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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여성 작가들이 그린 야오이 만화집 <Youth>
2002-05-02

소년의 목덜미를 정복하다

용량을 초과한, 그래서 구조조정이 필요한 우리나라 만화 시장은 몇년째 초과한 용량으로 덜거덕거리며 움직이고 있다. 초과한 용량은 만화 시장(더 정확히 일본식 만화시스템을 수입한 주류 만화회사의 시장)을 왜곡시키는 주원인 중 하나다. 몇년째 왜곡된 시장에서 허덕거리는 편집자들는 빅히트작으로 쉽게 돈벌던 좋았던 시절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획을 현실화시키고 있는데, 추억의 작품을 완전판으로 복간하는 기획이 이런저간의 사정 속에서 현실화된 것이다. 좀처럼 회복될 줄 모르는 시장상황과 반대로 동인지 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 많은 편집자들과 기획자들은 불황을 이기기 위한 대안으로 동인지 시장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여성향’ 만화

여러 동아리들이 자신들이 만든 회지와 팬시 등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동인지 시장은 창작물보다는 패러디물, 그중에서도 멋진 남성과 남성의 사랑을 그린 야오이 만화가 주류였다. 그 바닥에서는 멋진 꽃미남이 나오는 만화를 ‘여성향’이라 부르는데, 아마 ‘여성취향’의 번형된 단어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여성향이라는 용어는 야오이 만화는 물론 폭넓게 미소년들이 등장하는 여성 취향, 그것도 커플링을 즐기는 여성 독자들의 취향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단어일 듯싶다.

여성향 만화는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어왔지만 우리 작가들에 의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이후다. 나예리, 박희정, 두 작가는 이전에 보였던 과도한 장식미(커다란 눈과 그 안에서 빛나는 별빛, 길고 긴 속눈썹 등)를 억제하고 시원한 선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각적인 변화와 함께 역할의 변화도 두드러졌는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왕자나 프랑스 혁명기의 귀족 등의 역할에서 현실의 중고생 역을 맡기 시작했다. 여성 독자들은 새로운 주인공들에 환호했고, 이 멋진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보이는 관심에 빠져들었다. 눈을 바라보다 얼굴이 붉어지고, 손이 목덜미에 닿으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장면에서 마치 멋진 미소년의 눈, 입술, 목덜미를 자신이 훔치는 것과 같은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이런 여성향 만화는 하나의 취향으로 굳어지며 세력을 넓혀갔는데, 작품에 따라 미묘한 동성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소프트한 취향에서 주인공들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묘사한 하드코어한 것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 존재한다. 이중에서 후자에 위치한 작품들은 정식적인 출판의 공간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공간을 주무대로 삼는다. 이들이 활동한 공간은 ‘동인지 판매전’이다.

순정작가들, 야오이를 그리다

강현준, 나예리, 심혜진, 이빈, 이영유, 화선. 모두 여섯 작가의 단편을 모은 <Youth>는 작심하고 동인지 시장을 겨냥한 여성향 만화다.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가 붙을 정도로 표현의 강도도 제법이다. 하드코어는 아니지만 동성애만큼은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여성향 만화를 즐겨 그리는 작가의 취향은 동일하지만 작품을 표현하는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나예리와 심혜진이 두 멋진 남성의 끌림을 진지하게 그렸다면, 동일한 끌림을 강현준은 코미디로 표현한다. 이영유, 화선 만화의 주인공들은 동인지 팬들이 좋아하는 소년만화의 미소년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나의 소재(그것도 일정한 규칙을 지닌)를 해석한 작가의 능력을 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단편집은 국내 출판사에서 동인지 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여성향 기획단행본이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의의를 뛰어넘은 매력을 전달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남자 대 남자의 구도를 만든다고 여성향이 되는 것은 아니고, 여성향이라고 해서 만화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충실한 드로잉, 안정적인 이야기틀, 자신만의 스타일 등등)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수록된 작품들의 편차가 심해 동일한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심혜진과 나예리는 역시 ‘마음의 동요’를 잡아내는 작가다. 이영유는 심혜진과 나예리의 만화를 보며 주인공과 독자의 마음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이야기 방법을 배워보도록 권한다. 이빈이 보여준 학원개그의 장점은 <걸스>에서 모조리 소진해버린 것 같다. 억지 설정에 난처한 노출은 안쓰럽다. 반면, <납골당 모녀>에서 보여준 강현준의 야오이 개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는 강현준이 쌓았을 야오이 내공의 등급을 슬쩍 내비치기도 한다.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중학생의 부모님이 판매전에서 사온 ㅇㅇ회지를 읽다가 ㅇㅇ장면에 놀라 항의했다는 투의 글이 가끔 올라오는 것을 본다. 하긴 하드코어 여성향 만화는 표현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혹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이 있다면, 여성향 만화를 읽는 독자들은 이 만화가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그리 큰 심려를 하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드린다. 비유해 설명하자면, 부모님들이 즐겨본 할리퀸 로맨스의 연애장면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