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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시즈>, 아무도 모르는 농부의 삶의 짐
2002-05-02

네가 세상을 구해!

“괴물이… 쳐들어왔다. 이 세계를 구할 건… 너뿐이다.” 간신히 말을 마친 옆집 노인은 숨을 거두었다. 괴물이라니 도대체 무슨 얘긴지, 왜 내가 세계를 구해야 하는지,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대답해야 할 사람은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한 후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다. 왜 나지? 내가 왜 지루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떠나 검을 잡고 싸워야 하는 거지? 겁이 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미 돌아가신 후니 모른 척하는 게 좋겠다. 그렇지만 죽은 사람 유언을 깡그리 무시하자니 어딘가 찜찜하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울컥 신경질이 난다. 귀찮다. 이왕 죽을 것 곱게 가시지 왜 하필이면 여기까지 와 돌아가셔서 사람 피곤하게 하는 거지?

판타지 롤 플레잉 게임 <던전 시즈>는 평범한 농부가 운명의 바퀴에 깔리면서 시작된다.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재수없는 일인가. 자극적인 삶? 물론 원한 적 있다. 해가 뜨면 어김없이 밭으로 나가 어두워지면 또박또박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벗어날 것을 꿈꾼 적이 없다고는 말 못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물려받은 밭뙈기 챙기기도 힘겨운 농부의 어깨에 세상의 운명이 떠맡겨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한명의 농부가 세상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는 그때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라는 말은 비장하다기보다는 약올리는 것으로만 들린다.

노인의 당부를 한귀로 흘려버렸으면 평온한 작은 삶에 어떤 균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고립되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많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남의 부탁을 거절하면 우선 마음이 무겁다. 양심의 가책이야 훌쩍 떨쳐버리더라도 남의 눈도 있다. 자기 일이 아니면 가혹한 게 사람이다. 작은 마을에서 할아버지가 목숨을 건 마지막 부탁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냐고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거들고 들면 웬만한 신경으로는 버틸 수 없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 싫든 좋든 세계를 구할 전사가 될 수밖에 없다.

운명의 전사는 판타지 세계에만 필요한 건 아니다. 귀찮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는 사람보다는 편한 길을 찾는 사람이 훨씬 많다. 남에게 미루기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만만한 사람. 데이터베이스야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 꼭 가까운 사이일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성격, 밀어붙여도 뒤탈 없을 사람을 골라낸다. 명함은 이미 버린 지 오래고 연락처를 알려면 동분서주해야 한다. 간신히 전화를 걸어 의례적인 인사 몇 마디를 건낸 후 본론으로 돌입한다. ‘최대한 빨리 곧장’ 해달라는 주문은 필수고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해 독촉도 잊지 않는다.

지난번에 입씻어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급한 일이 따로 있는지 거절당할 수도 있다. 몇번씩 부탁해도 실패해 직접 일처리를 하고 있다보면 괘씸하기 그지없다. 정이 없는 사람, 인간관계가 나쁜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 또 개구리 올챙이 적을 모르는 사람 등등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무차별로 헐뜯으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질지 모른다.

현실에서 다른 사람이 지워주는 삶의 무게는 칼 한 자루로 대마왕과 맞서 세상을 구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임무를 완수해도 영웅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잘해봤자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무시될 뿐이고, 거절하거나 미흡했다면 그 짐이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지 불분명해질 정도의 질책을 받는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Madoe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