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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이야기> <우렁각시>, 삐삐롱스타킹의 고구마
2002-04-12

신종 문화건달, 백현진과 고구마

국경의 끝을 떠도는 여행자

“만나봐, 재밌어.” “뭐랄까, 백현진이 괴로워하는 건달이라면, 권병준은 꿈꾸는 건달이라고 할 수 있지.” 주위의 풍문을 듣고 고구마를 만나러 가는 동안, 오래 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가 아직 대학에 다니면서 밴드 ‘토마토’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그와 한 택시를 탔다. “아, 고구마 아니세요?” 하고 알아보는 척을 하자 그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네”라고 했었다. 그때, 고구마는 이미 특별했다. 강의실과 집, 기껏해야 술집과 학원을 오가는 평범한 학생들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에 매료되어 자기만의 세상 속을 유영하는 이로 보였다. 말하자면 그때 이미 고구마는 “뭘 하고 살지 필이” 온 사람 같았다. <죽이는 이야기>에서의 그의 잊지 못할 대사처럼.

강남구청 사거리 대로변 빌딩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고구마는 하얀 식탁 옆에 연두색 티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천천히 하죠. 저도 지금 방금 왔는데” 하며 차를 끓여 주었고, 작업실 구경을 권했다. 널찍한 연주실과 유리창 벽 너머 또 하나의 공간. 석달 전 그가 직접 벽도 세우고 마루무늬 바닥도 붙이며 마련했다는 새 스튜디오는 번듯하고 깔끔했다. 눈에 띈 건 작은 방문을 열었을 때 보이던 가야금 두대. 그는 국악 연주팀 ‘사계’에 방 하나를 세주고 있었고, 곧 그 팀의 프로듀서로도 일할 거라고 했다.

고구마는 특유의 느긋함으로 그리 바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알고보니 하고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렁각시> O.S.T , 강기영씨와 만든 팀 ‘모조소년’, <굿 플레이>라는 안혜순의 무용음악, 신윤철씨를 도와서 하는 의 음악에다가 <죽이는 이야기>의 조감독이었던 박준현 감독의 입봉작 <오! 해피> 음악, 사계 프로듀서까지.

아직 ‘천천히 하는’ 시간. “좋은 데로 보여줘야 하는데”, 하면서 그가 <우렁각시>를 컴퓨터 화면에 띄웠다. 고구마가 선택한 아직 공개된 바 없는 남기웅 감독의 신작 <우렁각시>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고구마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뒷거래 철공소직원 건태를 연기했다. 주윤발을 흠모하는 건태는, 고구마가 영화에서 처음 해보는 주인공. 남기웅 감독과 만나 둘이 서로 뜻이 통해 바로 하기로 했고 ‘굉장히 열심히 했다’. “여지가 크지는 않았어요. 저기 나오는 거 다 대본 그대로 한 거예요. 대사 하나, 토씨 하나 대본하고 다른 게 없어요. 휴, 세 페이지짜리 대사 한컷으로 가는 것도 있었어요.” 고구마는 음악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 다 한다”며, <우렁각시>에서도 감독 요구대로 각본에 충실한 연기를 했단다. 불법무기를 만드는 철공소에 수상한 단속반이 들이닥치는 장면이 모니터에 뜨자 건태가 전전긍긍하는 걸 보며 웃는 고구마. “지금 단속 나온 거예요. 근데 저기 벽에 뒷거래 철공소라고 다 써 있어요. 큭큭.”

영화 속에서 고구마는 묘한 데가 있다. <죽이는 이야기>에서 그의 몰카 찍던 여관종업원 연기를 떠올려보자. 직업배우들에 비해 어딘가 미숙하고 때로는 연기하고 있다는 게 보이지만, 그게 밉거나 어색하지 않다. 직업배우가 아닌 이는 보통 아예 자기 개성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많은데, 고구마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정말로 열심히 연기를 한다. 그게 매력적이다. 배우 아닌 끼 있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 와중에 빚어지는 현상. 그건 가만히 있어도 영화캐릭터 같은 사람이 애써 자기와 다른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때 생겨나는 유머러스한 겹쳐보임이다.

