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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판타지> 만든 스퀘어사의 분투기
2002-04-17

의지 따로, 결과 따로

가장 좋아하는 게임으로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스퀘어’는 <슈퍼 패미콤>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뒤늦게 진출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하드웨어 시장에서 ‘닌텐도’의 아성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퀘어’는 단순히 게임을 잘 만드는 제작사를 넘어 게임기 사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제작사로 불렸다. <파이널 판타지> 말고도 <로맨싱 사가> <성검전설> 등 스퀘어 게임은 나왔다 하면 흥행은 물론 미디어로부터 찬사 일색이었다.

하지만 스퀘어는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기존 인기 시리즈들을 대체할 새로운 게임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씨네마틱 RPG’라는 거창한 간판을 달고 나온 <패러사이트 이브>는 느린 움직임과 지저분한 그래픽으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새로운 느낌의 액션 어드벤처인 <쌍계의> 역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스퀘어 게임들과는 다른 색깔의 <무사시전>이나 <듀프리즘> 모두 좋은 평에도 불구하고 들어간 돈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새로운 스타일의 대전 액션 게임 <에어가이츠>에 쏟아진 혹평은 ‘스퀘어’의 새로운 시도를 결정적으로 좌절시켰다.

실패로 끝난 용기있는 도전 이후 ‘스퀘어’는 기존 시리즈를 이어가기로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만든 ‘대작주의’의 덫이 있었다. 스퀘어는 늘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시대를 앞서가는 대작 게임만 만들어왔다. 간판 시리즈의 후속작들은 전편보다 더 많은 것을 투자해 더 근사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은 <파이널 판타지8>의 성공은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도 많이 팔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성검전설> 시리즈인 <레전드 오브 마나>, 메크 전략 시뮬레이션 <프론트미션3>, <로맨싱 사가> 시리즈를 계승한 <사가 프론티어2> 모두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의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했다.

‘스퀘어’의 부진은 소비가 급속하게 위축되고 있는 일본 경제의 반영일 수도 있고, 전보다 훨씬 치열해진 경쟁으로 인한 문제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많이 투자해 많이 판다는 ‘스퀘어’식 해법은 이제 먹혀들지 않는다. <파이널 판타지9>의 판매량 감소는 ‘스퀘어’가 처한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8편에서 기존 팬이 이탈한 것을 교훈삼아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컨셉으로 만든 9편은 오히려 8편보다 판매량이 줄었다. 여기에 영화 <파이널 환타지>까지 실패하면서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스퀘어’는 포기하지 않았다. ‘엑스 박스’로 넘어가지 않는 걸 담보로 ‘소니’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아내는 한편 오랜 원수지간이었던 ‘닌텐도’와 극적인 화해를 함으로써 멀티 플랫폼의 가능성을 확보했다. 최근 출시된 <킹덤 하츠>는 ‘스퀘어’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디즈니’와 손잡고 만든 게임으로 미키, 도널드 등이 기존 ‘스퀘어’ 캐릭터와 어우러진다. 일본보다는 미국을 겨냥해 만든 <킹덤 하츠>의 노골적인 상업성 지향을 보면서 화가 나기보다는 서글퍼진다. 기존 인기 시리즈에 안주하지도, 흥행만 노리고 함량 미달의 게임을 만들지도 않은 ‘스퀘어’가 왜 이런 처지에 놓여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수준 미달의 게임이 성공하는 일은 드물어도 잘 만든 게임이 죽을 쑤는 일은 얼마든지 있는 게 세상이다. 개인적으로 결코 좋아할 수 없는 게임이 <킹덤 하츠>지만 잘되기를 바라야 하는 묘한 상황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Madoe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