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만화에서 슈퍼 히어로의 역사는 거의 100년에 근접한다. 미국 만화에서 등장한 최초의 히어로는 1929년 등장한 <버크 로저스>다. 우주에서 악당과 싸우는 버크 로저스에 이어 <타잔> <섀도우> <독 새비지> 등이 등장한다. 당시 만화는 주로 신문연재 형식이었다. 1934년에 최초의 만화잡지 <페이머스 퍼니>가 등장한다. 다음해에는 DC 코믹스의 첫 만화잡지인 <뉴 펀>이 발매된다. 36년에는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복면을 쓰고 등장하는 히어로 <더 팬톰>이 신문만화에 등장한다.

슈퍼 히어로의 대명사인 슈퍼맨이 등장한 것은 1938년의 일이다. <슈퍼맨>은 <액션 코믹스>(DC 코믹스)에, 다음해에는 <배트맨>이 <디텍티브 코믹스>에 등장한다. 39년에는 DC 코믹스의 영원한 라이벌 마블 코믹스의 전신인 타임리 코믹스가 <마블 코믹스>를 창간하고 <서브 마리너> <휴먼 토처> <샌드맨> 등을 출현시킨다. 2차대전 이전까지 미국 코믹스는 황금시대를 누리고, 전쟁 시기에는 슈퍼 히어로가 독일군이나 일본군을 물리치는 애국주의적 영웅으로 전화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53년에는 조지 리브스 주연의 <슈퍼맨> TV시리즈가 시작되어 57년까지 장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누린다. 50년대의 코믹스는 아이들을 위한 매체였다. 코믹스의 세계는 단순명쾌했고, 현실사회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킨 권선징악의 세계였다. 그러나 EC 코믹스에서 주로 발간한 괴기스럽고 폭력적인 만화들도 인기를 끌었다. 그 영향으로 54년 심리학자 프레데릭 워섬 박사는 <Seduction of the Innocent>란 책에서 만화의 유해성을 규탄하고 만화를 유해도서로 지목한다. 의외로 사람들이 만화 비판에 동조하고, 국회에서도 논란이 일자 만화업계는 자구책을 찾는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자체적으로 만화윤리규정인 CCA를 만들어 폭력과 섹스를 제한한 것이다. 이후 코믹스는 더욱 단순해지고, 미국인의 집단적인 무의식을 대변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선과 악이 모호해지고, 세대간의 갈등이 극에 달한 베트남전 이후 모든 것이 바뀐다. 만화는 점차 사회를 반영하기 시작한다. 61년 마블 코믹스가 <판타스틱 포>를 창간하고, 스탠 리와 자크 카비 콤비가 이끄는 마블 혁명이 일어난다. 리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에서 토비 맥과이어가 <판타스틱 포>를 열심히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판타스틱 포>에서 일그러진 기성세대와 돌연변이가 된 젊은 세대의 초상과 갈등을 바라보고 있다.

63년 등장한 <엑스맨> 역시 돌연변이의 정체성을 파고들면서, 사회적인 문제까지 건드린다. <스파이더맨>은 62년에 등장한다. 한편 60년대부터 코믹스는 흥행적인 요소들이 강해진다. 각각 다른 만화로 등장한 캐릭터를 함께 등장시켜 대결시키기도 하고, 애니메이션과 머천다이징 사업에도 주력한다. 65년에는 <슈퍼맨> 애니메이션이 시작되고, 68년에는 마블의 캐릭터들이 함께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마블 슈퍼 히어로즈 &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포 쇼> 등이 등장한다.

70년대는 만화독자가 대폭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한 위기의 시대다. 청소년 독자가 줄어들고, 독자의 연령층이 높아진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봐오던 마니아들 말고,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것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DC와 마블은 합작하여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고, 76년 <슈퍼맨 대 스파이더맨>에 이어 <배트맨 대 헐크> 등 DC와 마블의 인기 캐릭터가 함께 등장하는 만화를 연달아 내며 연합전선을 편다. 77년 마블이 <스타워즈>를 독자적인 스토리로 코믹스화한 이후 <코난 더 바바리안> <인디아나 존스> <에이리언> <프레데터> 등 영화의 인기 캐릭터를 코믹스로 옮기는 일도 잦아진다. 1978년에는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이 제작비 44만달러의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져 대성공을 거둔다.

악몽 같은 70년대를 보낸 만화업계는 자구책으로 코믹스의 고급화를 꾀한다. 독자의 연령층이 높아지고, 과거 작품들이 비싼 수집품으로 팔리는 것을 본 회사에서는 ‘특별판’을 남발한다. 82년 마블 코믹스에서는 고급지를 사용한 <마블 팬페어>를 발매하고, 계속해서 고급지의 그래픽 노블을 출간한다. 그러나 시장이 축소된 상황에서 마니아와 수집상들을 대상으로 특별판을 남발하던 만화업계는 계속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86년 앨런 무어의 <워치맨>과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다크 나이트 리턴즈>가 등장하며 코믹스의 ‘혁명’을 이루어내기 전까지는.▶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1)

▶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2)

▶ 1986년까지,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 소사

▶ <스파이더맨> 감독 샘 레이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