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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오락 프로그램 <전파견문록> 녹화 현장
2002-05-02

뭐든지 다 있는 씨앗들

4월11일 1시30분 MBC E스튜디오, 2시부터 시작될 <전파견문록> 녹화 준비가 한창이다. 방청객은 앞에 선 사람의 지시에 따라 프로 시작할 때의 박수, 재밌는 이야기를 했을 때의 웃음, 문제를 냈을 때의 웃음, 정답이 공개되었을 때의 웃음 등의 여러 가지 웃음, 정답을 유인하는 또는 오인하게 하는 야유의 소리를 준비중이다. 무대 위에는 오늘 처음 시작하는 코너의 세트 준비가 일사분란하다. 유치원 100명에게 물어서 만들어낸 삼지선다 ‘앙케트 눈높이 100’.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답했으리라 생각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전의 한 아이에게 스피드 퀴즈를 내던 코너가 바뀐 것이다. 1, 2, 3이 적힌 섬이 깔린 철도를 따라서 붙었다가 떨어졌다 한다.

“어른도 그렇게 멋지게 표현하기 힘들죠”

옆의 대기실에는 출연자들이 한명씩 모이고 있다. 조형기씨, <뚫어야 산다> 촬영 때문에 3일을 샜다, 이의정씨, 4월9일 방송분에서 보인 거친 목소리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 이경규씨, 무리한 일정으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다. 정말 녹화중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이경규씨는 세트 끝을 잡고 숨을 몰아쉬면서 서 있었다. 이의정, 주영훈, 조형기씨의 고정 출연은 지난해 100회를 지난 시점부터다. 고정 출연하면서 조형기 형님(출연한 한 어린이는 조형기씨를 형님이라고 불렀다)은 “애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전에는 우습게 알았지. 어른이 우습게 알고 있는 것을 반성하게 되죠. 그때 나온 것 뭐야, 씨앗을 작은 것 안에 있는 것 다 있어요, 라고 한 거, 그런 말은 어린이 시각이 들어 있는 말이지만 어른도 그렇게 멋지게 표현하기 힘들죠. 거기다 애들 쓰는 용어가 다른 것도 있어요.” 옆에 있던 이의정씨가 거든다. “요즘 애들은 목욕탕, 한증막 하지 않고 사우나라고 그러대.”

고정 출연하는 이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자이다. 막연한 문제는 꼭꼭 지적한다. 김지연 작가는 말한다. “종이 한장 차인데 애들 공감대가 있어요. 이제는 여기 아무도 안 다녀요(남대문) 같은 경우 장난치는 느낌이고 난센스죠.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건 좋다 하는 것을 알고 말해줘요.” 방송 출연할 김채원 어린이가 작가들 손을 꼭 잡고 이리저리 다니고 있다. 팬티 보이는 줄도 모르고 신기한 듯 눈만 굴리는 어린이가 작가를 부른다. “선생님!” 그 말에 작가가 돌면서 웃는다. “저희들이 선생님이라고 하고 다니거든요.”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거저 먹는 프로그램이라 하기도 하는데….” 모르는 소리, 작가들은 주말을 빼고는 매일 유치원을 간다. “방송사다, 전파견문록에서 왔다, 이런 소리 하지 않고 수수께끼 선생님이라고 해요.” 원래 초등학교 1학교 교과과정에 수수께끼라는 과정이 있어서 이 말은 아이들에게도 진짜로 먹힌다.

어린이들은 1, 2년 차이가 크다. 1년 사이 경험하는 양이 많이 다르다. 초등학생이 되면 벌써 정형화된 사고틀을 지니게 된다. 많이 다를까 하는 생각에 초기에는 초등학생들 인터뷰도 많이 했지만 초등학생들은 이 얘기하면 창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먼저 한다. 최근에는 유치원 7살 아이들로 한정되었다. 아이들의 감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단어 위주로, 행복, 우정, 사랑, 정성, 용기 등의 문제를 내고 아이들에게 설명하도록 부탁한다. 그런 중에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아이를 골라낸다. 결정된 아이를 데리고 하루 2∼3시간씩 이틀을 인터뷰하고 출연 전에 사흘에 5번은 만난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며칠을 보내므로 무대 위에 선 아이들은 설에 대가족 앞에서 재롱 떠는 아이들보다 더 편안해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을 무대 위로 올리고 나면 어머니나 수수께끼 선생님이나 울먹울먹하는 아이를 먼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럴 때 애를 달래는 것은 출연진. 사회자 이경규씨는 씩씩하게 대답하긴 하지만 눈꼬리에 살짝 눈물이 맺히는 아이를 다독거려주고, 하나 둘 셋이라고 세면서 아이가 문제를 또박또박 읽도록 맞춰준다.