영화배우로서의 자기에 대해 고구마는 이렇게 말했다. “별 매력없지…. (웃음) 그냥 조금 작품을 이해하는 센스가 있는 것 같고, 연기를 너무 연기같이 하는 연기자들에 질린 사람들이 저를 보면 끌리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것은, 그 역시 자기 음악에서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모조소년에서 그는 노래부르지 않는다. 게스트싱어들을 쓰는데, 그중에는 <해변으로 가다>에 나오는 여배우도 있다. “가수한테 노래시키는 게 싫어서”란다.

경계에 있는 사람

“인터뷰 약속 잡으러 전화했을 때, 신종 문화건달이라는 말을 꺼내니까 웃으셨잖아요. 왜 웃었어요?” “저기 좀 전에 여기서(<우렁각시>를 보던 모니터를 가리키며) 그 애(건태)도 그런 거(건달)를 동경하는 애였고, 제가 또 다른 영화 한 게 있거든요(). 그것도 그런 거라서, 그래서 그렇게 제목을 붙였나 했어요.” 이런 대화로 시작한 인터뷰는 그가 자신을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조금씩 깊어갔다.

“영화는, 어떻게 보면 외도 같잖아요. 곁가지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음악은 돈이 안 돼요. 저는 판 팔아서 돈 1원 한장 받은 적이 없어요. 다 손해봤지요. 그걸 바꿔보려고 모조소년 음악을 하고는 있는데, (웃음) 영화음악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제가 일을 접근하는 방식이 그런 식이에요. 하나를 집요하게 들어가기보다는 둥글둥글하게 돌면서 경계에서 왔다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회색도당, 회색분자라고도 해요. (웃음)”

‘경계’라는 말은 고구마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다. 그건 단지 그의 행보가 보여주듯 ‘여러 장르의 문화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그의 가치관이고 행동지침이다. “여행하는 사람의 느낌”이다. “여행자는 떠돌이잖아요. 여행지에서 그 삶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스치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자는 국경 근처를 자주 오갈 수밖에 없어요, 한곳에 3일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뭐 그런 거에요.”

내 방식대로, 사람들이 즐겁게

‘경계’를 늘 오가는, ‘한곳에 3일 이상 머무르지 않는’ 그이지만, 가장 애착을 두고 있는 건 있다. 음악이다.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덕에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하고 살았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니기 싫어하는 학원을, 종류도 가지가지 졸라서 5, 6개씩 다니던 호기심 많던 소년 시절, 그는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도 배웠고, 그러다 싫어 바이올린을 했고, 현악기에 재미를 붙인 뒤 중2 때 클래식기타를 하면서 기타로 옮겨갔다.

밴드를 처음 만든 건 휘문고 2학년 때. ‘제1회 한티가요제’가 그의 데뷔무대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보이스카웃을 하던 그는 그 무렵 보이스카웃단실에서 전자기타를 치곤 했는데, 가요제 소식을 듣고는 보이스카웃 친구들과 밴드 ‘강아지’를 급조했다. <렛잇비>로 예선 통과, 본선에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해 인기상을 받았다. 그때 친구들과는 나중에 인디레이블 ‘강아지문화예술’을 같이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는 들어온 서울대 불문과. 교수는 이인성, 조교는 성기완, 게다가 온통 끼 있는 친구들. 황금조합이었다. “진짜로 재밌었어요, 저는 대학생활에 하나도 후회가 없어요. 공부는 하나도 안 했는데, 아 그건 조금 후회가 되는데, 기본적으로 끼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엠티를 가건 뭘 하건…. 저는 동아리 활동 하나도 안 했어요. 과 사람들하고만 놀았죠.” 1992년 그는 대학 2학년 때 조교이던 성기완, 그리고 서울예전의 정선문, 국악과의 민경현과 함께 밴드 토마토를 만들었고, 이듬해 앨범을 냈다. 그 다음이 바나나보트다.

