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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회전문
2002-04-12

성일, 상수의 영화를 보고 회전문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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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 사고이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회전문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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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보지 못한 것은 이유가 있다. 선배 성우가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 발길을 막은 것은 가방 공장 사장이다 (그러나 가방 공장 사장과 그의 일행이 청평사에 우연히 산책하는 길에 왜 성우가 동행하기 싫어하는 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 여기에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을 방해하는 두번째 이유. 성우의 회전문에 관한 설명은 두 가지가 틀렸다. 하나는 역사적 모순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과 다르다(그러나 설화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성우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저기 회전문이 왜 회전문이냐면, 중국 당 태종 알지? 당 태종한테 평양공주라는 딸이 있었거든, 근데 한 총각이 그 평양공주를 너무 사모해서 상사병에 걸린 거야, 왕이 기분 나쁘니까 죽여버렸어, 근데 저기 뭐 죽은 뒤에 그 총각이 뱀으로 환생을 했는데, 뱀으로 환생한 뒤에, 저, 그 공주의 몸을 칭칭칭칭 감아버린 거야. 그러니까 공주가 답답하지, 힘들고. 근데 한 도사가 내려와서 조선의 청평사로 가보라고 그런 거야. 청평사로 갔는데, 저 청평사 앞에서 공주가 이런 거지. 제가 밥을 얻어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랬어. 그리고 들어가더니만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이 뱀이 안 되겠다 싶어서 들어가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소나기도 내리면서 막 이래서, 너무 무서워서 도망을 갔거든. 근데 이제 도망갈 때 돌아갔었던 그 문이 회전문이래”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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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해결방법. 비 내리고 번쩍거리면서 번개 치는 선영의 집 앞에서 그 문을 보고 자기가 (선영이라는) 공주를 칭칭 감은 뱀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영화감독의 말 “경수야, 우리 사람 되는 거 힘들어, 하지만 우리 괴물이 되지는 말자”는 말도 함께 기억하면서) 참담하게 그 집 문 앞을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거기서 멈추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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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회전문의 이야기를 선배 성우에게서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선배 성우와의 사이에는 선영이 아니라 명숙이 끼어드는 것일까? (선배 성우는 선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경주에서 선영을 만날 때 경수는 선배 성우의 면티를 입고 만나며, 게다가 성우가 술 마시면서 좌우로 흔드는 모습을 반복한다. 분신효과, 혹은 모방의 전이?) 또는 소양호에 가서 들은 이야기를 왜 경주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일까, 또는 경주에서 깨우치게 되는 것일까? 왜 비는 한번이 아니라 세번 내리는 것일까? 그런데 회전문 설화의 교훈은 불교의 윤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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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성우의 설명의 두 가지 오류에 관해서. 첫번째, 이 설화의 판본과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당 태종 시대의 평양공주라면 ‘조선의 청평사’에 올 수는 없다. 두번째. (이것은 판본의 문제인데) 춘천 소개 사이트에 따르면(http://chunchon.miraecity.com) 그 상사뱀은 뇌성벽력을 맞고 떠내려가 폭포에서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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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배 성우는 시대를 잘못 기억한 것일까? 만일 원래의 시대에 맞추어 복원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오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당 태종 시대에 평양공주가 상사뱀을 풀기 위해 한반도에 왔다면 신라시대일 것이며, 그 신라시대의 수도는 경주이며, 그래서 결국 경수가 경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는 것이 운명적으로(또는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이 (홍상수로서는) 싫어서였을까? 세번 내리는 비는 한번은 서울, 다음은 춘천,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주에서 내린다. 다른 설명. 회전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세번째 에피소드 18번째 신 다음이니까 상사뱀이 비 맞는 설화를 경수의 이야기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는 것은 호수와 선제 보살의 집 앞에서 선영네 집의 문 앞까지 두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두번 모두 소낙비와 함께 경수는 인연이 다했음을 알게 된다. 