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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분장 송은경
2002-04-10

검버섯 심고, 주름 새기고

간밤에, 꿈은 아니겠지. 송은경(37)은 문득문득 잠에서 깨어 자신에게 묻는다. 분장의 길에 접어든 지 10년, 고단했던 2년간의 미국 유학 끝에 고국 땅을 밟으며 얼마나 불안해 했던가. 날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까. 분장 인생의 첫 영화 <집으로…>를 만나기 전까지 정신을 갉아먹는 고민의 시간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6개월간의 오지생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마다 손수 밥을 지어 주연을 맡은 할머니 집으로 날랐고, 마을 경로잔치마다 열심히 추어댄 춤 때문에 ‘핑클’이란 애칭도 얻고, 분장이 도리어 얼굴을 망친다며 도망치는 동네 주민을 따라다니던, 그 한켠에 날벌레, 도마뱀, 개구리….

지난 6개월이 모두가 꿈은 아니었을 거다. ‘자연스러워야 한다’를 신조처럼 되뇌이는 감독 밑에서 ‘마음이 짠할 정도로 늙고 추레한’ 할머니를 만들었고, “와, 저거 완전히 내 옛날 모습이네” 하고 웃어젖힐 정도로 촌스러운 철이, ‘클레오파트라 머리’ 혜윤이도 만들었고, 무릎팍이 발랑 까진 채로 흙투성이가 된 서울 아이도 만들어 스크린에 들여보냈다. 첫 일반시사가 있던 날, 누군가가 “저 영화 분장은 되게 편했겠다. 분장이랄 게 거의 없으니까” 하는 말을 듣고 비로소 웃는다. 송은경이.

<집으로…>의 메이킹 필름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할머니의 피부는 물오른 20대의 것은 아니지만, 거의 잡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운 상태. 일단 진한색 파운데이션으로 얼굴, 손과 발의 피부톤을 많이 낮췄고, 검버섯과 주름도 일일이 새겨 넣었다. 무엇보다 힘든 점은 할머니 스스로가 ‘분장=화장’이라고 여기셨기에 분장 뒤의 모습을 끔찍해 하셨다는 점. “도깨비같이 이게 뭐야?” 하시던 할머니, 그래도 나중엔 그녀가 행여 빠뜨릴까 ‘주름 넣는 거 잊지 마라’고 앞장서서 챙기셨단다.

한번은 촬영이 끝나고 할머니가 사라져서보니 때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밀고 계셨다. 이유를 물으니 진한 메이크업이 혹시라도 얼굴에 물들까봐서라고. 심각한 할머니 앞에서 웃을 수도 없고, 클렌징 크림을 가져다 깨끗이 닦아드리니 그제야 안심하셨다. 할머니 다음으로 큰 변신을 한 철이와 혜윤이. 사실 이 둘이 처음 오디션을 보러왔을 땐 머리색이 노르끄레했다. 집에서 혼자 염색할 정도로 외모에 관심이 많은 애들을 영판 촌아이들로 바꾸려니 애 좀 먹었다.

사진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바디페인팅한 배우의 몸을 담은 사진 한장이 그녀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인체를 이용해 전혀 새로운 종(種)을 표현할 수 있다는 깨달음 혹은 즐거움이 지난 10년간 그녀를 종종 걸음치게 했다. 먼길을 돌아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철새처럼 그녀의 여행은 이제 시작됐다.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프로필

1966년생

91년 분장일 시작

91~94 송진숙 분장 연구소

95~97 ‘끼 메이크업 스튜디오’ 운영

98~99 뉴욕 메이크업 학원

99~2000 LA 조 블라스코 분장 스쿨

2002 <집으로…> 분장

현재 <스턴트맨> 준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