. 멕시코시티에서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 강간을 다룬 이 작품은 성폭력의 문제를 계급적 차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15살 중학생 소녀 제시카는 씩씩한 톰보이다.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반항적이기도 하다. 제시카는 의붓오빠의 농간으로 강간을 당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가난 때문에 새 남편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도, 규칙과 청결만을 강요하는 학교도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시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단짝 친구인 미리암뿐이다. 그러나 제시카가 당한 끔직한 강간은 친구 사이에도 균열을 일으키는데….

사춘기 소녀들의 심리와 행동들을 생생하게 그러나 적절하게 거리를 두고 묘사하면서 이를 통해 성폭력의 사회적, 제도적 요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으로 다가가는 솜씨가 놀랍다.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구조와 섬뜩한 결말, 독특한 색채와 자연스러운 촬영, 꼭 보여줄 것만을 보여주는 경제적인 편집이 어우러져 관객의 뇌리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남자들이 오는 계절 The Season of Men 감독 무피다 틀라틀리 . 프랑스·튀니지 . 2000년 . 124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침묵의 궁전>으로 세계적인 여성감독의 반열에 올라선 틀라틀리 감독의 새 영화.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한 마을. 이곳의 모든 남자들은 일년 중의 11개월 동안 수도인 튀니스에서 돈을 벌고 한달만 집에서 머무는 풍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곳의 여자들에게는 남자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전적으로 좌우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무피다 틀라틀리 감독은 마치 카펫을 짜듯이,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정교하게 직조함으로써, 온갖 억압적인 전통과 제약으로 가득 찬 일상 속에서 튀니지의 여성들이 어떻게 순응과 저항을, 지속과 변화를 거듭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권위적 억압자로서의 시어머니, 어린 시절에 성폭행을 당한 큰딸, 유부남과의 금기시된 사랑에 빠진 작은 딸, 자폐증에 걸린 막내아들은 체념과 고통으로 가득 찬 주인공 아이샤의 삶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첫날밤이나 출산의 순간들, 남편과의 애증에 찬 관계나 딸들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역사들,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과의 깊고 충만한 유대감, 카펫을 짜면서 느끼게 되는 창조와 노동의 기쁨과 같은 계기들은 여성의 현실을 훨씬 더 다층적이고 역동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달 밝은 밤에 생긴 일 One Night the Moon 감독 라첼 퍼킨스 . 호주 . 2001년 . 55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1930년대 초반 호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독특한 록뮤지컬영화. 호주 대륙의 어느 오지에 백인 가족이 이주해온다. 어느 날 밤, 하나뿐인 어린 딸이 아름다운 달빛에 홀려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경찰은 탁월한 수색자이자 원주민인 알버트에게 실종된 딸의 수색작업을 맡기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땅에 원주민은 한 발짝도 들여놓을 수 없다고 고집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딸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자신이 스스로 나서서 딸을 찾기로 결심하고 알버트를 찾아간다.

1930년대 원주민 수색자로서 이름을 날렸던 실존인물 마이클 라일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야기의 초점은 수색의 성패보다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정서적 여정에 맞춰져 있고 환경에 대한 원주민과 백인의 시각차도 엿볼 수 있다. 여느 뮤지컬영화와는 달리, 오페라처럼 모든 대사를 노래로 처리한 점도 독특하다. 작곡에 참여한 폴 켈리가 아버지 역을 맡았고 그의 아내와 딸이 극중 어머니와 딸을 맡아, 일가족이 그대로 극중 가족으로 출연했다. 자연 채광을 이용해 만든 환상적인 이미지와 전편에 흐르는 강렬한 기타의 선율이 인상적이다. 호주 원주민 출신의 감독 라첼 퍼킨스는 세 자매에게 닥친 강간의 상처를 그린 <섬광>(Radiance)으로 세계 영화계를 강타한 바 있다.

