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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억 공돈 생겼다 15명 유혈쟁탈전 <커먼 웰스>
2002-04-24

부동산소개소에 보름 동안 임시직으로 채용된 훌리아(카르멘 마우라)는 팔아치워야 할 방이 있는 낡은 아파트 앞에서 조커 카드 한 장을 줍는다. 그날 그는 거금을 손에 넣는다. 구멍난 천장에서 쏟아진 바퀴벌레가 그를 윗집으로 인도하고, 소방대원이 열고 들어간 그 집에선 썩은 주검이 나온다. 주검이 흘린 수첩에서 힌트를 얻은 훌리아는 그날 밤 그 집 거실 바닥에서 3억 페세타(약 21억원)를 찾아낸다. 스페인 감독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37)가 <커먼 웰스>(2000)의 앞머리에서 보여준 조커와 거액의 현찰은 행운 또는 광대짓의 시작을 알리는 조짐이다. 이런 뭉칫돈은 곧 숱한 불나방을 불러들이고 이들 사이에 유혈의 쟁탈전이 벌어진다. 감독은 과장된 상황과 극단적인 인물들을 앞세워 돈과 욕망, 이기심과 공동체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여러 각도에서 신랄하게 비웃는다. 윗집 노인은 십자 낱말 퀴즈에 당첨돼 거금을 손에 넣었음에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쓰레기 뒤덮인 낡은 아파트에서 홀로 숨진다. 도둑고양이만 그의 살점 뜯는다. 돈에선 늘 잉크냄새와 더불어 악취가 풍김을 일깨워주는 상징적인 설정이다. 노인이 자기 집에 유폐당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건, 그의 당첨금을 아파트의 다른 모든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훌리아는 돈을 챙긴 뒤 아파트를 빠져나가려다 14명의 다른 입주자들에 둘러싸인다. 그가 매매를 맡은 방의 주인조차 사실은 이들의 계획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이 일을 주동한 관리인 에밀리오(에밀리오 구티에레스 카바)는 직장까지 때려치운 채 여기에 매달려왔다. 그는 혼자 돈을 가로채려는 훌리아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여긴 공동사회야. 넌 남이야 죽건 말건 돈을 혼자 차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지? 가르시아는 몸이 안 좋아 외출도 못하고, 5층에 사는 노처녀 파키타는 입 냄새 때문에 남자를 못 사귀고 있어! (종이쪽지를 흔들며) 이게 바로 입주자들의 불편사항 리스트야!”행운을 독점하려는 노인을 살해해서 ‘공공의 복리’를 증진시키겠다는 설정은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공동사회’의 구성원들은 달아난 훌리아가 거의 손아귀에 들어오자, 비로소 서로 죽고 죽이는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서로에게 퍼부어대는, “남의 걸 가로챌 셈이냐!”, “혼자 먹으려 들다니!”, “돈 때문에 사람 죽였다!”는 따위의 아우성은 사실 모두 발언자에게 돌아가가는 말들이다. 가짜 돈뭉치로 채워진 가방을 빼앗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결말부분에선, 조개껍질에서 지폐에 이르기까지 결국은 ‘교환가치’에 지나지 않는 돈의 허망한 본질에 대한 감독의 서늘한 조소가 묻어 나온다. <커먼 웰스>는, 기독교의 종말론 사관과 구세주 콤플렉스를 정면에서 비웃은 그의 전작 <야수의 날>(1995)처럼 한바탕의 소동을 큰 줄거리로 삼고 있지만, 이야기는 길을 잃지 않고 은유도 풍부하다. 국내에서도 컬트 팬들을 많이 확보한 <액션 무탕트>(1993)와 <야수의 날> 등 전작에 비하면, <커먼 웰스>는 훨씬 많은 관객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상식선상’의 작품이다. 26일 개봉.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