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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언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2002-05-10

무표정한 비극

● 최근(2001년 가을-역자) 함께 개봉한 조엘과 에단 코언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와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는 두 작품 모두 “인간의 모습을 벗어난 라이브 액션만화”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두편 모두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보여주진 않으나, 공히 만화의 세계에서 곧장 빠져나온 듯한 작품들이다. 한편은 지독하게 비관적이고 또 한편은 히스테리컬할 정도로 기분 좋지만, 두편의 캐릭터들 모두 찡그릴 줄 아는 고깃덩이인 꼭두각시 인형들과 잘 계산된 특수효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점에서 또한 공통적이다. 이들은 넘쳐나는 보이스오버 너머로, 향수에 푹 젖고 은둔자처럼 각자의 껍질 안에 잘 숨겨진 채, 잘 재단된 ‘프로젝트 세계’를 창조한다.

<아멜리에>(이에 대한 짐 호버먼의 견해는 <씨네21> 327호를 참조할 것-역자)는 사람들이 좀더 편안히 좋아함직한데 비해 코언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지독할 정도로 건조하다. 이것은 아주 절묘하게 단색을 띤 흑백영화로서, 캘리포니아 태양 아래서 벌어지는 간통과 공갈 및 약탈과 살인 이야기를 그린다. 이 까다롭도록 초현실주의적이고 네오누아르적인 영화는 코언 형제 데뷔작인 <블러드 심플>의 리메이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통제불능 수준으로 난폭했던 <블러드 심플>에 대한, 더욱 슬프지만 더욱 현명한 리메이크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심지어는, 터프가이 소설가 제임스 M. 케인(<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의 저자)의 혼성모방 작품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빌리 밥 손튼이 불행한 부부 역할을 맡았다. 남편 에드는 수줍은 이발사이며 아내는 수다스런 회계원으로서, 보스 빅데이브(제임스 갠톨피니)와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중이다. 화가 치민 에드는 빅데이브에게 익명의 협박편지를 보내 돈을 뜯어 새 사업을 시작할 계획을 품는다. 그는 부랑자 사기꾼 존 폴리토에게서 힌트를 얻어 드라이클리닝 사업에 투자할 것을 결심하는데, 이것은 결국 이 삼각관계를 비극적이랄 정도로 나쁜 상태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어, 빅데이브는 결국 살해당하게 된다. 이에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에드를 둘러싼 진실과 비밀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런 괴팍할 정도로 거친 통제불능의 세계에서조차, 코언 형제는 꼭두각시 인형들을 즐거움의 끝없는 원천으로 파악한다. 손님의 머리칼을 자르는 시늉을 하면서 담배를 피워 문 채 지루하게 질질 끌며, 손튼은 대단히 건조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은 매우 바쁜 내면세계와 삶을 가려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다음에조차도 머리칼은 “그저 계속 자라날 뿐”이라는 사실에 기초한 형이상학적 명상에 의해 완성되면서, 그저 뚱하고 침울한 보이스오버로 표현될 따름이다. 마치 부어오르듯 과장된 ‘의식의 흐름’도 부족했다는 듯, 손튼의 반응없는 과묵은 수다가 분출하는 맥도먼드와 나란히 놓임으로써 더욱 강조된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꽥꽥거리는 수다스런 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전형적인 케인 스타일 그대로, 손튼은 한 백화점 크리스마스 파티중 베토벤의 소나타 <월광>을 우울하게 연주하는 소녀를 보고, 그 예민한 10대 소녀(스칼렛 요한슨)에게 병적으로 집착한다.

린치풍의 UFO 서브플롯이 지루하게 전개되지만 코언 형제는 그들의 영민함을 잃지 않았다. 한 사이트 개그(동작에 의한 개그)에서 손튼은 유리문에 부닥친 채 클로즈업되는데 그 유리문은 한방에 금가버린다. 보이스오버는 몇번씩이나 자의식 강한 프리첼(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먹고 의식을 잃었었다는 과자 - 역자)인 양 자신을 뒤틀어버리며, 영화는 별뜻없는 기표들로 가득하다(액션은 히치콕 영화 <의혹의 그림자>의 로케이션 장소인 산타 로사에서 만들어졌고, 변호사의 이름은 <아스팔트 정글>의 한 캐릭터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게다가 이 영화는 도덕적으로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칠 정도로 하드보일드한 은유는 마이크 해머조차 말을 잃게 만들었을 것이다.

쿨한 것과 졸리는 것과 느려터진 것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있을 텐데,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반복적으로 그 선을 넘나든다. 코언 형제는 운명의 바퀴 앞에서 잠이 들어 있었나? 아니면 아이러니의 죽음에 대해 선견지명을 갖고 미리 애도하고 있었나? 여전히, 영화만큼이나 무의미하게, 프로덕션 디자인은 나무랄 데 없고, 심지어는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완벽을 향해 불 댕겨지고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손튼은, 몽마르트에서 온 아멜리에보다 훨씬 더 도드라진 만화 캐릭터다. 그녀의 바보스런 미소는 “걱정할 게 뭐야” 하는 듯한데 반해, 그의 끌로 판 듯 윤곽 분명한 비극적 표정은 그를 프로작(우울증 치료약)의 포스터보이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

(<빌리지 보이스> 2001.11.6. 짐 호버만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