바나나보트는, 앨범 하나 내지 않은 추억 속의 밴드다. 하지만 “반갑습니다. 이곳은 한국의 얼터너티브 록밴드 바나나보트의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1994년 말경에 결성된 바나나보트의 당시 데모곡들을 위주로 꾸며진 이곳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세 청년의 꿈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나나보트는 온라인상에서만 활동합니다”라는, 고구마가 직접 만든 바나나보트 홈페이지 안내문에서도 알 수 있듯, 아직 살아 있다. “제가 그때 만들었던 곡들을 그대로 웹에 올려놨어요. 나중에 그거 갖고 뭐 하려고. (웃음)” 바나나보트의 데모곡 중엔 방에서 녹음하다가 갑자기 친구가 오는 바람에 빨리 끝난 노래(<I LOVE YOU SO MUCH>)도 있고 <액션가면>이라는, 고구마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도 있다. “밴드할 때가 그리워요.” 옛 음악들을 들으며 그가 말한다.

그립다고? 토마토도 1집만 냈고, 삐삐롱스타킹도 해체, 강아지문화예술, 99, 원더버드까지. 사실 그는 한 밴드 혹은 한 집단을 오래 유지한 적이 없다. 앨범 하나 정도를 작업한 뒤 해체되거나 그가 빠져나왔다. 토마토와 삐삐롱스타킹 사이, 제일 ‘개인적’인 바나나보트 시절은 그래서 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고구마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고구마는, 지금이 제일 좋다고 한다. 거쳐온 여러 밴드들, 그러나 “좋았으면 계속했을 텐데”라는 말이 스친다. 어딘가 그의 한구석, 어두움이 만만치 않다. 사실 인터뷰의 상당 부분은 그가 말하지 않고 내색만 약간 하는 어두움이 차지했다. (중략) 꽤 오랜 침묵이 흘렀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경계에서 사는 사람들 있잖아요. 힘들 때도 많아요. 여기 가면 여기서 치이고 저기 가면 저기서 치이고.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제일 또,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없어지는 그런 것들을 잘 볼 수는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거를 놓치고가고 싶지 않아서, 영화든 음악이든 자꾸 밖으로 밖으로 여태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이때까지 계속 상업적인 것들하고 한번도 담 쌓고 지내본 적이 없어요. 상업적인 음악을 해왔고, 상업적인 영화에 출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있잖아요. 그런 거를 이때까지 계속하려고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그게 웃기는 거가 될지도 모르고 뭐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그런 걸 하고 싶어요. 내 방식대로 사람들을 즐기게끔 만들고 싶어요.”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고구마는 요즘 새로운 꿈 하나가 생겼다. 스튜디오를 안에다 꾸민 차를 가지고 유럽에 가는 것이다. “여기 한국에서 너무 오래 있는 것 같아서, 나가고 싶어요. 답답해 죽겠어요. 올 말쯤에는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얼마나 길어질지는 모르겠는데, 열심히 돈 모으는 중이거든요. (웃음) 북유럽에 가서 현대음악을 공부하고 싶어요. 생각을 해봤는데, 한 2천만원 모아도 방 구하고 그러면 다 써지잖아요. 그래서 차를 사서 조그만 스튜디오를 차려서 중국으로 가서, 아니면 직접 유럽으로 갈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최근에 했어요. 여기서 이러고 지지고 볶고 지하실에서 곡 쓰고 이런 거 별로 안 좋아요. 여기 있으면 음악이 여기같이 나와요. 지하실 같은 음악. 밝고, 아름다운 세상 있잖아요. 그런 곳에 가서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우리는 언젠가, 중국 대륙을 혼자 달리며 밤이면 아무도 없는 어떤 벌판에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어떤 곳을 닮은 음악을 녹음하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홈페이지에 그의 음악들이 실리는 거다. “반갑습니다. 여기는 한국의 얼터너티브 문화건달 고구마의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2002년 말경 떠나, 언제나처럼 경계에 살았던 고구마의 음악들로 꾸며진 이곳에서 세상을 동경하는 한 청년의 꿈을 들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뭐, 이런 말을 거기다 써놓을 수도 있겠다. 글 최수임 sooeem@hani.co.kr 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뽀삐> <꽃섬> 출연한 어어부프로젝트 보컬 백현진

▶ 백현진이 쓴 노랫말들

▶ <죽이는 이야기> <우렁각시>, 삐삐롱스타킹의 고구마

▶ 고구마의 영화작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