또는 인연이 다하는 순간 깨달음처럼 비가 내린다. 이 대목은 미묘하게 다르다. 명숙과는 인연이 다했음을 안 다음 비가 내리고, 선영과는 비를 맞으면서 비로소 인연이 다했음을 알게 된다. 명숙의 대목에서는 비 내리는 장면이 한 숏이고, 선영의 대목은 두 신, 두 숏이다. 세번, 또는 두번 모두 남겨진 사람은 경수이며 그 역은 아니다. 그런데 이 대목이 이상하다. 뱀은 떠나가고 공주가 남는다. 만일 경수가 상사뱀이 아니라 (여행하는) 공주라면 이 도식은 새로 세워져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 이 영화의 이야기를 파블라(fabula)의 시간배열로 다시 놓을 수 있다. 중학교 때 선영은 태릉에서 경수를 만난다-선영, 경수의 연극을 보러 다닌다. 그런데 경수는 알지 못한다-선영은 경주에 내려온다. 경수는 연극을 계속한다-경수는 영화에 출연했다가, 흥행에 실패한다-춘천에 내려와서 선배 성우를 만나고, 명숙과 만나 섹스를 한다-헤어지고 부산에 가는 기차에서 선영이 경수를 알아본다(그 역이 아니다!)-경주에서 경수, 선영을 따라 내리다-경수, 선영 집까지 따라간다-경수, 선영과 섹스를 한다-점괘를 보고, 선영 떠난다-경수, 선영 집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떠난다. 그러니까 경수의 주변을 떠돈 사람은 선영이며, 선영은 언제 어디서 마주쳐도 경수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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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론. 상사뱀은 잠시 밥을 얻어올 테니 기다리세요, 라고 한 공주를 기다리다가 참다못해 청평사로 가던 중 회전문에서 소나기와 천둥을 만난 것이다. 경수는 춘천과 경주에서 기다리다가 소나기를 맞는다. 하지만 이상한 점. 상사뱀은 “너무 무서워서 도망”간 것이지만, 경수는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두번 모두 그냥 떠나는 것이다(그러나 춘천에서 천둥은 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느 경우에도 정확하게 청평사 회전문 설화는 영화 속에서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매우 비슷하다. 또는 비슷한 척 흉내를 낸다. 흉내를 내기는 하는데 홍상수는 모든 수단을 써서 같지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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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생활의 발견>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경수와 성우, 명숙, 선영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청평사 회전문의 이야기이다. 그 둘 사이에 서로 관계가 있다고 말하기는 쉽다. 또는 그것을 영화에서 의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마지막 자막. 하지만 그 둘 사이의 관계가 은유인지, 아니면 환유인지 분명치 않다. 또는 그 관계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더 곤란한 것은 청평사 회전문의 설화와 홍상수의 이야기 사이에서 등장인물의 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는 잉여가 발생한다. 그래서 잉여를 해결하기 위해서 같은 이야기가 두번 반복된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오류에 기꺼이 빠져들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반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도식이다. 홍상수는 여기서 일정 부분 오류의 공범자이다. 왜냐하면 경수와 명숙, 그리고 경수와 선영의 이야기를 겹쳐놓지 않고 서로 분리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분리는 선명한 것은 아니다. 명숙이 남겨놓은 메모를 선영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영과 명숙은 만난 적이 없다. 회전문의 이쪽 문으로 들어가면 명숙이 있고, 저쪽 문으로 나오면 선영이 있다. 경수는 끝내 그 둘을 동시에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둘은 번갈아 술래가 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붙들러 간다. 주의할 점. 명숙이 선영을 붙들러 갈 수 있지만, 선영이 명숙을 붙들러 가는 것은 영화의 순서와는 모순이다. 이 영화에는 플래시백이 없다. 그런데 심리적인 플래시백 효과가 있다. 또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플래시백을 만들어 채워 넣는다. 그러나 그 플래시백은 영화가 약속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미루어 가정한 것이다. 누가? 영화를 보는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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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역사 연대적 서술과 서로 다른 결말을 가진 설화인 청평사 회전문의 이야기는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회전문은 맥거핀일 수도 있다. 또는 그것을 홍상수는 (의도적인?) 오류를 통해 알려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맥거핀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듭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가장 쉬운 해결방법은 매듭을 만드는 것이다. 매듭은 분리된 것을 강제로 연결하는 수단이거나, 또는 큰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매듭을 수학공식에 의해서 풀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 그러니까 매듭을 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듭을 통하여 분리를 화해시키려는 대상을 찾는 일이 홍상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성일, 상수의 영화를 보고 회전문을 떠올리다

▶ 제2장 자막

▶ 제3장 회전문

▶ 제4장 구조

▶ 제5장 착각

▶ 제6장 아버지

▶ 제7장 …그리고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