“다시 천천히…. 하나 둘 셋”이라는 신호에 맞춰서 김채원 어린이가 문제를 낸다. “먹으라고 해놓고 많이 먹으면 화를 내요.” 맞히는 중에 시식이라는 말이 나오자 출연자 중 황현정 MC가 “그걸 애들이 알 리가 없어요. 시식이란 말을…”, 무료시식으로 옮겨갔을 때도 “무료라는 말을 모를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한다. 이경규씨는 말한다. “아이들이 알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애들은 다 알아요.”

다른 틀로 사고하는 ‘생활인’ 어린이

<전파견문록>의 가장 큰 성과는 아이들이 알아가는 것의 처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틀로 사고하는 사람들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른 틀은 문제의 해답을 보았을 때 ‘하하’가 아니라 ‘아하’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한다. 소파가 유아를 ‘어린이’라고 부른 것 역시 기실 실제를 사고하는 방식을 제한하는 단어다. 더구나 ‘어린’은 ‘어리석다’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훈민정음을 배울 때 익힌 뜻을 떠올려보라.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어린이 예찬’) 어린이는 <전파견문록>에는 없다. 어른들이 보는 어린이는 없다. 친구와의 싸움에 잠이 잘 오지 않고, 아빠가 엄마 몰래 숨겨둔 돈은 “500원”, “스물두살 먹은 누나들이 무얼 하지” 하고 물으니 “아르바이트”라고 바로 답하는 ‘생활인’ 어린이가 있다.

그래, ‘앙케트 눈높이 100’의 어린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꼬마야”라는 말이라고 하더라. 자기 자신을 몰라서? 주영훈의 해석에 따르면 모두 자신의 나이를 부르는 것은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폭력적인 일반화에 저항하는 것은 어린이에게서 가장 강한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의 사고 틀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익힌 것이 일반화와 객관화라는 어질한 과정임을 생각하게 한다.

누구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적이 있으랴. 하지만 그 시절은 우리에게 없다. 현재에서 되돌아보는 해석이 있을 뿐이다. 잊어도 성장(成長)- 이루고 크면서- 에 녹아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잃었다. 그때는 뭐든지 다 있는 씨앗 속에 있었는데.

새로 시작된 코너 녹화가 끝나고 나서 작가들이 모여서 수군수군댄다. 룰이 잘 습득이 안 된 것 같아, 판 사이를 얼마나 떨어뜨려야 하는 거지, 기자님 어땠어요? 그때 어머니가 다가오더니 작가에게 살그머니 말을 건다. “채원이보다 먼저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가리키는 쪽에 뿌루퉁해져 있는 아이가 서 있다. 스피드 퀴즈를 내도록 데리고 온 아이다. 새로운 코너에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데리고 왔다. 순수의 시대 퀴즈 내는 애보다 먼저 나간다고 선생님이 그랬는데, 걔는 벌써 나갔는데 자기는 왜 안 나가냐고 불만인 것이다. 작가가 어머니에게 설명한다. “이번에 녹화를 하지 않더라도 순서대로 출연을 시킬 거거든요. 오늘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출연자 중 피곤한 사람들도 많았고, 새로운 코너도 시작되었고, 오늘 2회 촬영이라 타이트한 일정이었지만, 촬영 중 있었던 가장 큰 사고는 이것이었다. 어머니 앞에서 쭈뼛거리던 애가 선생님이 오자 손을 잡으며 달라붙는다. 구둘래 kuskus@dreamx.net▶ MBC 오락 프로그램 <전파견문록> 녹화 현장

▶ 김지연 작가가 뽑은 순수 퀴즈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