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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되지 말자`는 <생활의 발견>
2002-04-12

지난달 22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생활의 발견>은 매우 짓궂다. 삶에서 작은 좌절을 겪은 한 남자(김상경)의 우연한 여행 길목에 두 여자(예지원·추상미)를 세워둔 뒤 이들이 벌이는 `사랑, 그 우스꽝스러움'에 카메라의 앵글을 맞춘, 얄궂고도 씁쓸한 코미디다.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처음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는, “우리가 인간이 되기는 힘들지만 괴물이 되지는 말자”란 말이었다. 선배에게 이 말을 들은 주인공은, 이 얘길 춘천에서 만난 다른 선배와 여자에게 써먹는다. 감독 스스로 이 영화의 열쇠말은 `모방(흉내)'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머리 속에서 맴돌았던 이유는, 이 말과 거의 정반대인 문장 하나가 한때 나의 좌우명과도 같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은 단재 신채호(1880~1936)의 <문예계 청년에게 참고를 구함>이란 에세이에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단재는 이 글에서 남 흉내내기에 급급한 조선의 현실을 매섭게 질타한다. “누군가 짚신을 삼아 이익을 보면 온 동네가 짚신장사가 되고, 떡을 팔아 이익을 보면 온 마을이 떡장사가 되며… 발이 아프거나 말거나, 세상이 외씨버선을 신으면 나도 외씨버선을 신는” 건 단재가 보기에 “노예의 사상”에 젖은 짓이었다. 그는 이어 어느 선사의 일화를 소개한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낀 선사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이런 문답을 나눈다. “앉아서 죽은 이가 있느냐?” “있습니다.” “서서 죽은 이도 있느냐?” “있습니다.” “그럼 거꾸로 서서 죽은 이는 있느냐?”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거꾸로 서서 죽으리라.” 선사는 마침내 머리를 땅에 박고 거꾸로 선 채 입적했다. 단재는 이 선사가 “남대로 하지 않는 일종의 괴물”이라며 이렇게 신음한다. “사람이 이미 사람 노릇을 못할진대 노예와 괴물에 무엇이 더 나으랴? 나는 차라리 괴물을 취하리라. 괴물!… 괴물!…” 우리는 “차라리 괴물이 되는 편이 더 나았던” 시절을 오래 겪었다. 식민지 40년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군사독재 25년의 세월에 정신차리고 산다는 건 어쩌면 `괴물'이 되는 길일 수도 있었다. 홍 감독이 단재의 말을 `흉내'낸 건지는 굳이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우린 지금 “괴물이라도 되지 말아야” 하는 시절에 와 있다. “차라리 괴물이 되겠다”는 생각과 “괴물은 되지 말자”는 말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전자가 지사적인 선언이라면 후자는 그런 힘을 다 빼낸 발언이다. 그럼에도 두 발언에는 똑같이 사람값하며 산다는 게 과연 어떤 건지 묻는 태도가 묻어 있다. 세월이 어디로 흐르더라도 사람 구실하며 산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이상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