사랑에 대한 진실 A True Story about Love 감독 이규정 . 호주 . 2001년 . 27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호주에 살고 있는 한국계 감독 멜리사 규정 리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메리칸영화제의 초청을 받고 그곳에서 한국계 영화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곳에서 한국계 남성과 사귀게 되고 또 일주일 뒤에는 일본계 남성과 사랑에 빠질 줄은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 감독 자신의 사랑이야기라는 사적인 공간은 성적,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예리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통로가 된다. 감독 자신이 등장하는 재현 장면과 한국계 영화인들의 인터뷰, 할리우드영화 이미지들을 섞어 고정된 성적, 인종적 개념에 딴지를 거는 것도 유쾌, 상쾌, 통쾌하다. 다큐멘터리 제작의 윤리와 ‘진실’도 딴지걸기의 대상이다. 웃으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화염속의 여걸들: 샌프란시스코 여성소방수 이야기 Some Real Heat 감독 스테파니 조단 . 미국·독일 . 2001년 . 54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자신의 육체적인 힘을 사랑하는 여성들이 있다. 직업도 힘 꽤나 쓰는 것으로 택했다. 작업 도구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는 조금씩 다르다. 손도끼 하나만 쥐고 있으면 만사형통인 여성도 있고 전기톱 소리에 가슴을 설레는 이도 있다.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신종 조직이 출현했냐고? 아니다. 이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는 여성소방관들이다.

겁이 없어야 하고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여성에게는 오랫동안 출입금지 구역이었던 소방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소방조직은 백인남성 이성애 중심사회의 축소판이다. 여성에게 가해진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시험하며 자신을 개발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정곡을 찌르는 인터뷰와 깔끔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 남인영/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묘녀 감독 홍파 . 한국 . 1974년 . 88분 . 한국영화회고전

B급에로영화와 공포영화의 시각적인 관습들 그리고 미스터리와 모호성을 중심으로 구조화되는 플롯을 결합시킨 <묘녀>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어떤 방식으로 상상되고 재현되는가를 보여주는 텍스트다.

잡지사 기자인 정훈(정훈)은 이모인 고귀자(선우용녀)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이모가 아니고, 두 사람은 기이한 운명으로 엮어진 연인 사이다. 결혼 첫날밤 고양이의 저주로 신랑을 잃고 과부가 된 고귀자는 자신을 사모하던 홀애비의 어린 아들인 정훈을 데리고 고향을 떠난다. 그녀는 이제 성인이 된 정훈을 마치 어머니처럼 돌보는 동시에 성적으로 지배한다. 불길함과 긴장이 감도는 두 사람의 주위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살인과 사고가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결국 정훈마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여성은 고양이라는 동물과 동일시되는데, 여기에서 비롯되는 그녀의 타자성과 괴물스러움은 바로 젊은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고 소유하는 그녀의 과도한 성욕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따라서 붉은 조명과 불안정한 앵글 그리고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프레이밍 등을 통해서 표현되는 정사장면들은 여성 섹슈얼리티를 과잉과 위협으로 재현하고 있다면, 그녀가 경쟁자인 다른 여성들은 물론이고 결국은 자신의 연인마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는 내용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혼돈과 파괴의 이미지로 위치 지우기 때문이다. 주유신/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불을 켜 Strike a Light 감독 지오바나 소니노 . 미국·이탈리아 . 2001년 . 75분 . 극영화 . 딥 포커스

뉴욕을 배경으로 11명의 20대 여성들이 협업으로 완성해가는 모노드라마. 11명의 여성들이 차례차례로 카메라 앞에 나서서 한 여성의 20여년에 걸친 성적, 정서적 모험을 독백의 형식으로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 주인공의 ‘여성으로 사는’ 길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 무언가 깨닫기 시작한다. <불을 켜>에서 그녀들의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포즈의 이미지와 언설들은 아리스토텔레스, 부다, 프로이트, 보들레르에서 록 스타 믹 재거에 이르는 남성 저명인사들의 여성혐오적 언설들을 무표정하게 반복하는 동시대 남성들의 이미지와 교차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불을 켜>는 이상형 남자(Mr. Right) 찾기의 허구와 이성애적 관계에서의 로맨스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대안은 레즈비어니즘?! 엔드 크레딧에 등장하는 이 영화의 부제는 “나는 어떻게 레즈비언이 되었는가”이다. 이 대안을 수용할 것인지 혹은 거부할 것인지는 이제 여성관객들 각자에게 남겨진다.

<불을 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매체적, 장르적 실험이 돋보이는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개념의 영화다. 비디오아티스트이자 사진가이기도 한 지오반나 소니노는 직업배우와 시민들을 등장시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해체하고 그 속에 실험영화 전통에 있는 뮤직비디오적 구성들을 삽입한다. 다양한 종횡비율로 이루어지는 장면 분할과 이미지의 병치, 다양한 DV카메라 포맷의 활용, 비디오게임과 3D이미지 작업을 비롯한 컴퓨터 특수효과가 어우러지는 영화 <불을 켜>는 영화라는 매체의 경계와 개념을 해체, 확장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면서 시종일관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주의적 영화다. 권은선/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전복의 매혹, 신나게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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