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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성영화 전문가 도로시 배너
2002-04-24

“디지털비디오 혁명이 이는 중국에 관심”

당신이 그 유명한, 아시아 여성영화 전문가입니까? 만나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었다. 너무 단도직입적이라 당황하고 우물거릴 법도 한데, 도로시 배너는 선뜻 “그렇다”고 답했다. 서울여성영화제의 아시아단편경선 부문 심사위원 자격으로 방한한 도로시 배너와의 만남은 그래서, 열심히 경청하고 필기해야 하는, 조금은 학구적인 자리가 됐다.

도로시 배너가 아시아영화, 그리고 여성영화 전문가임을 자신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 13년간 베를린영화제 영포럼 부문 선정위원으로 일해오며, 인도와 한국영화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그 사이에 만들어지고 소개된 아시아의 화제작들은 다 섭렵한 셈이다. 특히 5년 전에는 베를린에 김기영 감독의 작품 등 한국영화 8편을 불러 소개한 적이 있고, 최근에는 스위스에서 인도영화제를 기획해 두 나라의 합작 프로젝트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도로시 배너는 그 자신이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인도 뭄바이에서 운행하는 여성전용열차를 무대로 한 인도직업여성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지금이야 서구 영화인들이 유행처럼 아시아영화를 보고 연구하지만, 도로시 배너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경우다. “유럽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차이를 전혀 몰랐다. 아시아 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설령 영화를 먼저 접하는 경우라도, 그 환경을 보고 사람을 만나려 애를 쓴다. 삶은 영화와, 영화는 삶과 통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한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하기 위해서 판문점을 다녀온 건 그런 이유였다. 인도영화에 열광하는 맥락도 다르지 않다. “춤과 노래의 전통이 영화 속에 녹아들고, 그런 영화가 일상이 돼,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풍경이 경이롭다”는 것.

지난 13년간 베를린영화제에 몸담으며, 도로시 배너는 아시아영화계의 흐름을 목도했다. “아시아영화가 서구영화제에 소개되고 각광받기 시작하던 10여년 전의 하이라이트 품목은 일본과 홍콩의 예술영화들이었다. 5년 전부터는 부쩍 한국영화와 인도의 상업영화가 각광받고 있다. 이제 주목해야 할 곳은 디지털비디오 혁명이 일고 있는 중국 대륙이다. 5세대 이후 재능있고 개성있는 작가들이 많이 출현해 활동중이다.” 또 다른 변화는, 여성의 파워가 커지고 있다는 것. 이번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만난 한국 작품들에서도, 그는 반가운 조짐을 읽었다. 심사를 맡은 단편 작품들은 물론, 베를린에 소개했던 <고양이를 부탁해>를 다시 봤고, <버스, 정류장>과 <아름다운 생존>을 챙겨봤다는 그는, 작품 모두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데다, 색다른 유머와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로시 배너는 영화제 프로그램 선정위원으로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이 서로 다른 영화와 문화를 접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로써 자신의 삶이 비옥해짐을 느낀다는 것. 독일로 돌아가면, 독일에 살고 있는 외국 여성들과 함께 몇 가지 주제를 놓고 서로의 문화를 대비하는 다큐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꿈을, 능동적으로 실행할 참인 것이다. 글 박은영 cinepark@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